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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시기 애국 시인 육유
2011-03-25 10:02:07 cri

육유(陸遊)의 자는 무관, 호는 방옹, 월주산음,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紹興市) 출신이다. 29세 때 진사 시험에서 1등을 했으나 재상 진회의 방해를 받아 전시에서 낙방하였다. 진회가 죽은 뒤 34세에 처음으로 관직에 올라 중앙의 미관과 지방관을 전전하였다. 육유는 관직에 있는 기간 요직에 있는 관리를 비판하여 몇 차례나 면직을 당했지만 항상 나라를 걱정하고 금(金)나라에 대한 철저한 항쟁을 주장했으며 또 그것을 시로 읊은 강직한 애국시인이었다.

육유는 66세부터 거의 20년을 고향에서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며 만년을 보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무렵 "아이들에게 알리노라"라는 시를 남기고 한을 품은 채 눈을 감았다. 그의 저서에는 "검남시고"와 "위남문집"이 있다.

그가 쓴 9천 3백여 수의 시는 민족모순으로 가득 찬 당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애국적 사상 감점을 토로한 것이 특징적이다. "밤에 병서를 읽고", "금착도행" 등 시에서 시인은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잘 보여주었다. "대장이 전쟁터를 나가며" 등 시편에서 시인은 낭만주의 수법으로 자신의 애국충정을 토로하였다. "옛일을 추억하여", "관산월" 등 시편은 통치계급의 화의정책을 규탄하고 그 정책이 빚어낸 악과에 대해 통분을 금치 못하는 시인의 형상을 잘 그려냈으며 당파를 무어 개인의 사리만 도모하는 관료배들과 전쟁터에 있으면서도 안일한 생활만 추구하는 장군들을 무자비하게 폭로하고 통책하였다.

육유는 격정적인 시를 쓰는 한편 근로 대중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농촌의 첨예한 계급모순을 반영한 시도 적지 않게 썼다. "농사군의 탄식"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육유는 또 사도 많이 썼다. "복산자 매화를 읊노라"에서 도고한 성격을 가진 시인의 꺽을 수 없는 절개를 보여주었다.

육유는 고전문학의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하여 시가창작에서 높은 성취를 거두었다. 그는 기묘한 상상과 과장 및 환상의 수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회포를 토로하였다. 그는 사물의 특징을 틀어잡고 섬세하고도 명백하게 강렬한 사상 감정을 선명한 형상가운데 구현시켰다. 그의 시는 후기의 애국적 시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후세의 애국지사들은 육유를 저들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85년의 생애에서 육유는 근 만여 수에 달하는 시편을 후세에 남겨 중국 시단에서 작품을 가장 많이 남긴 시인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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