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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근교의 레저관광
山靑水秀, 제비가 사는 집
2015-06-08 17:51:13 cri

(사진설명: 조선족농가원 "산청수수")

(사진설명: 대청처마에 제비둥지 있다니?)

    산 좋고 물 맑다는 이쁜 이름의 산청수수(山靑水秀)는 고향생각을 불러주는 다정한 곳이었다. 이번에 나는 처음으로 회사의 동료들과 함께 번잡한 도심을 떠나 베이징 외곽지 시골에서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1,2층으로 된 500평방남짓한 농가의 1층 대청 처마밑에는 제비둥지가 2개나 있었다.눈을 떼지 못하고 올려다보니 새끼에게 뭘 잡아다 먹이는지 제비들이 새까만 꽁지를 둥지밖에 내밀고 달싹거린다.

    "제비는 착한 집에서 살지. 집안에 둥지가 2개라… 주인이 무척 착한 모양이군."호기심을 가지고 한동안 제비둥지를 지켜보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밥상을 물리는 여성을 쳐다보더니 말한다.

    "감사해요. 호호 사실 농가를 차려서 큰 일 할 마음까지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항상 맛있고 깨끗하게 만들어 손님상에 올리고 싶은 마음으로 정성를 기울여 왔습니다."

    농가의 주인인 몸매 단아한 여성은 조미령이라고 부르는 살림군이였다. 이 창평구(昌平區) 십삼능(十三陵)  마욕방(麻峪房)촌에 와서 조선족 농가집 "산청수수"를 5년째 경영중인 조씨는 15년전 길림성 화룡시에서 베이징에 왔다.

    얼핏 보기에 조씨네 "산청수수"는 규모나 장식은 농가집이 줄지은 마욕방촌에서 돋보이지 않았다. 건물 바깥에 "연변냉면"이라고 적혀 있는 것과 문안에 들어서자 오른켠에 흰김을 씩씩 내뿜는 커다란 조선족 쇠가마 2개가 주인이 조선족임을 설명해주는 것 외 특별한 것이 없었다.

    손님들은 마을의 유일한 조선족 농가집인 "산청수수"에 자주 찾아오는 것 같았다. 조씨가 한 동료와 말을 나누는 짧은 몇분 사이에도 손님들이 여러명 찾아들었다.

(사진설명: 농가락과 마주한 개울)

    동네의 짐작대로라면 금방 5월중순인데 (더워나는) 여름부터 늦가을까지는 적어도 한달에 400-500명씩, 겨울에도 한 200명씩 "산청수수"에 투숙한다. 그러나 식객까지 합치면 이 집을 찾는 손님이 대체 얼마인지 다들 모른다. 대다수 농가집처럼 조씨네도 음식점을 겸하고 있었다.

    "니먼쓰 충날 라이더?(你们是从哪来的? 당신들은 어디서 왔죠?)" 마을에 왜 손님이 많을가 골몰하는데 맞은켠 식탁에서 식사하던 한 한족 중년이 큰 소리로 묻는다. 솔직히 일행의 뒤꽁무니를 따라온 나는 이 곳이 어떤 곳이며 무엇 때문에 이 곳에 농가집이 즐비한지 잘 모른다. 400-500보밖에 아아하게 솟아 두팔 벌려 동네를 그러안은 산들과 산속에서 우짖는 새소리, 그리고 계곡에 흐르는 차가운 개울이 이곳도 피서에 꽤 적합한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물론이죠. 부근에 팔달령장성과 명13릉이 있기 때문이죠." 자리를 잠간 뜬 사이 동료가 뭐라고 중년에 말을 건넨 모양이였던지 중년의 말문이 터졌다.

    인근태생이라는 중년의 말대로라면 내외에 유명한 팔달령장성이 마욕방촌 서북쪽으로 40km 정도 되는 곳에 있고 명13릉이 동네 남쪽으로 한 4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진(秦)장성과 늘 혼동되어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명(明)장성은 하북성(河北省) 산해관(山海關)으로부터 산발을 타고 서쪽으로 감숙성(甘肅省) 하서주랑까지 뻗어있다. 이중 팔달령 구간 즉, 팔달령장성이 만리장성관광의 최적지다. 팔달령장성은 1953년 관광지로 개방된후 1991년 8월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지금까지 미국 전 대통령 닉슨과 영국 전 총리 마가렛 대처, 구소련의 총서기 고르바쵸프 등 국가원수를 망라한 내외관광객 총 1억 3천만명이 팔달령장성을 찾았다.

