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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남라고항(南羅鼓巷)
2016-05-30 17:51:59 cri

 


남북 방향으로 앉은 남라고항(南羅鼓巷)은 북쪽 고루동대가(古樓東大街)에서 시작해 남쪽 지안문동대가(地安門東大街)에 이른다. 전체길이가 786m, 너비가 8m인 이 후퉁(골목)은 원나라의 도성인 원대도(元大都)와 동시기에 건설됐다.

원대도 시기 남북 통로였던 남라고항은 베이징의 오래된 거리이다. 또한 현재 중국에서 원나라 후퉁 가옥과 구조를 완정하게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며 규모가 가장 크고 품격이 가장 높으며 자원이 가장 풍부한 전통 서민 거리이다.

원나라 때의 이방(里坊) 구조는 세월의 변천 속에서 사라졌지만 남라고항에서는 여전히 원나라 시기 이방의 흔적을 찾아볼수 있다. 그야말로 건축역사의 기적이라 할수 있다.

이방은 중국 고대 주민 구역의 기본 구성으로 도시 계획 건설의 기초이기도 했다. 진나라 때는 "이(里)", "여(閭)" 또는 "여리(閭里)"라 했고 북위(北魏) 때 "방(坊)"이라는 호칭이 나타났다. 당나라 장안은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는데 도합 108개의 방이 있었다. 원대도는 여전히 이방 제도를 이어갔는데 전체 도시를 50개 방으로 나누고 방과 방 사이에는 넓고 곧게 뻗은 거리가 있었다. 그 구도가 마치 바둑판 같았다.

원대도는 주례(周禮)의 "자조우사(左祖右舍), 면조후시(面朝後市)"의 구도에 따라 건설됐는데 남라고항은 "후시(後市)"에 속했다. 지금의 남라고항 거리 북쪽은 고루동대가이고 남쪽은 지안문동대가, 서쪽은 지안문외대가(地安門外大街), 동쪽은 교도구남대가(交道口南大街)인데 이 4개 거리가 사각형 모양의 구역을 이루고 있으며 이 구역이 바로 원대도의 두개 방이였다.

또한 남라고항을 계선으로 동쪽은 "소회방(昭回坊)", 서쪽은 "정공방(靖恭坊)"이다. 남라고항은 양쪽으로 각각 8개 후퉁이 물고기 뼈 모양으로 이어져 있는데 원나라 당시에는 이름이 없었으나 명나라 이후 부터 후퉁마다 이름이 생겨났다. 그래서 지금의 모아후퉁(帽兒胡同), 복상후퉁(福祥胡同), 국아후퉁(菊兒胡同) 등이 있는 것이다.

이런 후퉁들은 지금도 옛날 모습을 보존하고 있으며 당시 도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 기재에 따르면 이방 제도는 방내의 경영 활동을 금지했는데 송나라 이후 부터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방 제도가 완전히 무너지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한 원나라때 남라고항 후퉁에 이름이 없었다는 것은 그때 까지 도시 기본 구조는 후퉁 즉 골목이 아닌 방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 지역에은 지금 까지도 상업 시설이 거의 없는데 이것은 이방 구조를 지금까지 보존할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 된다.

남라고항 지명의 유래에 관해서 명나라 <경사오성방항호동집(京師五城坊巷胡同集)>은 당시 이곳은 나과항(鑼鍋巷)이라 불렀다고 기록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곳에 곱사등이가 살았다 하여 곱사등이를 뜻하는 나과(羅鍋)를 이름으로 취했고 다른 하나는 이 거리가 중간이 높고 양쪽이 낮아 그 모양이 가마솥 같다 하여 나과항(鑼鍋巷) 즉 가마솥 골목이라 이름했다. 그리고 청나라 건륭(乾隆) 10년 베이징성 지도를 보면 "나과(鑼鍋)"는 비슷한 발음의 "나고(鑼鼓)"로 변했으며 고루동대가를 계선으로 북쪽을 북라고항(北羅鼓巷), 남쪽을 남라고항이 불렀다.

베이징과 700여년의 시간을 함께 한 남라고항은 베이징이 겪은 온갖 풍파를 지켜보면서 풍부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자랑하는 한편 사람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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