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낭묘계(錦囊妙計)
◎글자풀이: 비단 금(錦), 주머니 낭(囊), 묘할 묘(妙), 셈할 계(計)
◎뜻풀이: 비단 주머니에 든 묘한 계책이라는 뜻이다
◎유래:
군사의 요충지인 형주(荆州)를 오랫동안 탐내 온 오(吳)나라 군주 손권(孫權)에게 대도독 주유(周瑜)가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손권의 누이 동생인 손상향(孫尙香)과 유비의 혼담을 미끼로 형주땅을 손에 넣는다는 것이었다. 손권은 유비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누이와의 혼인을 청하오니 남서(南徐)로 친영(親迎) 와줄 것을 부탁했다.
청을 받은 유비가 관우, 장비 그리고 여러 문신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는 주유의 사악한 음모인 게 틀림없소. 하여 이 혼담을 거절할 참인데 공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에 제갈량이 대답했다.
"공께서는 안심하고 다녀오십시오. 별일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대신이 말했다
"계략이 많기로 소문난 주유가 이번에는 또 어떤 꿍꿍이를 꾸밀지는 모르는 일이잖소. 만에 하나 공께서 화를 당하게 된다면 자네는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오."
제갈량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주유가 어떤 속셈인지 제 눈에는 뻔히 보입니다. 이번 기회에 주유의 얄팍한 꾀와 그의 병사들을 모조리 짓밟아버릴 것입니다."
제갈량의 말을 믿고 유비는 조운(趙雲)의 호위를 받으며 동오로 가는 길에 올랐다. 떠나기 전 제갈량은 조운에게 금낭 세개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세 개 금낭에는 묘계가 하나씩 들어있다. 강을 건넌 후 첫 번째 금낭을 풀어보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머지를 차례로 풀어보도록 하여라."
언덕에 다다랐을 때 조운은 첫 번째 금낭을 열었다.
"군사를 풀어 만천하에 혼인 사실을 알리거라."
조운은 병사들에게 혼례에 사용될 예물을 구해옴과 동시에 유비와 손상향의 혼인 사실을 퍼뜨리게 했다. 소문은 삽시에 온 성안에 퍼졌고 곧이어 동오의 원로 교현(喬玄)에게도 전해졌다. 교현은 손상향의 모친 오태후를 찾아 축하 인사를 올렸다. 갑작스러운 딸의 혼인 소식을 듣고 화가 잔뜩 난 오태후는 노발대발하며 손권을 불러 추궁했다.
"이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이 어미를 얼마나 우습게 알면 누이의 혼사조차도 어미인 내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냐. "
손권은 하는 수 없이 실토하였다.
"두 사람을 진정으로 혼인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유비를 속여 동오로 건너오게 한 다음 기회를 엿봐 없애버리기 위한 계책일 뿐입니다."
아들의 말을 들은 오태후는 더 크게 노하며 고함을 질렀다.
"내 딸을 미끼로 유비를 죽인다고? 유비가 죽고나면 내 딸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한데 그리 할 수는 없다. 내가 직접 유비를 만나야겠다. 만약 마음에 들면 유비를 내 사위로 삼을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뜻대로 하여라."
한편 유비와 조운은 감노사(甘露寺)에 도착했다. 사찰의 주위를 둘러보던 조운은 주위에 자객들이 매복되어 있음을 감지하였다. 이 또한 오태후가 마음에 들지 않을 시 곧바로 뛰어들어가 유비를 잡으려 한 손권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위협을 느낀 조운은 두 번째 금낭을 풀었다.
"오태후를 만나 청을 올리거라."
다음날 오태후가 감노사에 들러 유비를 만났다. 오태후가 들어서자마자 유비는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늠름한 제왕의 기골을 갖춘데다가 공손하게 대하는 유비를 본 오태후는 매우 흡족해하였다. "태후마마 저희가 모해당할까 두렵습니다." 유비는 오태후에게 매복된 자객들을 철회하고 목숨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오태후의 도움으로 유비는 죽음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손상향과 혼례를 치른 뒤 동방화촉의 단꿈에 흠뻑 젖어 있던 유비는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조운이 인제 그만 돌아가자고 수차례 간청을 올렸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유비도 위험해지고 형주땅도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운은 세 번째 금낭을 풀었다.
"조조군이 형주에 쳐들어온다."
제갈량의 신묘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조운은 곧바로 유비에게 이를 알렸다. "조조가 원수를 갚고자 병사를 거느리고 형주에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주공께서 조속히 돌아오라는 전갈입니다."
조운의 다급한 청에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유비는 손부인을 데리고 동오를 빠져나와 무사히 귀환하였다.
금낭묘계 이 고사성어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