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씨가 생활한 년대는 약 5000여 년 전이다. 전설에 의하면 복희씨의 출생은 아주 신기하다. 그의 모친은 «화서씨(華胥氏)»라고 부르는 처녀였다. 어느 화창한 날 화서씨는 소택지부근에서 놀고 있다가 커다란 발자국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동한 처녀는 그 발자국 우에 자신의 두발을 올려놓았는데 이 일로 처녀는 임신이 되여 나중에 복희씨를 낳았다.
복희씨에게 여와라고 하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고서 기재에는 복희씨와 여와는 태어날 때 용의 몸체에 사람의 머리를 가졌다 한다. 이는 복희씨가 가능하게 용을 토템으로 삼은 부족 두령이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복희씨가 처한 시대는 생산력이 발전하는 시대였다. 많은 중대한 발명은 복희씨와 연관이 있다. 고서 기재에 따르며 복희씨는 천지만상, 새와 야수의 발모양에 따라 신비한 색채를 띤 팔괘(八卦)를 발명했다. 여덟 가지 부호가 배합을 이룬 팔괘는 천지만물의 각종 명칭을 포괄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현실생활의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했다. 팔괘의 발명으로 끈으로 일을 기록하는 역사가 종말 됐다.
그 후 끈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였다. 복희씨는 끈으로 그물을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고기를 잡고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풍년과 결혼 등 중요한 경사를 경축하기 위해 복희씨는 악기- 슬(瑟)을 만들었고 «가변(駕辨)»이라고 이름을 단 곡을 창작해 사람들의 물질과 정신생활을 풍부히 했다.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나무를 비벼 불을 일구는 방법을 배워주었고 고기를 불에 구워먹게 했다. 하여 사람들은 날것을 그대로 먹던 야만적인 생활방식을 포기하게 되였다.
복희씨가 주로 생활했던 범위는 중국 하남성(河南省) 회양(淮陽)과 산동(山東) 제녕(濟寧), 곡부(曲阜) 일대이다. 때문에 제녕에는 지금까지 복희씨능이 현존해 있다. 해마다 음력으로 3월 3일이 오면 사면팔방의 농민들이 이곳에 모여와 중화민족의 문명 시조를 기념해 제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