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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시인 이백
2009-11-26 14:50:50 cri

이백의 자는 태백, 호는 청련거사로서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이다. 이백은 두보와 함께 이두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다. 두보가 시성이라 불리는 한편 이백은 시선이라 불린다. 이 밖에 적선인 또는 벼슬이름을 따서 이한림이라고도 불리웠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이백은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서천으로 옮겼으나 25세에 집을 떠나 세상을 홀로 떠다녔다. 젊어서 도교에 심취된 이백은 산중에서 지낸 적이 많았다.

한 때 이백은 현종의 부름을 받아 장안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이 되였다. 이백의 맡은 과업은 포고문 초안을 작성하거나 임금의 향연에 불려나가 임금의 치적을 칭송하는 시를 짓는 일이 고작이었다. 어지러운 조정 분위기와 일종의 어용 문학인으로서의 처지에 답답함을 느낀 이백은 결국 장안의 한량들과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데 몰두하게 된다. 결국 그는 744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도교에 정식으로 귀의했다. 이후 안록산의 난이 시작된 755년까지 산동성의 집을 거점으로 북쪽과 남쪽의 여러 지방을 두루 유람했다. 그 후에도 이백은 여기저기를 방랑하였으나 노쇠한 탓으로 친척 이양빙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했다. 이백의 시는 "산중문답" 등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하는데 주로 낭만적인 성향의 시편들이다. 시풍이 호방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 사용이 명쾌했으며 그 사상적인 기반은 도교였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젊어서 산중에 오래 지낸 이백에게 있어서는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였고 민산에 숨어 선술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의 비상"이었다. 그의 시에는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다. 이백은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까지도 그것을 혼돈화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와 신선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고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동반자였다.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이다.

당나라의 기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한편으로 인간, 시대, 자신에 대한 커다란 기개, 자부에 불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개는 차츰 전제와 독재 아래 부패한 현실과 부딪치면서 시인은 우수를 언제나 마음속에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연경치를 묘사하는 시가를 많이 지었다. 그가 쓴 촉도난_(蜀道難)에서의뺀촉으로의 길 가기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렵구나.와려산폭포를 바라보다(望廬山瀑布)에서의 나는 듯 쏟아지는 삼천 척 물줄기, 구천에서 날아 내리는 은하수인가 하노라.같은 시구는 과장적인 수법과 생동한 비유로 천고에 길이 빛날 유명한 시구로 널리 전해지고 있다.

현재까지 전해진 이백의 시가는 900여 수,산문은 60여 편이나 된다. 그의 시가는 기의한 상상과 웅위로운 기백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의 시문집은 송대에 편집된 것이며 주석으로는 원나라 소사빈의 "분류보주 이태백시",  청나라 왕기의 "이태백전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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