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4 11:13:05 | cri |
2017-09-05huati.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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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룡촌 차밭 풍경
중국은 차의 고향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귀주성(貴州省)은 전국에서 가장 큰 면적의 차밭을 갖고 있다. 세세대로 빈곤하게 생활해온 귀주성 송암진(松巖鎭) 이룡촌(二龍村)은 1980년대 부터 "국가 1류 빈곤촌"의 모자를 쓰게 되었다. 하여 많은 촌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타지역에 품팔이를 떠났다. 하지만 오늘날 송암진은 차문화와 관광을 일체화 한 새 사고 맥락에 따라 점차 빈곤에서 벗어나고 고향을 아름다운 향촌 시험점으로 구축하고 있다. 어젯날 타지역에서 품팔이를 하던 촌민들이 점차 만무 차원의 경영자로 탈바꿈 하고 있는 것이다.
여경현(餘慶縣) 송암진 이룡촌의 고풍스러운 찻집에서 우리는 봉향원(鳳香苑) 차업 유한책임회사 이사장 낙지강(駱地剛) 촌민을 만날수 있었다. 말수가 적은 낙지강 씨는 먼길을 온 손님들을 맞아 다예사를 청해 "깨끗한 차" 한잔을 올렸다. 낙지강 씨에 따르면 이는 봉향원 차업 유한책임회사의 주요 브랜드이다.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수출 제품이 모두 유럽 표준에 부합되는 것을 말한다. 농약 잔해물이 남거나 중금속 수치가 표준을 초과하면 "평생금지" 되는데 이 곳의 차는 전국에서도 몇 안되는 브랜드의 하나에 속한다. 현재 "깨끗한 차"는 낙지강 씨의 인솔하에 국내 시장과 유럽, 아프리카 등 시장에서 점차 판로를 열어가고 있다.
금방 채집한 찻잎
사실 "깨끗한 차"의 뒤에는 남모를 가슴 아픈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한때 빈곤에서 벗어날 한낱의 희망을 안고 낙지강 씨는 아이를 어른들에게 맡긴 채 남방에 품팔이를 떠났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품팔이를 한지 10여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낙지강 씨는 딸애로 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딸애는 흥분된 목소리로 오늘 정부에서 상장 두개를 발급했는데 자신은 "우수 나홀로 어린이 상"을, 할머니는 "우수 독거 노인상"을 수상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낙지강 씨의 마음은 칼로 에이듯 아파났다. 그는 결연히 집으로 돌아가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딸애로부터 소식을 들은 후 저는 감촉이 컸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집안 노인에게도, 아이에게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는 귀향 창업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차산업이 조양 산업이고 현지 촌민들의 창업을 이끌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고향과 가까이 있는데 이들을 고향에 불러 들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방송국 기자의 인터뷰를 받는 낙지강 이사장 (좌1)
봉향원 차업유한회사 서흥(徐興) 총경리는 낙지강 이사장과 "고난을 함께 한 형제"이다. 이들은 소꿉 친구이고 동창일 뿐만 아니라 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귀향후 이들은 정부가 제기한 규모화 차밭 경영 이념에 따라 도급제 형식으로 마을의 200여 가구 농호들을 동원해 전문 차를 재배하도록 했으며 시장가격에 따라 차를 구입하고 심층 가공을 진행했다. 차농들의 안목을 넓히고 토지 이전 실무를 추진하기 위해 낙지강 씨와 서흥 씨는 적잖게 속을 태웠다. 서흥 씨는 자신은 낙지강 씨의 담략에 크게 탄복한다고 말했다.
"한번은 마을 노인 한분이 술 한병을 굽내면 두말없이 토지이전을 약속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낙지강 씨는 술 한병을 굽내고 그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았지요. 마침내 토지이전을 약속 받았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진짜 쉽지 않았습니다. 중도에 많은 사람들이 포기해 견지한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본방송국 기자와 인터뷰를 나누는 차농(우1)
몇년 사이 이들은 만무 차원과 깊은 정을 쌓았다. 서흥 씨와 낙지강 씨는 하루라도 차밭에 발길을 돌리지지 않으면 걱정부터 앞선다고 터놓았다. 서흥 씨의 말이다.
