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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요아후퉁(鹞兒胡同)
2016-10-10 11:27:31 cri

베이징 토박이들은 매를 요아(鹞兒)라 일컬었다. 매는 베이징 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새였는데 베이징 골목에서 매를 애완동물로 삼아 새 초롱을 들고 산책하는 할아버지들을 종종 볼수 있었다.

희한하게도 베이징성에는 새의 이름을 딴 '요아후퉁(鹞兒胡同)'이라는 골목이 있다. 그렇다면 이 골목은 매가 많이 모이는 곳이었을까?

요아후퉁은 전문대가(前門大街) 남쪽 구간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길이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너비는 5m 정도 된다. 그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다만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전한데 의하면 최초 명나라때 이 골목의 이름은 지금과 같은 발음의 '요아후퉁(要兒胡同)'이었다. 하지만 청나라때에 이르러 조대가 바뀌면서 지금의 요아후퉁으로 개명됐으며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다른 후퉁에 비해 특별한 점이라면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베이징 토박이가 아니라 외지인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산서(山西) 이민들이 사는 동네였는데 베이징성에서 가장 큰 산서인 집거 지역이었다. 수많은 산서 상인들이 이곳에 발을 붙이고 베이징성에서 장사를 했다.

후퉁 남쪽에는 일찍 옹정(雍正) 연간에 세워진 규모가 큰 회관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부산회관(浮山會館)이었다. 부산(浮山)은 산서의 작은 도시었고 이 골목에는 부산에서 온 상인들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가 꽤 컸던 회관은 3개의 크고 작은 정원과 20여개의 방이 있었으며 극장 등 오락 시설도 갖춰졌다.

산서 부산현에서 상경한 서생과 상인들은 부산회관 이름만 듣고도 주저없이 이곳을 거처로 선택했다.

산서 상인들은 베이징에서 주로 화장품이나 식품, 잡화 등 장사를 했는데 주로 요아후퉁 부근의 전문외(前門外) 주보시(珠寶市)에서 점포를 경영했다. 또한 그중에서 재력이 있는 산서 상인들은 금융 점포인 전장(錢庄)을 열었다. 특히 민국 시기에 전장을 경영하는 산서 상인들이 많았다.

역사가 있는 곳에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있다. 전한데 의하면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에 산서 부산현 북정촌(北井村)에는 왕서복(王瑞福)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장사하는 한 마을 사람들이 부자가 됐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상경길에 올랐다. 수소문 끝에 요아후퉁 부산회관에 거처를 잡은 왕서복은 며칠간 어떤 장사를 할까 고민했다. 마침 회관에서 한 고향 사람을 만났는데 점쟁이었다. 점쟁이는 왕서복에게 전문대가 선어구(鮮魚口) 남쪽에서 주점을 경영하면 크게 성공한다고 예언했다. 이에 왕서복은 점쟁이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선어구에 작은 초옥을 짓고 '왕기주포(王記酒鋪)'라는 이름으로 주점을 개업했다.

작은 주점이었지만 찾는 사람이 꽤 많았고 반년 뒤에는 점점 더 흥성해져 왕서복은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여 왕서복은 그 돈으로 땅을 사고 큰 집을 지었으며 점원을 고용하고 더 큰 가게를 경영했다. 그리고 주점 이름은 원래의 "왕기주포"를 계속 사용했다.

시간이 흘러 1년이 지나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그믐날 저녁, 전문대가의 모든 점포들이 설명절을 맞아 휴업에 들어갔지만 왕서복의 주점만 등불이 켜져 있었다. 사실 그도 문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한 나리가 2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주점에 들어왔다. 영업을 마칠 시간이었지만 왕서복은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고 반찬과 술을 푸짐하게 올렸다. 세 사람은 가게 주인의 대접에 크게 만족했고 지체가 높아 보이는 나리는 가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왕서복은 "그냥 저의 성을 따서 간판을 걸었는데 사실 점포 이름이라 할수 없습니다." 라고 아룄다.

그 말을 들은 나리는 "연말인데 영업을 계속하는 점포가 아마 베이징성에 이곳 밖에 없을 것이오. 그러니 가게 이름을 '도일처(都一處)'라 하는게 어떻소?"라고 물었다.

왕서복은 학식있어 보이는 나리가 지어준 이름이라 감사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며칠뒤 몇명의 태감이 찾아와서 큰 간판을 전했는데 간판에는 '도일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태감은 이것은 건륭황제가 보낸 것이라고 전했다. 크게 놀란 왕서복은 얼른 엎드려 절을 올리며 성은에 감사했다.

건륭황제가 직접 간판을 하사한 가게라 하여 그 후로 왕서복의 주점은 점점 더 흥성했고 매일 수백명의 고객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때로 부터 '왕기주점'은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알리고 있는 유명한 가게 '도일처'가 됐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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