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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조양문(朝陽門)
2017-03-13 16:19:47 cri

원나라때 제화문(齊化門)이라 불렸던 조양문(朝陽門)은 옛 베이징 내성 성문 중의 하나로 동직문(東直門)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조양문은 옛날 베이징에 운송된 식량이 들어오는 성문으로 베이징성 백성들의 식량을 책임진 문이라 할수 있다. 식량을 실은 차량이 지난다 하여 조양문 성문 통로에는 벼이삭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식량은 조양문을 지나 베이징성내에 운반된 후 인근 지역 창고에 저장됐다. 하여 조양문 부근에는 '녹미창(祿米倉)', '해운창(海運倉)', 신태창(新太倉)' 등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곳은 옛날 관가 식량을 저장하던 창고였다.

원나라때 부터 청나라 시기 까지, 심지어 20세기 50년대에 이르기 까지도 조양문 일대는 경제가 발달한 번화가였다.베이징성에서 남부 3개 성문 외에 가장 흥성한 곳이 바로 조양문이었다. 조양문의 번화함은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의 영향이 컸다. 일찍 수나라때 개통된 경항대운하는 원나라때에도 베이징과 남방 각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 명맥으로 큰 역할을 발휘했다.한편 조양문은 대운하 북쪽끝에 위치한 통주(通州) 부두와 가장 가까운 성문이었다. 통주 부두는 조양문에서 동쪽으로 40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으며 당시 조양문은 베이징에서 남방으로 가거나 남방에서 상경하는 관원들과 상인들이 반드시 지나는 성문이었다. 하여 조양문을 드나드는 인파는 물론이고 왕래하는 차량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들이 앞다투어 조양문 일대에서 가게를 차리고 장사를 했다. 더 중요한것은 조양문은 식량 운송에서 반드시 경유하는 성문으로 대운하를 통해 베이징에 수송된 식량은 동변문(東便門) 또는 통주에서 차량에 실은후 조양문을 통해 베이징성내에 운반됐다.

그러나1915년 베이징에 철도를 부설하면서 조양문 옹성(瓮城)과 갑루(閘樓)가 철거됐고 1950년에 이르러 성루(城樓)와 전루(箭樓) 등 나머지 건축들이 선후로 철거되면서 조양문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지명으로만 남게됐다.

또한1978년에 사라진 조양문 자리에 입체 교차로가 건설됐다. 1990년에 이르러 베이징 2번 순환도로에는 입체 교차로가 29개에 달했는데 그중 14개가 조양문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성문 이름으로 명명됐다. 푸른 빛 유약기와의 조양문은 현재 빌딩숲으로 바뀌었고 한때 이곳에서 흥성했던 소상품 경제는 이미 국제적인 현대 상업과 문화로 대체됐다.

조양문 지하철역에서 밀려나오는 인파속에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있는가 하면 해외 방문객들도 있으며 또한 분위기 있는 바와 레스토랑을 찾는 젊이들도 많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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