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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소양가후퉁(小楊家胡同)
2016-09-14 15:51:50 cri

중국 유명 작가 노사(老舍)의 소설 <사세동당(四世同堂)>을 읽었다면 생동하게 묘사된 베이징의 소양권후퉁(小羊圈胡同)을 기억할 것이다.

베이징 서성구(西城區) 중부 신가구(新街口) 남쪽에 위치한 소양가후퉁은 평범한 골목이지만 그 인지도가 높다.

소양권 후퉁, 양우리 골목이라는 뜻이다. 왜 사람 사는 곳을 양우리라 이름했을까? 그것은 이 후퉁의 구조와 관련된다.

이 후퉁은 일반 후퉁과 달리 매우 좁고 구불구불하며 또 찾기 힘들 정도로 은폐적이다. 이 후퉁은 입구가 2개 있는데 벽돌 세개 너비 정도 밖에 안 되어 차량이 드나들수 없다.

특이한 것은 좁은 입구를 지나 후퉁 안으로 들어가면 큰 공간이 펼쳐진다. 후퉁안에는 이렇게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두개 이어져 있고 그 사이에는 또 좁은 길목이 있다. 이런 특이한 구조가 양우리를 닮았다 하여 옛날 사람들은 이곳을 양우리후퉁이라 불렀다.

하지만 소양권후퉁이라는 이름은 현재 소양가후퉁(小楊家胡同) 으로 바뀌었다. 전한데 의하면 공화국 창건후 주민위원회에서는 사람이 사는 곳인데 양우리라고 부르는것이 타당치 않다고 생각해 비슷한 발음의 '소양가후퉁'으로 개명했다.

소양가후퉁이 유명해진 것은 아무래도 유명한 작가 노사 선생 때문이다.

국세가 복잡했던 민국시기, 이 후퉁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 후퉁에서 고달픈 동년 시절을 보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잘 성장한 아이는 실력파 청년 작가로 중국 문단에 등장하게 된다. 그가 바로 베이징 토박이 작가 노사 선생이다.

베이징 토박이 노사는 작품에서 주로 베이징과 베이징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나서 자란 이 후퉁은 창작의 무대가 됐던 것이다.

노사의 본명은 서경춘(舒慶春)으로 만족 정홍기(正紅旗) 출신이다. 1899년에 '민초작가' 노사는 소양권후퉁 8번지에서 태어났고 팔개국연합군 침략을 겪으면서 어려운 동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소설에서 이 후퉁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 곳은 원래 양우리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골목은 북평(北平, 지금의 베이징)의 기타 곧고 긴 후퉁과 달리 두개의 굴곡이 있으며 그 모양이 조롱박을 닮았다. 서대가(西大街)와 연결된 부분은 조롱박의 주둥이와 목처럼 가늘고 길며 지저분하다. 조롱박의 주둥이는 너무 작아 자세히 찾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조롱박의 목 부분을 지나면 담벽밑에 쌓아둔 쓰레기를 볼수 있는데 그제야 안으로 들어갈 용기를 얻는다. 마치 콜럼버스가 바다위에 떠있는 물건을 보고 앞으로 전진할수 있었던것 처럼 말이다. 몇십보 걸어 들어가면 갑자기 시아가 트이게 되는데 조롱박의 가슴 부분에 이른 것이다. 동서 너비가 40보 정도 되고 남북 길이가 30보 되는 원형의 이 공지 가운데는 큰 회화나무 두 그루가 있고 주변에 6~7가구의 집이 둘러 있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좁은 골목이 또 나타난다. 바로 조롱박의 '허리' 부분이다. 이 '허리' 부분을 지나면 또 하나의 공지가 나타나는데 앞에서 본 '가슴' 부분보다 두배 더 크다. 이것은 조롱박의 '배'라 할수 있겠다. 여기에서 '가슴'과 '배' 부분이 원래 양우리가 아니었을까! "

9세에 귀인의 지원을 받아 글공부를 시작해 14세에 우수한 성적으로 베이징사범학교에 진학했고 공비생으로 학업을 마친 노사는 졸업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었다.

1924년 그는 영국으로 떠나 런던대학 동방학원에서 강사로 있으면서 문학 창작을 시작했다.

국내혁명전쟁이 폭발하면서 노사는 전쟁속에서 대표작 <낙타상자(諾駝祥子)>를 창작했다. 베이징 일반 서민들의 빈곤한 삶을 그린 이 소설에서도 소양권후퉁의 그림자를 볼수 있다.

또한 항일전쟁 시기, 노사는 또 하나의 작품 <사세동당>을 창작했는데 소설의 배경은 역시 베이징성이었고 전통 대가족의 생활을 묘사했다.

인민예술가로 존경받는 노사 선생은 바로 이 허름하고 평범한 후퉁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창작의 기반을 다졌다.

만약 노사 선생의 출생과 그의 유명한 작품이 아니었으면 눈에 뜨이지 않는 소양권후퉁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지금의 소양가후퉁 역시 위대한 작가를 배출한 골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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