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畢升)은 북송시기 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이름난 발명가이다.
활자 인쇄가 나오기 전 주로 수나라시기에 발명된 목판인쇄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목판인쇄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오직 한 책의 출판으로 국한되는 폐단이 있었기 때문에 출판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필요한 책을 간편하게 찍어내어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활자 인쇄가 시도되었다. 활자 인쇄는 송인종경력 원년으로 부터 경력 8년(1041-1048) 사이에 발명되었다. 활자 인쇄판은 우선 흙으로 활자판을 만든 후 거기에 글자를 찍는다. 그 후 활자판을 불로 굽는다. 불에 구운 매 하나의 글자를 배열해 책을 찍는데 이것이 바로 필승이 발명한 일명 점토활자 인쇄이다. 그러나 점토활자의 재료가 흙이기에 조판이 어려워 실용화되지 못했다.
필승의 활자 인쇄술이 발명된 후 이 활자판을 이용하는 과정에 점토활자 원리에 근거해 자료와 배판 인쇄면에서 큰 개진을 가져왔다. 원나라 초기 나무로 만든 활자가 나왔고 명효종 홍치(1488년)원년에는 동으로 만든 활자가 나왔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연으로 만든 활자가 발명되었다.
필승의 활자 인쇄술은 조선에 전해졌다가 다시 조선에서 일본에 전해졌다. 서부로는 신강을 거쳐 에집트, 유럽 나아가 세계 각지에 전해졌다. 필승의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중국 문화의 발전을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 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맑스는 "인쇄술, 화약 , 지남침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를 예고하는 3대 발명"으로서 "인쇄술은 과학부흥의 수단으로 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필승의 활자 인쇄술에 대해 동시대 과학가 심괄은 자신의 저서 "몽계필담"에서 상세하게 적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필승이 발명한 "점토활자"가 전해 내려온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중국역사박물관에는 필승이 발명한 점토활자판 복제 모형만 있다.
필승의 출신에 대해 아직까지도 정답이 없다. 비록 심괄이 "몽계필담"에서 필승의 활자 인쇄술 발명에 대해 상세하게 적고 있지만 그의 출신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심괄은 필승이 황궁에서 금을 제련했다고만 썼다. 일부 외국의 학자들은 필승이 야장쟁이었다고 주장한다. 필승이 어떤 출신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발명한 활자 인쇄술은 세계 인쇄술 역사에서 한차례 혁명이었으며 인류 문명사에 빛나는 한 폐지를 수록한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