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은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의 소설가, 희곡작가이다. 나관중은 산서 태원 출신인데 이름은 본이고 호는 호해산인이며, 관중(λñé)은 자이다.
나관중은 원나라와 명나라 정권이 교체되는 동란시대에 생활하면서 일찍 원나라 말기 봉기에도 참가했다. 나관중은 황제를 보좌할 뜻을 가졌으나 주원장이 통일을 이룩한 후 등용을 받지 못해 소설과 희곡 창작에 집념했다. 그가 쓴 소설로는 "수당지전""잔당오대사연의", "삼수평요전"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작은 "삼국지연의"이며, 희곡작품으로는 "조태조용호풍운회"가 있다.
장편소설 "삼국지연의"는 원명은 "삼국지통속연의"이다. 삼국에 대한 역사이야기는 당나라 송나라시기부터 민간에 전해졌다. 삼국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으로 지금 볼 수 있는 가장 일찍 창작된 작품은 원나라시기 "삼국지평화"이다.
나관중은 민간전설과 민간예인들이 창작한 삼국에 관한 화본, 희곡을 기초로 진수의 "삼국지"와 그에 대한 배송지의 "주해본" 등 역사책에 근거해 "삼국지 통속연의"를 써냈다. "삼국지연의"를 나관중이 쓴 이후로 시기 시기마다 재판되었고 재판될 때마다 회목권수와 시사(ãÌÞò)가 고쳐졌다. 지금 우리가 보게 되는 120회본 "삼국지연의"는 모종강부자가 기원 1679년에 수정한 것이다. "삼국지연의"가 나온 후 그 영향으로 역사소설이 흥기하기 시작했고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들을 무대에 올린 희곡작품이 대량 창작되었다.
"삼국지연의"는 중국 역사소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이다. 총 120회, 75만자 편폭으로 동한말년 황건 봉기로부터 위, 촉, 오 3국의 대립을 거쳐 진이 전국을 통일하기까지 즉 기원 184년으로부터 280년에 이르는 근 백년의 역사이야기를 담았다. 이 소설은 결구가 엄밀하고 이야기 흐름 새가 아주 흥미진진하게 째어졌다. 소설언어는 비교적 알기 쉬운 문언문이다.
나관중은 그 전의 역사소설에서 역사사실이나 열거하고 그 사이에 야사 일문을 섞어 넣으면서 인물 형상 부각을 홀시하던 편향을 극복하고 개성이 선명한 전형적인 인물 형상들을 부각하였다. 이는 중국 역사소설 창작에 있어서 일대 변혁으로 된다.
삼국지연의 예술적 성과는 다방면적인 것이다. 작자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군사와 정치투쟁을 서술하는 것을 통하여 여러 가지 예술적 수법으로 선명하고 풍만한 많은 인물형상을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전반 책에는 4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중 작자가 힘을 들여 묘사하고 선명한 인물성격을 가진 인물이 수십 명이나 된다. 권력을 잘 이용하고 음흉하고 의심이 많은 위나라 통치자 조조(曺操),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이 많은 촉나라의 군사 제갈량(諸葛亮), 충의의 화신인 관운장, 용맹하고 호방한 촉나라 장군 장비(張飛), 지혜롭고 승벽심이 강하면서도 협애한 오나라 원수 주유(周瑜) 등은 모두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나관중이 창작한 삼국지연의는 중요한 문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봉건사회 백과전서식의 작품으로서 그 당시 사회의 여러 측면에 대해 자상히 보여주었다. 지금 갈수록 더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은 삼국지연의를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학과 인재학, 심리학, 공공관계학, 모략학, 관리학, 군사학, 예술학, 윤리학 등 측면에서 삼국지연의セ의 문화가치와 현실적 의의를 검토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또한 세계 여러 나라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미 여러 나라 문자로 번역되어 세계적 범위에서 널리 알려졌으며 진정으로 풍부한 인민성을 가진 걸작으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