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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공만항(龔萬巷)
2018-10-27 17:13:05 cri

공만항은 합비시(合肥市)에 위치해 있다. 합비시는 안휘성(安徽省)의 성 소재지이자 정치, 경제, 문화, 정보, 금융 및 상업의 중심지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중요한 과학연구교육기지이기도 하다. 합비는 2천여년의 역사가 있는 고성으로 "삼국의 옛 땅, 포증(包拯, 포청천)의 고향"으로 불린다. 합비는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명승고적이 많으며 대표적으로는 비수대전 옛 터, 포공사(包公祠) 등이 있다.

합비시의 삼효구(三孝口) 서남쪽에는 6자를 넘는 너비의 골목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공만항(龔萬巷)"이라 부른다. 여기서 만은 굽을 만(彎)을 사용하기도 하고 일만 만(萬)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거리를 말하자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청나라 연간, 여기에는 두 세도가가 살고 있었다. 하나는 공(龔)씨 집안으로 주인은 조정의 관원이었고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공대사마(龔大司馬)"라고 불렀다. 다른 한 집은 만(萬)씨였였는데 집주인은 현지에서 권세가 대단한 갑부였다. 사람들은 그를 "만대(萬大)나리"라고 불렀다. 이 두 가문은 이웃이었지만 오랫동안 서로 왕래가 없었고 별다른 일이 없이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해, 공씨네는 정원과 집을 새로 짓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목적은 바로 재력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성내에서 유명한 설계사를 구하여 설계를 하도록 했으며 여기에는 정자며 누각이며 모두 들어 있었다. 공씨네는 이 설계대로 가옥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만씨네도 집을 다시 지으려 했다. 뿐만 아니라 그 기세가 공씨네 못치 않았다. 사실 두 집안 각자의 일이었으나 하루는 크게 다투게 되었다. 그 이유는 두 집 모두 자기집 담장을 좀 더 밖으로 늘여 면적을 확대하려 했던 것이다. 공씨네가 땅을 더 점하여 가옥 면적을 늘이면 만씨네는 면적을 늘일 수 없으므로 당연히 반대했다. 똑같이 만가네가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면 공가네가 또 탐탁치 않을 일이다. 두 집은 땅 문제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심하게 다투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공사를 중지하고 관아를 찾아가 시비를 가리기로 했다.

그러나 공씨와 만씨는 모두 권력과 지위가 있는 대 가문이라 고작 말단 관리인 현령은 쉽게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질질 끌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공씨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먼저 공사를 시작했으니 당연히 이 땅을 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밤 즉시 베이징성에 있는 나리께 편지를 전했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공대사마가 직접 나서서 땅을 돌려 받고 가문을 위해 시비를 가려달라는 것이었다.

공대사마는 편지를 받은 후 몹시 화가 났다.

"얼마 안되는 땅인데 만씨가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니 너무하네. 본때를 보여줘야 겠어."

이때 공대사마의 부인이 다가와 화를 내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부인에게 사건경위를 들려 주었다. 부인이 듣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했습니다. 이웃간에 벽 하나 사이 두고 지내는 것도 인연인데 지금 고작 이 벽 때문에 계속 다투는 것이 필요한 일일가요? 당신은 조정의 요직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런 작은 일에는 큰 아량을 보여주는 것이 맞는 법이고 이렇게 해야 솔선수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보하는 것은 어떨가요?"

공대사마가 부인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는 바로 편지를 보냈다. 공씨 가문은 베이징성에서 편지가 오니 모두 기뻐했다. 맘속으로 이제서야 분을 풀수 있겠다고 생각했다.편지를 뜯어 보니 시 한편이 적혀 있었다.

벽 하나를 위해 천리길 마다하고 편지를 보냈구나

3자를 양보한다고 큰 일이 날고

만리장성 건재하지만

당년의 진시황은 보이지 않는구나

공씨 가문 사람들은 편지를 보고 많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바로 이랫사람들에게 담장을 3자 뒤로 옮기도록 했다.

공씨 가문의 뜻하지 않던 행동에 만씨 가문은 크게 놀랐다. 하여 만가네도 이웃간의 화목을 귀하게 여겨 장을 뒤로 3자 겼다. 이렇게 공씨와 만씨의 저택간에는 너비가 6자 되는 골목이 생기게 됐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골목을 공씨와 만씨의 골목이라는 의미로 "공만항"이라 이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비슷한 발음의 굽을 만을 사용하여 "공만항"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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