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7 16:48:33 | cri |
(사진설명: 옹화궁 입구)
청나라 옹정황제의 거처ㅡ옹화궁
베이징 고궁 북쪽에 세워진 고루(鼓樓)에서 고루대가(鼓樓大街)를 따라 동쪽으로 한 4, 5리가량 가면 옹화궁(雍和宮)이 발목을 잡는다.
온화하고 화목할 "옹(雍)"자를 따 이름을 단 이 건물은 청(淸)나라 제5대 황제 옹정(雍正)의 왕부였다. 1694년 옹정의 부친인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康熙)가 넷째아들 옹정에게 하사했다는 이 건물은 1735년 옹정이 죽은 뒤 1744년부터 장전(藏傳)불교 사원 즉 라마교(喇嘛)사원으로 정식 개칭되어 청정부의 전국 장전불교사무 관리센터가 되었다.
부지면적이 6만 6000여 평방미터인 사원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이 만복각(萬福閣)내의 미륵불이다. 티베트 7세 달레라마가 청나라 건륭(乾隆)황제에게 바쳤다는 미륵불은 지하 8미터, 지상 18미터, 총 신장이 26미터이다. 1950년대 통계에 따르면 사찰내 방이 661개이고 그중 불당만 238개라고 한다.
한족과 만족, 몽골족, 티베트족의 다양한 건축예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옹화궁은 1961년 국무원으로부터 "국가중점문물보호재"로 선정되었고 1983년 "한족지역 불교사원중 전국중점사원"으로 지정되었다. 1981년 옹화궁은 대외에 개방되었다.
한족지역에 위치한 전국 중점 불교사원ㅡ옹화궁
옹화궁에는 천왕전(天王殿)과 옹화궁전(雍和宮殿), 영우전(永佑殿), 법륜전(法輪殿), 만복각이라고 부르는 건물들이 남쪽에서 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진설명: 한족과 만족, 몽골족, 티베트족 문자로 씌여진 옹화궁 현판)
그중 옹화궁전은 옹화궁의 주건물이고 천왕전은 사원의 정문으로 일명 옹화문(雍和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천왕전은 사원 북쪽의 수성루(綏成樓)라고 부르는 철문과 마주하고 있다.
옹화문: 옹화문 건물중앙에는 미륵불이 있고 양쪽에는 사방호법신(四方護法神)이라고 부르는 인도 거인 형상에 중국의 전통복장을 착용한 4대천왕 불상이 있다. 4대천왕은 저마다 검이나 비파, 우산, 뱀(蛇) 등을 손에 들었다. 검을 든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바람을, 비파를 든 지국천왕(持國天王)은 곡조(調)를, 우산을 든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비를, 뱀을 든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순조로움(順)을 의미한다.
(사진설명: 옹화문을 향해 기도하는 불교신도들)
관습에 따라 4대천왕의 자리순서는 본래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지국천왕, 다문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을 줄세워야 한다. 4대천왕중 지국천왕은 동방천왕(東方天王)으로도 불리는데 옹화문안의 지국천왕은 동쪽이 아니라 서쪽에 자리했다. 이는 좌측을 상석(上席)으로 여기는 한족의 풍습과 우측을 상석으로 여기는 티베트족, 몽골족의 관습을 절충시켰기 때문이라 한다.
옹화궁전: 옹화궁전에는 석가모니와 연등(燃燈)불, 미륵불 등 삼세불(三世佛)이 있는데 이중 석가모니불상은 현재(現在)를 상징하고 좌측의 연등불은 과거를, 우측의 미륵불은 미래를 상징한다.
옹화궁전 동쪽에는 밀종전(密宗殿)과 약사전(葯師殿)이 있고 서쪽에는 강경전(講經殿)과 수학전(數學殿)이 있는데 이 4곳을 통털어 4학전(學殿)이라고 부른다. 수학전은 라마승들이 천문학과 지리, 역법 등을 공부하던 곳으로 청나라때 해마다 이 곳에서 역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밀종전에는 소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신상(神像)이 세워져 있는데 밀종전은 라마승들이 밀종의 율법을 배우던 곳이다. 밀종은 중국 불교 여러가지 종파중 하나다.
약사전은 라마승들이 의학공부를 하던 곳이였다고 한다.
(사진설명: 라마승려들이 앉았던 자리들)
라마교의 명칭은 원래 장전불교였다. 장전불교는 티베트지역의 대승불교를 말하며 흑(黑)교와 백(白)교, 화(花)교, 홍(紅)교, 황(黃)교 등 5가지 유파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교풍(敎風)이 가장 청신한 황교가 라마교다. 라마교는 명청시기 황제가 국가차원에서 권장함으로 하여 당시 중원의 한족지역과 내몽골지역에까지 널리 전파되었다.
영우전: 영우전에는 목조대불(木造大佛) 3존이 있는데 불상높이는 2.5미터다. 중앙에 무량수불(無量壽佛)이 있으며 좌측에 사후불(獅吼佛), 우측에 약사불(葯師佛)이 있다. 동쪽과 서쪽 벽에는 건륭황제의 모후와 궁녀들이 4000여개의 자수(刺绣)조각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는 백도모화상(白度母畵像)과 녹도모보수상(綠度母補绣像)이 각기 걸려있다.