    명(明)13릉은 명나라 13명 황제의 무덤이 모여있는 고분군이다.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명13릉은 이집트 피라미드와 더불어 관광객들에게 있어 신비한 곳이다. 관객들이 "명13릉을 다 보고 나갈때면 발을 3번 '쿵쿵' 구르고 손벽을 3번 '짝짝' 치며 소리높이 '나갑니다'를 연속 3번 외쳐야 자신의 영혼을 겨우 챙기고 빠져나갈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글쎄 팔달령장성이나 명 13릉을 거닌 관광객들이 딱히 마욕방촌까지 와 투숙한다고는 말할수 없겠으나 이러고 보니 이 두곳의 영기가 산줄기를 타고 이 곳 산수에 까지 스며있을 것으로 간주한 손님들이 동네에 몰리는게 영낙 없었다.

    최근 불고있는 관광바람과 도시인들의 피서바람을 이용해 마욕방촌 인근 마을들도 농가집을 대대적으로 경영하고 있었다. 2010년 설에만 베이징 단거리코스 관광객수는 2009년보다 7.4% 늘어난 연 58만명에 달해 관광수입만 5300만원 올렸는데 그때쯤 "산청수수" 경영을 시작한 조씨도 상도에 밝은 편이였다. 대도시 근교에서 특색을 살려 가게를 운영해도 도심 못지 않게 수입이 짭짤해 질 시대가 왔던 것이다.

(사진설명: 요리중인 조씨 남편)

    "사장님, 여기 얼마예요? 그리고 순대 한그릇 포장이요." 제가 한 대답에 동네에 손님이 몰리는 까닭을 알것 같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는 동료에 흡족한 중년이 요리메뉴에서 순대를 부른다.

    메뉴에는 보신탕과 미나리무침, 바비큐, 냉면 등 조선족 전통음식이 많았다.

    조씨는 순대 대신 미나리무침을 포장해서 중년에게 주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조씨네는 단골손님, 그마저 며칠전에 사전 주문을 해야 순대를 만들어두어 평소에는 순대가 없었다. 돼지창자는 활딱 뒤집어 밀가루와 소금을 뿌리고 썩썩 문지른 뒤 가위로 너덜너덜한 곱들을 잘라내야 했는데 돼지 한마리 창자를 씻는데만 두어시간씩 걸렸다. 거기에 찹쌀을 50원어치 넣고 순대를 쪄 만들면 솔직히 품만 들고 돈 떨어지는게 얼마 없었다.

    그렇다고 미나리도 쉽게 캘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동네에서 7-8km 떨어진 산골에 온 집식구 네댓명이 가서 1시간 꼬박 캐야 10kg 캘 정도이다. 미나리는 얕은 물속에 자라기 때문에 미나리를 캐려면 허리를 굽히고 5월 찬물에 발을 넣어 몇시간씩 견뎌야 했다.

    반나절 캔 양으로 한주정도 식탁에 올릴수 있었는데 싼 값으로 굳이 시장에서 사오지 않는 것은 혹시 농약을 쳐 재배한 것일가봐 조씨네는 직접 산골에서 야생을 캐다가 사용했다.

    중년도 가고 일행들도 각자 자리를 떴다. 사람들이 떠나자 대청에는 둥지밖에 나와 짹짹거리는 제비소리만 요란하다. 옛날 고향 시골집의 처마밑에서 늘 듣던 귀에 익은 소리이다.

   

(사진설명: "산청수수" 대청벽에 있는 "투도광흥중학교 93기 3반 동창모임-2014.09.13"운동셔츠 )

    대청벽에 걸어둔 "투도광흥중학교 93기 3반 동창모임-2014.09.13"(투도는 화룡 소속)이라 씌여진 운동셔츠가 눈에 문득 띠였다. 얼마전 농가집을 찾은 고향사람들이 남긴 것이라고 조씨가 자랑했다. 고향에 대한 한 여성의 그리움이, 타향에서의 조씨의 마음속 기둥이 대청안에 정겹게 울려퍼지는 제비들의 "요란한" 지저귐에 스몄으리라.

(글/사진 김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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