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0 10:15:48 | cri |
생계를 위해 열심히 신을 깁고 있는 우정국
수리부에 찾아가 병을 봐주고 있는 동대병원 연평선 원장
왕청현 대천 지역사회 대천소구역에 살고 있는 우국정은(58세) 1955년 여름 ,갑자기 열이 나 점적주사를 맞은게 탈이 돼 다리근육발육이 정지되는 바람에 두팔 밖에 없는 2급장애자로 되여 영영 걸을수 없게 되였다.
왕청현 계관향 장가점촌에서 태여난 우국정(于国亭)은 부모들이 사처에서 돈을 꿔서 장춘 208병원을 비롯한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 다니며 치료하고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가 치료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이렇게 되자 상심한 부모들은 아예 치료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곱살이 되자 여느집 애들은 자기절로 학교를 다녔지만 우국정만은 넷째 누이의 등에 업혀 훌륭한 성적으로 소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다녔다.학교에 다닐 때에도 혼자 위생실로 가지 못하는 국정이는 아침이면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여느 아이들은 노는 시간이면 운동장에 달려나가 마음껏 뛰놀며 웃고 떠들었지만 국정이만은 9년동안이나 홀로 교실을 지켜야 했다. 1979년 8월에 학교를 졸업한 우정국은 왕청시내의 크고 작은 단위를 찾아 다니며 취업하려 했지만 신체장애자여서 결국은 헛물만 켜고 말았다. 부모들은 하는수 없이 6000원의 대부금을 내서 열쇠 만드는 기계 두개,신수리기계 두개를 갖추어 2급장애자인 국정이가 생계를 유지해 나가게 하였다. 민정부문에서도 그가 자립자족하도록 고무해 주기 위해 왕청시내에 10평방미터 되는 수리부를 지어 주었다.
그때로부터 우정국씨는 열쇠를 만들고 신을 깁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하루에 3원도 벌고 5원도 벌고 10원도 벌었지만 자신의 신근한 노동으로 번 돈이라 아껴쓰고 한푼의 돈도 헛되이 쓰지 않았다.그러던 2000년도에 그에게 행운이 넝쿨채로 떨어졌다. 마음씨 곱고 무던한 장명운 여성과 백년계약을 맺고 꿀맛나는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는 떡판같은 아들까지 보아 집안의 분위기는 항상 웃음꽃이 피여났다. 아침이면 안해는 정국이를 업고 수리부에까지 데려다주고 남들이 퇴근할때면 수리부에 와 남편을 업어가군 하였다. 그런데 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그렇게 뜨겁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래 신체가 튼튼하고 예쁘던 아내 장명운(60세)이 2015년에 갑자기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정신질환에 걸려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자로 생활을 자립할수 없게 되였다.
2급 장애인이 된 아내는 그때부터 달마다 연변뇌과병원의 약을 800여원어치를 사다 복용해야 저녁에 조금이라도 잘수가 있었다.그러다 혹시 약이 떨어져 먹지 못하는 날에는 온 밤을 뜬눈으로 날을 밝혔다.
사회 각계에서는 이 불우한 가정에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었다.민정계통에서는 그들 부부에게 각각 1193원씩 최저생활보조금을 발급하고 올해부터는 80원의 특수보조금까지 발급하고 있다.이 소문을 들은 왕청동대병원 연평선(闫平先) 원장은 우정국과 장명운이 앓기만 하면 자기 병원에 모셔다 무상으로 치료를 해주군 하는데 여기에 드는 자금만 해도 해마다 만여원에 달한다.우국정의 이웃에서도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가져다 주고 아침이면 우국정을 안아서 전동차에 올려 놓고야 시름을 놓았다.
지금 우국정은 수리부로 나올 땐 정신질환에 걸린 아내를 집에다 두고 밖으로 열쇠를 잠그고야 시름놓고 출근한다. 기자가 우국정에게 '꿈'이 뭐냐고 믈었을 때 그는 "왕청 직업고중에 다니는 열일곱살나는 아들이 공부를 잘해 출세하는것을 직접 내눈으로 보고 죽는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우국정은 자기의 굳센 의지로 아름다운 삶의 노래를 엮어가며 남들은 상상도 못할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가고있다.
길림성 왕청현 신문보도센터 / 리강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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