법륜전: 사찰 지붕에는 색다른 형태의 티베트식 탑 다섯개가 있다. 사찰에는 쭝커바(宗喀巴)라고 부르는 6.1미터 높이의 동으로 만든 불상이 있다. 티베트 정통파 불교의 개혁자인 쭝커바는 엄격한 계율로 밀교와 현교(顯敎)를 통합한 신교도 종교운동을 벌렸다고 한다. 현교 역시 불교종파중 하나다.
(사진설명: 법륜전)
만복각: 만복각은 높이 25미터의 사찰로 법륜전 북쪽건물이다. 만복각 양쪽에는 요나라와 금나라때 건축풍격으로 지은 영강각(永康閣)과 연수각(延綏閣)이 있다.
(사진설명: 만복각)
옹화궁의 조각품보물 3가지: 옹화궁에는 오백라한산(五百羅漢山)과 단목대불(檀木大佛), 남목불감(楠木佛龕)이라는 조각품 보물 세가지가 있다. 오백라한산은 법륜전에, 단목대불은 만복각에, 남목불감은 만복각 동쪽의 소불루(昭佛樓)라는 건물에 있는데 오백라한산은 자색(紫色) 단목 통나무를 깎아 만들고 각기 금칠과 은칠, 동칠, 석(錫)칠을 했다.
오백라한중 어떤이는 불법을 읽고 있으며 어떤이는 술취해 있거나 사색에 잠겨있고 어떤이는 학을 타고 하늘을 날거나 호랑이나 용을 딛고 너털웃음을 웃고 있는데 소탈하고 여유있는 표정을 보면 인간세태를 비웃는 듯 하다.
26미터의 단목대불은 불상 몸통 직경이 8미터, 무게가 약 100톤이다. 이 불상은 통나무 한대를 통채로 깎아 조각한 불상중 중국에서 가장 큰것이라 한다. 이 불상을 일명 만달라불(萬達拉佛)이라고도 부른다.
(사진설명: 신장이 26미터인 단목대불)
만복각은 옹화궁내 최북쪽 건물안데 풍수설에 따라 만복각에 최대 불상을 세웠다고 한다.
남목불감에는 용 99마리가 새겨져 있다. 남목불감이 있는 소불루는 건륭황제의 모후가 불상을 모셨던 곳이라고 한다.
옹정황제애 대한 평가
1753년 옹정황제가 죽은 뒤 그의 영구는 옹화궁에 잠간 머물렀다.
역사상 중국은 청나라때 "강건(康乾)성세"라고 하는 번영을 누리던 시기가 있었다. 서한(西漢)의 "문경(文景)성세", 명(明)나라의 "영락(永樂)성세", 당(唐)나라의 "정관(貞觀)성세"와 함께 역사에 기록된 "강건성세"는 청나라 강희황제와 건륭황제의 이름에서 첫글자를 따 지은 것이다. 옹정황제는 강희황제의 넷째 아들이며 건륭황제의 아버지이다. "강건"이란 뜻을 할아버지와 손자때만 나라가 번영한줄로 착각할수 있지만 기실 옹정재위때 중국은 농업이 크게 발전되고 민족단결과 중앙집권제가 전에 없이 강화되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옹정황제 등극때 은 700만냥이던 청나라 국고는 옹정재위 13년이 지나 건륭황제가 등극할 때는 5000만냥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진설명: 옹화궁의 웅위한 건물일모)
그러나 온화할 "옹"자를 따 년호를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옹정황제의 성격은 포악했다. 부친 강희황제를 독살하고 제 아우의 손에서 왕권을 탈취했으며 황제가 된후에는 정권장악에 이용된 "군기처(軍機處)"라고 하는 특설기구를 설치해 반대파를 탄압했다.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曺雪菫)의 "조설근신전(新傳)"이나 당시 "옹정조만문주비상서전역(雍正朝滿文朱批奏折全譯)"만 보더라도 옹정의 성정이 난폭하고 타인에 대해 무자비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조설근신전"은 옹정을 "야심이 남보다 훨씬 많고 음흉하며 수단이 교묘하고 잔혹한 정치음모가"라고 평가했고 "옹정조만문주비상서전역"에는 "옹정황제의 정치실적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모르겠으나 그가 권모술수의 능수라는데는 다들 견해를 같이할 것이다."라는 평가가 실려있다.
사진/김동광 글/김웅
(사진설명: 저 멀리 사람이 몰켜있는 데가 옹화문이다)
(사진설명: 옹화궁의 화려한 장식들)
(사진설명: 옹화궁의 건물과 지붕들)
(사진설명: 옹화궁의 곳곳 지붕들은 빼여나다)
(사진설명: 옹화궁내 건물일모)
(사진설명: 옹화궁내 불상)
(사진설명: 티베트사람들은 이것을 돌리며 념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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