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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화가 팔대산인
2012-05-21 14:19:27 cri

팔대산인(八大山人)의 본명은 주답(朱耷), 주중계 등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호는 팔대산인이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치하면서 타 민족에 대해 변발령을 실시하였는데 이에 반발한 팔대산인은 삭발하고 출가하여 고향인 남창의 봉신산에 들어가 도를 수행하는 승려가 되였다. 수행 끝에 고승이 된 그는 60세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였다.

그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산수는 물론 온갖 기화요초와 새를 그리는데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그의 그림은 70세를 경계로 전반부는 꽃과 새, 후반부는 산수를 주로 그려 많은 명작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 "사생연화"는 초목에 대한 애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팔대산인의 그림 작품에서 "연화도"를 많이 볼 수 있다. 그가 연화도를 많이 그린 것은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이 비록 더러운 물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도고한 기품에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고 오히려 더욱 현란한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꾸는 것이 바로 그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대산인은 산수, 꽃, 조류, 물고기 등을 특이한 필치로 그렸는데 그가 그린 새와 물고기의 눈은 아주 예리하다. 그는 지극히 간략한 선을 구사하는 유례가 없는 화법으로서 인기를 모았다. 동시대 화가인 석도는 그림 가운데 사람을 그려 넣어 사람과 자연의 어우러짐을 표현했지만 팔대산인은 산수화를 그릴 때 사람을 그리지 않고 단지 정자만 그린다. 팔대산인과 석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과 천재성을 화폭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팔대산인은 수묵이나 소묘에서 자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팔대산인은 기존 문인화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자적인 개성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팔대산인은 자신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궁핍한 사람이나 천진한 아이들에게 주기를 좋아했지만 사람과 사귀는 것을 꺼려했다. 그는 늘 자기 세계 속에 빠져 고독한 생활을 했다. 그와 친분이 있는 석도와도 그는 가끔 편지를 나누는 정도였다. 팔대산인은 황족으로 태어나 한 때 호의호식했지만 승려가 된 후부터 고달픈 나날을 보냈다. 일반 평민들과 같이 농사도 짓지 못하고 장사할 줄도 모르는 그는 밤낮으로 그림을 그려 술 한잔, 쌀 한 되를 바꾸는 것으로 간신히 연명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중 "안만첩"과 작품집 "산수화조화책"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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