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판교(郑板桥)의 자는 극유, 호는 판교이다. 고향은 강소성 흥화이다. 정판교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3살 때부터 부친한테서 글을 배웠다. 그는 6살에는 "사서오경"을 숙달할 정도로 총명했다. 20살에 정판교는 육종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서예를 배웠다. 그 후부터 정판교는 시, 그림, 서예 창작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되였다.
1736년 정판교는 진사가 되여 경성(京城,지금의 베이징)에 머무는 기간 시인묵객들과 널리 사귀면서 시야를 넓혔다. 1741년 그는 산동 범현의 7품 현령(县令)으로 발령받았다. 현령으로 있는 기간 장판교는 늘 백성들의 생활상황을 돌아보면서 실제 문제를 해결해 주어 청렴한 관리로 백성들의 애대를 받았다. 건륭 31년 (1766년) 정판교는 유현 현령으로 발령받았다가 부호들의 모함으로 파직 당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정판교는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면서 여생을 보냈다.
시, 서예, 그림 창작에서 뛰어난 재질을 보인 정판교는 특색 있는 문인으로서 금농, 황신 등과 더불어 "양주팔괴(扬州八怪)"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행해에 전예의 구조를 그대로 도입하여 독자적 서풍을 확립하였으며 그림 창작에 있어서 묵죽화에 뛰어났다. 그의 시풍은 남송의 육유(陆游)에 가까웠다.
저서로 "판교전집"이 있다. 그의 작품 중 "난득호도경"이 있는데 후세에 와서 이 저서는 정판교의 처세철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유명해졌다."호도(糊涂)"란 "바보"라는 뜻으로도 통하니 "난득호도(难得糊涂)"는 바보인 척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이 말은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면 화를 당할 것이기에 자신의 재주를 될수록 감추고 그저 바보인 척 인생을 살아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판교의 처세철학을 보여준 이 저서에는 지혜로우나 어수룩한 척하고 기교가 뛰어나나 서툰 척하고 강하나 부드러운 척하고 곧으나 휘어진 척해야 하며 이밖에도 사소한 잘못을 따지지 말고 다 함께 화목하고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는 인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새겨들을 만한 인생살이 지혜가 고전의 사례와 더불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정판교는 7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는 중국 문학사와 미술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