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2 12:58:51 | cri |
명나라 가정(嘉靖) 43년인 1564년에 북방 소수민족의 침입을 막고 베이징성의 방어력을 제고 하기 위해 남쪽에 외성을 건설했으며 외성의 서북쪽에 서편문을 건설했다. 당시 통치자의 가장 큰 소원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외성 건설 당시 명나라는 먼저 영정문(永定門) 등 5개 성문을 건설했는데 나중에 외성의 동북과 서북 모서리에 내성과 연결되는 곳에 북쪽을 향하는 두개의 성문을 건설했다. 바로 동편문과 서편문인데 그 건축이 상대적으로 소박했다.
서편문의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동편문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관점은 출입에 편리하다는 의미에서 편문(偏門)이라 했다는 것이다.
1952년에 서편문 성루와 전루, 옹성이 철거됐고 1966년에 지하철을 건설하면서 인근 성벽이 철거됐다. 1988년 베이징 정부는 성루 동쪽에 위치했던 195m의 잔여 성벽을 보수했다. 이곳 성벽은 신제 벽돌로 복구됐기 때문에 동편문 성벽에 비해 정연하며 그 중에는 7곳의 유적지가 포함된다. 그리고 이곳은 '명나라 베이징성 성벽 유적지'이라는 간판을 걸어 기념하고 있으며 베이징시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
서편문은 현재 서편문외대가(西偏門外大街) 와 서편문동가(西便門東大街), 광안문 북빈하로(廣安門北濱河路) 인근 지역을 가리킨다. 서편문외대가는 금나라 시기 금중도(金中都)에서 거용관(居庸關)에 이르는 요로였으며 명, 청 시기 서편문 밖의 관도(官道)로 명나라 때는 예신가(禮神街) , 청나라 때는 광항가(光恒街) 라 했다. 서편문외대가는1987년에 지금의 지명으로 확정됐다. 현재 서편문 성벽 유적지 동쪽에는 총 길이가 409m 되는 대형 입체 교차로인 서편문교(西便門橋)가 있는데 1992년에 건설됐다.
번역/편집: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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