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7 16:51:23 | cri |
(사진설명: 아름다운 고도 상구)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도 11 중 열번째인 상구(商丘, Shangqiu)는 불문화와 비즈니스를 가리키는 상(商)문화의 발원지로 천인합일을 주장하며 일월과 함께 하는 고도의 대표이다.
보통 상구라고 하면 고도를 잘 아는 사람들도 조금은 낯설어 머리를 갸웃거리며 인터넷을 뒤진다. 검색결과를 보고나서야 이토록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보유한 상구가 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상구는 불의 발원지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만여년전에 수인씨(燧人氏)가 이 곳에서 중국 최초의 불씨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제(五帝)때 다섯 황제중의 한 명인 제곡(帝喾)이 곳에 도시를 조성하였고 중국 역사상 두번째 조대인 상탕(商湯)이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건국하고 이 곳에 도읍을 정했다.
사천여년전 제곡의 비 간적(簡狄)이 검을 알을 삼키고 알백(閼伯)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상구의 조상이라고들 한다. 천문에 능한 알백은 높은 곳에 올라 별자리를 보고 단아래 둔덕을 상구(商丘)라 이름했다고 한다.
(사진설명: 고도의 성과 해자)
그 뒤 알백의 손자가 말이 끄는 수레 마차(馬車)를 발명하고 알백의 여섯번째 손이 소가 끄는 우차(牛車)를 만들었으며 그로부터 소와 말을 훈련시켜 생산에 사용해 사람들의 생활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소와 말의 힘으로 먹고 입는 물품이 남아돌게 되자 상구의 사람들은 소와 말이 끄는 차에 물품을 싣고 나와 서로 화물거래를 하게 되었고 그런 사람을 상인(商人)이라 불렀으며 그 뒤 상인은 비즈니스의 대명사로 되었다.
오늘날 고도 상구는 귀덕(歸德)으로도 불리운다. 이 곳 귀덕은 또한 고대 중국의 당(唐)나라때 안사(安史)의 난으로 유발된 가장 참혹한 전쟁이 있은 수양(睢陽)이기도 하다.
안사의 난을 일으킨 반군 4만명이 당시 당나라의 도읍으로 진군하는 길에 이 곳 수양에 이르렀는데 장순(張巡)이라는 수양의 지사가 용사 1천여명을 거느리고 장장 10개월동안 버틴 그 고도가 바로 상구이다.
(사진설명: 고도의 해자와 석교와 성문)
그토록 험악한 전투를 겪었음에도 고도 상구는 변함없이 고요하게 그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모던한 현대도시의 중심에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도로가 점점 좁아지고 도로 양쪽에는 고건물을 본따서 지은 가게들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차량들이 뜸해지면서 눈앞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진다. 넓은 수면의 해자가 나타났기 때문이고 그 위의 다리에 올라서면 고도 상구가 바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고도 상구는 원래 해자에 둘러싸인 성곽도시였다. 해자를 따라 둘레 3.6km길이의 성이 뻗어 있는데 바같쪽의 성은 둥글게 쌓고 안쪽의 성은 네모나게 쌓았으며 사면에 성문 여덟개를 냈다.
아치형의 성문위에는 날아갈듯한 누각식의 성루(城樓)가 솟아 있고 바둑판 식으로 네모반듯한 거리와 골목의 사이사이에는 완정한 가옥들이 정연하게 줄지어 원초적인 모습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사진설명: 고도 상구의 거리)
고도 상구속에 들어서면 더욱 감탄이다. 어젯날의 옛 길은 오늘날도 번화한 상가여서 옛스러운 고건물에 모던한 장식이 어울려 고도가 오늘날도 살아 숨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누구도 특별히 옛스럽게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바닥돌을 모던한 타일로 바꾸지 않아도 우뚝 솟은 패루(牌樓)의 바로 곁에 차린 가게며 돌사자 바로 옆에 줄지은 구멍가게들이 조화로움 속에서 어젯날 고도의 흔적을 살며시 드러낸다.
고도 상구의 남쪽 성문을 나서면 강서(江西) 여산(廬山)의 백록동(白鹿洞)서원, 호남(湖南) 장사(長沙)의 악려(岳麗)서원, 하남 등봉(登封)의 숭양(崇陽)서원과 함께 고대 중국 북송(北宋) 4대 서원인 유명한 응천서원(應天書院)이 나타난다.
북송시기의 유명 학자인 범중엄(範仲淹)이 이 곳에서 공부하고 상구에 눌러앉았으며 당시의 유지들이 이 곳에서 강연을 많이 하면서 배움을 위해 서원을 찾는 학도들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응천서원은 또한 온 세상이 다 아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학자 후방역(候方域)을 키운 곳이기도 한다. 응천서원외에 고도 상구에는 후방역의 생가가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
관료가문의 자손인 후방역과 기생신분의 미인 이향군(李香君)간의 사랑은 가문의 찬성을 받지 못해 후씨저택이 들어왔지만 이향군은 비애끝에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버리고 후방역도 몇년이 지나지 않아 금방 그 뒤를 좇아 세상을 하직했다.
(사진설명: 고도 상구의 일각)
문묘(文廟)과 교회당, 사합원 양식의 가옥들 모두에서 고도 상구의 유구한 역사를 읽을수 있다. 오늘날도 90여갈래의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에서도 세월이 남긴 자취를 엿볼수 있다.
미처 보수를 거치지 못한 가옥과 희미한 간판, 범상하기 그지 없는 우물, 이 곳에서만 맛 볼수 있는 음식 등에서 조금만 유의해도 세월속에 사라진 어젯날의 이야기를 찾을수 있다.
성곽의 남쪽 해볕바른 쪽에는 항상 노인들이 모여 장기를 두거나 노래를 부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성곽의 곁을 흐르는 해자의 물은 변함없이 고요하게 흐른다.
해자를 사이두고 고도를 바라보면 성을 드나드는 행인과 자전거, 삼륜차 등이 실북나들듯 하는데 그 모든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돌사자가 동적인것과 정적인것의 조화를 이룬다.
상업의 발원지, 불의 발원지 상구는 최고의 풍수를 자랑하는 곳이고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고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조용하게 세상에 묻혀 있다.
아니, 그것이 최고이리라. 바로 상구가 자세를 낮추고 몸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고도가 관광지로 부상하지 않았고 이 곳 사람들도 자신들의 생활을 계속할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고도가 더 잘 보존될수 있을것이니 말이다.
(사진설명: 고도 상구의 일각)
설명:
고도내에는 유적이 아주 많으나 찾기가 쉽지 않다. 간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자세히 찾아야 한다. 따라서 어느 순간에 대단한 발견을 할수 도 있다.
고도의 메인거리에는 손만 들면 정차해서 손님을 태우는 미니버스가 다닌다. 그 차량을 이용해 성밖의 응천서원이나 장순의 사당을 찾아갈수 있다. 숙박은 편의상 고도보다는 신도시에 하는 것이 좋다.
위치: 하남(河南, Henan)성 상구(商丘, Shangqiu)시
교통: 신도시 상구는 베이징(北京, Beijing)과 홍콩 구룡(九龍)간 철도인 경구(京九)선 철도연선에 위치해 있다. 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하게 상구에 도착이 가능하고 고도는 상구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계절: 눈 내리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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