"저와 낙지강 씨는 고향에 돌아와 차밭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한줌의 흙도 우리 스스로 개척한 것입니다. 임지도 우리가 개간해 냈습니다. 자신만 부지런하고 기여할 마음이 있다면 기필코 보답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이들은 많은 시행착오도 범했지만 드디여 성공의 그날을 맞았다. 마을 주민들의 돈주머니가 두둑해 지는것을 보면서 서흥씨는 감개가 무량하다.
"차 산업은 진정한 부민공정으로서 노동력을 가리지 않는 노동 밀집형으로 인솔 면이 비교적 넓습니다. 해마다 우리는 연 12만명에 달하는 작업량을 동원하는데 임금 800만원을 회사로부터 발급하고 있습니다. 변화도 큽니다. 예전에는 낡은 주택에 살았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별장에 살면서 자가용을 갖췄습니다."
벽 한켠을 가득 채운 영예증서들
서흥 씨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줄곧 투자를 했는데 이제는 점차 빛을 보기 시작했으며 내년 부터는 회사가 이윤을 얻을 전망이다. 무엇때문에 "깨끗한 차"라는 원가 높은 브랜드를 구축하려고 하는가는 물음에 서흥 씨는 자신의 일가견을 이렇게 터놓았다.
"저 저신이 마실 뿐만 아니라 저의 친구들도 마시고 저의 가족들도 마시는 차입니다. 만약 제가 만든 차에 농약 잔해물이 남아 있다면 제 손으로 농약을 친척 친우들에게 권하는 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깨끗한 차'가 아닌 '양심 차'를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가격이 높더라도 제품질이 확실하다면 마음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봉향원 브랜드는 성급 빈곤탈퇴 선두 기업으로 되었으며 양심으로 운영하는 "깨끗한 차"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들의 인솔하에 70-80세 고령의 노인으로부터 여름방학을 맞은 소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차밭에서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수 있다. 넓은 면적의 차밭은 송암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몇개 마을 촌민들까지도 동원했다. 이들은 차를 채집한후 킬로그램당 1.2원에서 100원에 달하는 각이한 가격으로 직접 판매하고 있는데 청장년 한명이면 하루에 200여원의 수입을 거뜬히 올릴수 있다.
찻집
차밭에서 만난 60여세 차농은 오늘 하루 자신은 100여원을 수입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집에 식구가 7-8명 있는데 자신과 남편은 집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돌보면서 차밭에서 근무할 수 있어 가정생활에 도움줄수 있다고 말했다.
"제가 차밭에서 차를 채집한지도 10여년이 됩니다. 일년에 500킬로그램 정도 채집하는데 저는 아주 만족합니다. 차를 채집하는데서만 일년에 1만여원을 수입할수 있습니다."
송암진은 "생태를 우선으로, 산업을 중점으로, 문화를 영혼으로, 관광을 담체로"하는 총제적 요구에 따라 점차 관광질이 제고되고 기업효익이 증가하며 농민 수입이 늘어나는 양상을 이룩했다. 이의(李毅) 송암진 당위서기의 소개이다.
"산업발전과 시장수요를 충족시켜 '청산'을 '금산'으로 전변시켰습니다. 여기에는 여경 차의 '깨끗한 차'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망라됩니다."
이의 서기에 따르면 현재 진의 1인당 연간 수입은 8960원으로 점차 "빈곤"에서 "중등수준 사회"로의 전변을 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송연진은 만무 차원에 의거해 생태체육공원과 국제레저양생기지를 구축하게 된다. 머지 않아 이곳 주민들은 보다 부유해지고 마을은 보다 아름다워 지며 지역은 보다 큰 발전을 이룩할것이다.
요즘 들어 낙지강 씨네 가정에는 경사가 생겼다. 딸애가 중점 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낙지강 씨가 지원한 현지 3개 빈곤가정의 자녀들도 전부 중점 대학에 입학했다. 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큰 수확이라고 낙지강 씨는 말한다. 어젯날 고향을 등지고 타향에서 품팔이를 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낙지강 씨는 감개가 무량하다.
"오늘날 고향 촌민들의 얼굴에 웃음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매일 저와 함께 차를 채집하는 사람들의 웃음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사실 촌민들의 행복기준은 아주 낮습니다. 그들을 위해 자그마한 일을 해도 아주 행복해 합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어른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면서 촌민들과 함께 플랫폼을 구축해 모두 함께 치부의 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이뤄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촌민들이 고향에서의 생활이 즐거움이 있고 수확이 있다고 느낀다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습니다."
번역/편집: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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