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3 10:09:45 | cri |
동북아시아 예술가들의 필묵으로 어우러진 대별산,
화이부동- 동북아시아서화교류전 황강 필회 현장을 가다
1123heerbutong
|
(동북아시아 화가, 서예가들이 현장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신민주주의혁명시기 불굴의 투쟁에 몸바친 무수한 열혈남아들의 발자취가 새겨진 대별산(大别山), 오늘날 대별산은 평화와 안정을 되찾고 영웅들의 발자취를 간직한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보슬보슬 안개비가 내리는 어느 나른한 가을날의 오후, 대별산기슭에 자리잡은 한적한 호텔 3층 회의실이 갑자기 웅성웅성해졌습니다. 고요했던 대별산의 정적을 깨고 심상치 않은 기운마저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가지런히 줄지어 세워진 테이블, 양옆에 놓인 먹물이랑 종이, 붓, 벼루, 유화물감들, 사람들은 테이블에 적힌 이름표에 따라 자리를 잡고 필요한 도구들을 부지런히 옮기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바로 서예, 회화 창작현장입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동북아시아서화교류전 황강순회전시 및 현장답사 행사의 일환으로 중국, 한국, 일본, 몽골에서 온 화가, 예술가 20여명이 이곳에서 모여 창작의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유용 서예가와 그의 창작품)
이때 왼쪽 테이블에 놓여있는 굵직한 필치로 쓴 "인연 연(缘)"자가 한눈에 안겨오는데요, 바로 유용(刘勇) 서예가 부부의 공동작이였습니다. 현재 유용 서예가는 중화서화예술가연구협회 주석 겸 중국서화연합회 이사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부부가 공동으로 창작한 것입니다. 큰 글씨로 적혀있는 '연'자는 저의 부인이 쓴 것이고 아래 작은 글씨로 된 '천리유연내상회(千里有缘来相会)'는 제가 창작한 것입니다."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유용 서예가는 부인을 바라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유용 서예가와 부인의 만남, 부부와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조우, 그리고 대별산을 찾은 것, 이 모두가 인연이라는 "연"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가요. 이어 그는 또다시 붓을 잡고 천천히 한획 한획씩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완성된 문구 "유곡장진(幽谷藏真),군현필치(群贤毕至)"는 균일한 간격을 두고 동일한 높낮이에서 균형을 이루어 무언의 장엄함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쓴 것은 '유곡장진; 군현필치'입니다. 이곳 대별산은 높고 물도 맑아 진정한 의미의 산과 물, 신묘함이 한데 어우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깊은 골짜기에 참모습이 숨겨져 있다는 '유곡장진'을 썼습니다. 아울러 '군현필치'는 각계 호걸 인재들이 반드시 이 신비로운 곳에 와보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유용 서예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던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엄지를 내세웁니다.
(타조를 그리고 있는 호홍 화가)
이때 유용 서예가의 뒤에 있던 백발 할아버지가 심상치 않는 손놀림으로 주목을 끕니다. 그는 흰 종이에무심하게 붓으로 점을 툭 찍다가도 낙서라도 하듯이 손목을 돌려 원을 그리기도 하고 또 아래로 쭈욱 내리 긋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것은 바로 타조무리였습니다. 한때 타조에 깊은 감동을 느끼고 타조 회화에만 몰두해온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타조들은 긍방이라도 뛰어나갈 듯한 동태와 입체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 백발이 창창한 할아버지는 바로 중미전통문화추진회 회장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명한 화가 호홍(胡弘) 입니다. 창작을 마친 호홍 화가는 뒷좌석에서 붓을 놀리고 있는 최재석 서예가의 작품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말을 건넵니다.
"호홍: 자네한테서 매우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네. 중국에서 몇 년간 공부했다고 들었는데 중국어를 전공했는가? 아니면 미술을 전공했는가?
최재석: 네, 저는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호홍 화가는 최재석 서예가의 테이블에 놓인 작품집을 펼쳐봅니다. 이 작품집에는 서예와 회화 작품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의 회화작품은 사실풍보다 추상화에 가까웠습니다. 점, 선, 면의 결합 혹은 글자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그림에는 그만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특히 "돌 석(石)"자만의 중첩으로 쌓아올린 그림 돌산은 서예와 회화의 교묘한 결합을 연출해냈습니다. 그의 작품에 대해 호홍 화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미를 잘 발굴해내는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풍격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작품은 중국 형식주의 창작기법과 큰 구별이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매우 좋습니다. 그의 서예 기초라던가 현대적인 창작이념, 회화구성의 완벽한 결합은 모두 훌륭하다고 봅니다."
(본 방송국 기자의 인터뷰를 받고 있는 호홍 화가(우))
호홍 화가는 왜 서예가의 작품에 이렇게 호감을 가질가하는 의문을 읽기라도 한걸가요? 호홍 화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갑니다.
"사실 저는 10살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전통서예를 배웠습니다. 몇십년간 해서, 초서를 비롯해 다양한 서체를 창작하다가 서예를 그림처럼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은 생각에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다른 글자체를 결부하거나 변형, 색을 칠하거나 등등 시도를 해보았지만 제 마음속의 그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혀 아예 회화쪽으로 전향했습니다. 서예와 회화는 완전히 다른 예술분야지만 내적인 아름다움과 점, 선, 면의 결합 등면에서는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자는 기발한 구상으로 충분히 두가지 영역을 교묘하게 결부해 운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호홍 화가는 본인이 이미 서예에서 회화분야로 넘어온 경우라면 최재석 서예가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호홍 화가는 앞으로 기회되면 최재석 서예가와 함께 공동전시 할 의향도 적극 내비쳤습니다.
