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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문화] 팔왕분(八王墳)
2016-06-13 17:13:27 cri

팔왕분(八王墳)은 베이징 동부 사혜교(四惠橋) 서남측의 통혜하(通惠河)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팔왕분은 여덟번째 왕의 무덤이란 뜻으로 이곳에는 원래 청나라의 '팔왕(八王)' 아지거의 골회(骨灰)가 묻혀있었다. 팔왕분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후세에 지명과 옛 이야기를 남겨주었다.

청나라의 법도에 의하면 보통 친왕이 사망하면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다. 그런데 팔왕은 왜서 골회를 묻었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아지거의 죽음부터 풀이해야 한다.

아지거는 친왕임이 틀림없으나 옥중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화장했으며 그 가족은 골회를 당시 베이징 시교의 황야에 묻었다. 이 곳이 바로 지금의 팔왕분이다.

청태조 누르하치는 총 1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지거는 12번째 아들이였다. 하지만 친왕으로 되기 전에 형님 주잉이 유금되어 죽었고 또 다른 형님인 바부하이가 연좌되어 처형됐다. 그리고 다섯번째 형 망구얼타이와 열번째 형 더거레이의 친왕 칭호가 취소되면서 아지거는 여덟번째 왕인 팔왕이 됐다. 용감하고 싸움에 능했던 아지거는 청나라 개국 초기 많은 전장에서 공을 세워 영친왕(英親王) 봉호를 받았다.

그러다가 1651년 둬얼군이 병사하자 아지거는 섭정을 비밀리에 추진하다가 폭로돼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그 골회가 통혜하 강변의 황야에 묻혔고 후세 사람들은 그 곳을 "팔왕분"이라고 불렀다.

강희(康熙)황제가 즉위한 후 아지거의 개국 공훈을 재평가했고 건륭(乾隆) 11년인 1746년에 팔왕분은 개축을 거쳐 궁문(宮門), 형전(亨殿), 보정(寶頂), 태룡비(驮龍碑) 등 건물을 세웠으며 규모가 매우 컸다. 그만큼 건륭황제도 아지거의 공을 인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국 초기, 아지거의 후대가 팔왕분의 궁문과 형전을 허물어 벽돌과 목재를 팔고 나무까지 베어 돈으로 바꿨다. 무덤속에 있는 부장품도 여러번 도굴당했다. 공화국 건국 초기, 팔왕분은 이미 여지없이 파괴됐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곳에 SOHO 현대성, 남보국제센터 등 고층 건물이 수풀처럼 들어 앉았고 팔왕분은 점차 부동산업의 황금 지역으로 부상했다.

팔왕분은 더이상 어제 날의 황량한 무덤이 아니라 북적거리는 번화가로 변신했다.역사 속의 팔왕의 이야기도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역사 상식:

친왕(親王)

봉건제도 작위 이름으로 왕의 칭호중 최고급이다.

한나라 때 부터 황제의 아들이나 형제를 왕으로 봉했다. 위진 시기 부터 왕은 친왕과 군왕(郡王) 두가지로 나뉘었는데 친왕은 황제의 아들과 형제에게 봉했고 군왕은 원래 황태자의 아들에게 내리는 작위였으나 나중에는 절도사 등 무관에게 봉했으며 일부 문관도 군왕 칭호를 받았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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