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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국아후퉁(菊兒胡同)
2016-08-15 15:34:42 cri

베이징에는 국아후퉁(菊兒胡同)이라는 골목이 있다. 동성구(東城區) 서북부에 위치한 이 후퉁은 남라고항과(南锣鼓巷) 연결돼 있다. 국아후퉁에서 국은 국화꽃이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 지명은 국화꽃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사실 국아후퉁 지명의 유래를 보면 국화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전한데 의하면 명나라때 이 골목은 판 국(局)자를 사용한 국아후퉁(局兒胡同)이었다. 국아(局兒)는 베이징 사람들이 마작판을 가리키는 속칭이었으나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다.

청나라에 이르러 건륭 연간에 이 골목은 같은 중국어 발음의 귤아후퉁(橘兒胡同)으로 바뀌었다. 이 골목에 귤나무가 있었는지 알수는 없으나 지명이 귤아후퉁으로 바뀌었고 조대가 바뀌면서 골목이름도 새롭게 바뀐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청나라 말기 선통(宣統) 연간에 또 다시 지금의 국화꽃 국자를 쓰는 국아후퉁으로 변경됐고 역시 그 이유를 알수 없다.

이렇게 국아후퉁의 지명은 여러번 바뀌었으나 특별한 의미가 없고 같은 발음의 다른 글자를 썼다.

특별한 점이라면 명나라, 청나라 시기 이 후퉁은 베이징의 "부자 동네"였다고 한다. 장군에서 대왕에 이르기 까지 유명한 관원들과 귀족들이 이 골목에 살았고 청나라 광서(光緖) 연간의 총리 대신 영록(榮祿)의 관저도 이 골목에 있었다.

당시 세도가였던 영록은 청나라 중앙정부의 주요 인물이었고 자희태후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동치제(同治帝)가 병상에 누운후 영록은 황위 계승자 선정에 참여했고 광서제가 보좌에 등극하기까지 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몇년뒤 영록은 자희태후의 뜻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조정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바로 이 국아후퉁에 있는 관저에서 10여년을 보냈다. 현재의 국아후퉁 3번지, 5번지, 7번지가 영록의 사당, 저택과 화원이었다. 민국 시기에 영록의 화원은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후퉁의 41번지는 원래 사찰이었다. 전한데 의하면 이 사찰의 원래 주인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傅儀)의 체승(替僧, 황제를 대신해 출가한 승려)이었는데 항일전쟁이후 점차 주민 구역으로 변했다.

공화국이 건립된 후 정부에서는 후퉁 개조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당시 낡고 허름했던 국아후퉁이 개조 범위에 속했다. 국아후퉁은 이 프로젝트가 가장 먼저 시작한 시범 공정이 됐다. 개축을 거쳐 국아후퉁은 사합원의 구조를 보류한 한편 현대적인 기능을 더해 전통적인 사합원의 부족점을 보완했으며 유엔에서 수여하는 "세계인간거주상(世界人居奖,UN Habitat Scroll of Honor)"을 받았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국아후퉁은 그 후로 수많은 외국인들의 발길을 끌었고 이곳에서 생활하고 관광하면서 중국 전통 문화를 느끼고 베이징 서민들의 생활을 체험하고 있다.

번역/편집: 조옥단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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