(서예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말하고 있는 장지합 서예가)
한편 서예에도 회화적 요소를 결부해 새로운 현대적 서사풍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하는 호홍 화가의 주장에 난색을 표하는 서예가도 있었습니다. 중국서예가협회 이사인 장지합(张志合) 서예가는 서예의 전통기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과거 서예와 회화는 근원이 같다고 했지만 이 두 분야는 확실히 구분이 있습니다. 완성도가 높은 서예작품은 한폭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서예의 기본규칙을 어긋나지 않은 전제하에서의 창작입니다. 저는 서예창작이라고 하면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것만으로 예술적 가치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화 창작 중인 중국당대미술연구원 원장 유명례(刘明礼) 화가)
두 예술가가 서예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죠. 예술에는 정답이 없으니깐요. 각자가 작품을 통해 예술에 대한 해석을 표현할 뿐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 않을가요. 예술은 그저 예술대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공명을 일으키면서 그 가치를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중국당대미술연구원 원장 유명례(刘明礼) 화가는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그린 인물화는 대부분 즐거운 요소를 주제로 창작한 작품이 많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예술을 엄숙하게 바라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작품을 보고 호탕하게 한번 웃고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미술작품이라고 하면 우선 아름다워야겠죠. 이런 아름다움으로 평온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성공한 예술작품이 아닐가요."
유명례 화가의 이런 생각은 그의 작품에서 고스란히 나타났습니다. 그가 그린 강변에서 낚시하는 소동파의 모습은 평온했고 지어 해학적이기도 했습니다. 초유의 필화사건으로 황주에 좌천되었지만 달관한 소동파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던 것입니다.
이 무렵 최재석 서예가는 한글 작품창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벼루와 물에 번갈아 붓을 묻혀가면서 때로는 장력있게 때로는 섬세하게 붓을 놀리면서 한자한자 적어갔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이 바로 "처음처럼"입니다. 특이한 점은 상단에 적힌 "처"자는 양옆에 모음 "ㅓ"가 대칭되어 자음을 공유한 두 글씨로 되어있는데요. 틀에 박힌 정형화된 창작보다 변형과 창신을 시도하는 최재석 서예가의 고민이 엿보였습니다. 창작품 "처음처럼"에 대해 최재석 서예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동안 어느정도 예술생활을 했는데요. 이번 호북에 와서 여러 나라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느낌도 받고 앞으로의 예술생에 있어서 도움받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처음처럼'을 썼습니다. "
중, 일, 한, 몽 유교문화권에 있는 나라의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현장이 아니였을가 싶은데요. 일본에서 온 준지유 화가는 이번 필회 행사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말합니다.
"필회 교류를 통해 현장에 있는 예술가들은 모두 같은 지구촌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지리환경, 자연환경과 심미관으로 인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는 참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물론 함께 모여서 반나절동안 교류해도 자신의 기존의 화법, 서법을 고집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자극도 있고 미묘한 변화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변화와 자극으로 또 새로운 창의와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가요."
(현장에서 창작하고 있는 곡계 서예가)
필회 현장에서 숨돌릴 새없이 창작을 하던 중국서예가협회 회장인 곡계 (谷谿) 서예가도 이번 행사에 대한 깊은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번 중, 일, 한, 몽 4개국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창작한다는 것은 극히 드뭅니다. 이번 행사는 참여한 나라도 많고 그들의 창작한 작품은 어느 정도 중국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서법예술은 역사가 유구하고 예전에 일본, 한국, 몽골에 모두 비교적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중국 서예의 일부 필묵을 이어가면서 또 각자 나라 지역의 특색을 융합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류와 협력은 국제에서의 서예활동 추진에 모두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창작의 첫 선을 떼고 있는 장약화 화가)
서예, 회화를 막론하고 여러 나라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작품을 보고 견해를 주고 받고 지어 공동창작까지 이어진다면 예술교류의 묘미가 한층 덧붙여지지 않을가요. 그런 의미로 대형 테이블에서는 현장에 있던 화가, 서예가들이 명필을 날려 함께 작품을 완성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중국민족서화연구원의 장약화(张跃华) 화가, 중앙국가기관 미술가협회 명예주석인 마군(马军)화가,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 서화예술센터 오아문(吴亚文) 부교수가 함께 산수화의 윤곽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일본화가가 본인이 가장 능숙하게 그리는 참대를 그려 여백을 메우고 유화가들은 색감을 덧칠해 다양한 무늬와 색상을 연출합니다. 이어 서예가들이 왼쪽 상단에 시구를 적어내려갔습니다. 그러자 대형 도화지에는 나무와 모란, 자등 등 꽃으로 어우려진 한폭의 산수화가 탄생했습니다. 첫선을 뗀 장약화 화가는 이 작품이야말로 화이부동이라는 주제를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작품은 우리 화이부동이라는 주제에 맞게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소나무도 있고 모란도 있고 자등, 참대 등 다양한 식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제 다른 예술가들도 육속 명필을 날려 여백을 채워나가겠죠. 이 작품이야말로 대단원과 대화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가요."
현장에 있는 화가, 서예가들의 참여로 완성된 이 작품은 이번 필회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예술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 견해, 심미관을 가지고 현장을 찾은 예술가들, 그 내면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만은 같지 않을가요. 서로 다른 음계들의 조합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만들어지듯이 여러 나라 화가, 서예가들의 손을 탄 이 화폭이 그 답을 말해주겠죠.
[취재/글 : 권향화, 촬영: 조연]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