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墨子)의 이름은 적(翟)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저서로는 묵자 및 그의 후학인 묵가(墨家)의 설을 모은 묵자(墨子)가 현존하고 있다. 묵자는 53편이라고 하나, 한서(漢書)지에는 71편으로 되어 있다. 최종적으로 성립된 것은 한(漢)의 초기까지 내려간 다고 추정된다. 그 내용은 다방면에 걸쳤으나 중심이 되는 것은 상현(尙賢), 상동(尙同), 겸애(兼愛), 비공(非攻), 절용(節用), 절장(節葬), 천지(天志), 명귀(明鬼), 비악(非樂), 비명 (非命)의 10론(十論)을 풀이한 23편이다.
겸애란 사람은 자신(自身), 자가(自家), 자국(自國)을 사랑하듯이 타인(他人), 타가(他家), 타국(他國)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비공론(非攻論)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유가(儒家)의 인(仁)이 똑같이 사랑을 주의(主意)로 삼으면서도 존비친소(尊卑親疎)의 구별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데 반하여 겸애는 무차별의 사랑인 점이 다르고 또한 사랑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도 이롭게 한다는 겸애교리(兼愛交利)를 풀이한 것이다. 절용은 사치를 삼가고 생산에 힘쓰며 소비를 줄이라고 설파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라는 절장론(節葬論)과 음악(音樂)을 허식이라 하여 물리치는 비악론(非樂論)으로 전개된다.
한편, 정치에 대해서는 상동론(尙同論)이 있으며, 그 기초로서 천지론(天志論)이 있다. 천지론은 절대적 종교적_ 이라고 할 수 있는 천의(天意)의 존재와 거기에 따르거나 거역했을 때의 상벌을 강조하고 있다. 상동이란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다. 사람이란_ 일인일의(一人一義) 십인십의(十人十義)이므로 방치하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락민은 이장에게, 이장은 면장에게, 점차 아래에서 위로 상동(尙同)하여 그 정점에는 최고의 현자(賢者) 로서 하늘의 뜻을 받드는 천자(天子)가 있다.는_ 것이다. 명귀론(明鬼論)은 하늘의 대행자로서 상벌을 내리는 귀신의 존재를 주장하였고, 비명론(非命論)은 이른바 운명을 부정하지만, 그 참뜻은 명(命:운명론)에 현혹되어 일상의 일을 게을리 하지 말도록 타이르는 것이다.
요컨대 묵자는 유가가 봉건제도를 이상으로 하고 예악(禮樂)을 기조로 하는 혈연사회의 윤리임에 대하여, 오히려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지향하여 실리적인 지역사회의 단결을 주장한 것이다. 더욱이 10론 이외에 일종의 논리학을 풀이하는 편(編)과 비공론(非攻論)에서 출발한 방어술(防禦術), 축성술(築城術)에 관한 편도 있다.
묵자의 겸애설
중국의 전국시대 때 묵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고, 자기 집, 자기 나라를 사랑하듯이 다른 나라를 사랑하면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이 번영하는데 이는 단순히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고 주장하였다. 묵자의 주장은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이러한 설법은 유가(儒家)에서 주장하는 인애 (仁愛)와 비슷하나 유가의 그것이 부자(父子), 군신(君臣)이라는 관계를 중시하고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차례로 멀리 미치는 것임에 비해 묵자의 그것은 이러한 가깝고 먼 것의 구별보다는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만인을 사랑하라고 주장한 점이 크게 다르다. 이 때문에 맹자(孟子)로부터 아버지나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난받았다
묵자와 유가사상의 비교
유가와 묵자와 다른 점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묵자가 말하는 겸애와 유가가 말하는 교별(交別)은 차이가 난다. 묵자가 말하는 겸애는 유가에서 논의되는 교별보다 훨씬 확장된 의미이다. 단순하게 다른 사람들을 자기 친족처럼 여기는 것이 아니라 평등을 기초로 한 공동체사회를 묵자는 주장했다. 즉 단순한 보살핌이 아니라 겸애가 행해지는 대동 세계를 바란 것이다.
묵자는 유가와 다르게 귀신의 존재를 인정했다. 유가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사와 같은 례(禮)를 중시하는 모순을 범한 반면, 묵자는 귀신과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제사와 같은 례를 낭비로 생각하고 부정했습니다. 즉 귀신에 대한 인정은 백성들이 겸애의 도를 실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종교적 정치적인 제재를 도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묵자는 공자와 맹자를 비판하기를 그대들은_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울리는 종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즉 군자는 팔짱을 끼고 있는 종(鍾)과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스스로 울릴 수 있는 종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