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2 13:02:41 | cri |
베이징의 종루와 고루는 원나라 지원(至元) 9년인 1272년에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대도성 도심에 위치했다. 하지만 나중에 화재로 파손됐다가 원성종(元成宗) 대덕(大德) 원년인 1297년에 재건됐으며 또다시 회재로 파손됐다. 그후 명나라 영락(永樂) 18년인 1420년에 재건하면서 그 위치를 도성 남북 중축선 북쪽 끝으로 확정했다. 하지만 나중에 연이어 화재로 파손됐다. 명나라 가정(嘉靖) 18년인 1539년에 고루가 번개에 맞아 개보수 건설을 진행했으며 청나라 건륭 10년인 1745년에 종루가 다시 재건됐다. 종루와 고루는 청나라때 여러번 수리 공사를 거쳤으며 지금의 고루는 명나라때 건설된 것이고 종루는 청나라때 건설된 건축이다. 그리고 1932년과 1941년을 전후로 건축을 보호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종루와 고루에 대해 부동한 규모로 수리 공사를 진행했다. 1984년에 정부는 종루와 고루를 대규모로 보수했고 1986년에 종루와 고루 문화재보관소를 설립해 종루와 고루에 대한 관리와 이용을 전담했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종루와 고루의 기능도 변화했다.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3개 조대에서 종루와 고루는 도성의 시간을 알리는 기구로 사용됐는데 고루에는 큰 북이, 종루에는 대형 종이 설치돼 아침에는 종이 울리고 저녁에는 북이 울리는 방식으로 시간을 통보했다. 당시 문무백관들이 시간에 맞춰 조정에 들고 백성들의 하루 일과는 모두 종루와 고루가 알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했다. 그러다가 1924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가 자금성을 떠나면서 종루와 고루는 그 기능을 잃게 됐다. 1900년, 8국연합군이 베징에 침입하면서 종루와 고루의 건축은 다행히 보존됐으나 많은 문화재가 파손됐다. 민국 연간에 종루와 고루가 대외로 개방되면서 민국 13년인 1924년에 8국연합군이 베이징에 침입했던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고루의 이름을 '명치루(明恥樓)'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제정루(齊政樓)'라 개명했다. 민국 14년인 1925년에 고루에는 '경조통속교육관(京兆通俗敎育館)'이 성립됐고 종루에는 민중극장이 설립됐다. 이렇게 종루와 고루는 대중 교육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957년에 종루와 고루는 베이징시 중점 문화재로 선정됐고 1984년에 종루와 고루는 공화국 건립후 처음으로 되는 대규모 수리 공사를 거쳤으며 1987년에 대외로 개방됐고 1989년 부터 관광객을 맞이했다. 그리고 1996년에 종루와 고루는 중국 중점 문화재로 선정됐다. 종루는 고루의 북쪽으로 약 100미터 되는 곳에 있는데 종루 중심에는 명나라 영락 연간에 주조된 큰 종이 있다. 이 종은 중국에 현존하는 체량이 가장 큰 종으로 '종 중의 왕'으로 불리운다.
이처럼 거대한 종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여기에는 이런 전설이 깃들어 있다.
종루에는 원래 철로 주조된 종이 있었는데 그 울림이 좋지 않아 황제는 천하의 유명한 장인들을 모아 새로운 종을 주조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났는데도 종이 완성되지 않자 황제는 대노하며 담당 태감을 사형에 처하고 80일 안에 종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장인들을 전부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명을 내렸다.
종을 주조하는 담당자는 화엄(華嚴)이라는 유명한 장인이었다. 그는 대형 구리 종을 주조하기 위해 침식을 잊어가며 심혈을 몰부었다. 그는 매일 집에 돌아와서도 종을 완성할수 없는 원인을 생각하고 뭐가 부족한지 자문하면서 궁시렁거렸다.
이때 딸 화선(華仙)이 다가왔다. 화엄의 딸 화선은 어려서 부터 영리해 아버지를 따라 많은 기술을 익혔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화선은 14살 부터 가정의 중임을 떠멨고 당시 16살 나던 그는 얼굴도 선녀같이 예뻤다. 종을 만드는 일 때문에 화선도 연일 고민했다. 깊은 사색에 빠진 아버지를 보고 화선은 '아버지, 혹시 불 세기가 모자란건 아닐까요?' 라고 물었다. 이에 화엄은 '일리 있는 말이야! 하지만 어떻게 온도를 높인단 말이지?' 라고 되물었다. 이에 화선은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종을 주조하던 날 조정의 관리와 장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가마의 온도가 올라가지 못해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게 생겨 화엄은 급한 나머지 눈까지 벌개졌다. 이때 사람들 속에서 한 처녀가 갑자기 뛰어 나왔다. 바로 아름다운 화선이었다. 화선은 붉은색 상의와 바지를 입었고 붉은색의 꽃신을 신었다. 그는 가마옆에 다가가더니 갑자기 불가마 속으로 뛰어들었다. 놀란 화엄은 몸을 던져 화선을 잡으려 했으나 꽃신 한짝만 손에 움켜 쥔채 딸을 잃어버렸다. 순간 화염이 솟아 오르고 구리물이 용솟음쳤다. 화엄은 이를 악물고 기세를 빌어 장인들과 힘을 모아 드디어 종을 만들어 냈다.
그후로 사람들은 종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름다운 처녀를 기념하여 화선을 '주종(鑄鐘)여신' 이라 불렀다. 매번 비바람이 매서운 밤이면 종소리가 유난히 처량했다. 그때마다 옛날 베이징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종루에서 종소리가 울리는구나. 빨리 잠들거라. 주종여신이 꽃신 찾으러 올거야…'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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