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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꼬부부 최영수선생내외를 찾아 (한창송)
2010-07-22 16:39:03 cri
1975년에 북경방송국(현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조에 입사하여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조선어조 부조장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조선어조 조장을 력임한 최영수선생은 조선어부 최초의 방송지를 펴낸분이다.

반세기를 넘게 함께한 잉꼬부부

전날 내린 비로 유난히 맑은 공기에 시원한 바람을 읽을수 있었던 어느 상쾌한 여름날, 반세기 남짓한 시간을 함께해온 행복한 부부—최영수선생내외를 찾았다.

중학교시절 동창이였던 최영수, 한정숙 선생은 연변대학에 동반 입학하면서 그 인연이 자연스레 이어져 련인이 되고 나중에 부부가 되였다. 이에 한정숙선생은 "이 사람 덕분(?)에 다른 남성들한테서 련애편지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며 즐거운 불평을 하기도 했다.

상경의 길

1965년, 연변대학을 졸업한 최영수선생은 졸업배치를 받고 길림성 당학교에 들어간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성당학교가 해체되자 최영수선생은 안해 한정숙선생(1966년 12월 결혼을 올렸다고 한다.)이 머무르고있는 장춘시조선족중학교로 전근되여간다. 그러다 친구들의 추천으로 최영수선생은 길림인민방송국에 입사하게 되고 난생처음으로 방송을 접하게 된다. 그해가 1970년이였다.

그런데 1975년에 길림인민방송국마저 해체의 길을 걷게 되면서 최영수선생은 또다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듯이 화가 복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길림인민방송국이 해체됐다는 소식을 접한 북경방송국 조선어조 책임자는 일찌감치 눈독들였던 최영수선생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최영수선생에게 북경방송국은 품위있고 세련된 아나운서들의 방송으로 항상 동경해왔던 곳이였던지라 그는 두말없이 바로 승낙하고 상경한다. 마치 잔뜩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이 두둥실 하늘로 올라가는듯한 부푼 심정이였다.

나는 행운아

그때 길림인민방송국 조선어조의 10여명 가운데 단 2명(또 한분은 김희남선생)이 이 행운을 지니게 됐다. 안해 한정숙선생도 남편을 따라 함께 방송국에 입사한다. 이를 알고 찾아든 최영수선생내외 친지들은 이런 경사도 있냐며 믿어지지가 않아 입을 딱 벌렸다. 그 시절에 연변 시골을 벗어나 장춘에서 일한다는것만으로도 크게 출세를 한것인데 이번에는 아예 수도로 올라오게 됐으니 그럴만도 했을것이다.

어디 친구들뿐이랴?

"그때는 북경 와서 마당 쓸어도 좋다고 할 때였죠. 우리 시어머님은 누굴 만나지 못해 아들자랑 못하셨고 우리 친정아버지는 그냥 셋째딸이 수도 북경에 있다는게, 별세하실 때까지 제일 큰 자랑거리였죠."라며 한정숙선생이 량가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에 최영수선생은 국제방송국에 와서 자신의 인생이 개변됐다며 자신은 행운아라고 한다.

항상 고마운 마음

길림인민방송국에 입사하기전까지만 해도 최영수선생은 방송이라곤 전혀 들어본적도, 생각해본적도 없는 그야말로 문외한이였다. 그런 자신을, 비록 5년간 길림인민방송국에서 방송에 대한 무지의 껍질을 벗겨가면서 열심히 일해왔지만 내부에서는 아직 최고가 아니였던 자신을 선택해준 중국국제방송국이 항상 고맙기만 하다고 한다.

또 1984년부터 2년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연수를 하면서 나름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된것도 두고두고 감사하다고 한다.

그번 연수가 방송에 다시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여, 1998년 퇴직을 1년 앞두고 건강상식프로그람을 직접 만들고 방송진행까지 하면서 알찬 방송생활로 마무리를 잘할수 있게 되여 고마울따름이라고 한다.

이 사람덕분에

방송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방송실이 어떻게 생긴것인지도 모른채 오로지 남편만을 따라 방송국에 입사한 한정숙선생은 우리와 얘기하는 내내 "이 사람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이 사람 덕분에 북경까지 왔소."

"이 사람 덕분에 70살까지 편하게 살았소."

그러면서 아직도 최선생은 방송록음테프를 찾지 못해 헤매는 꿈을 자주도 꾼다면서 안타까와하신다. 금방 앓고나신 최선생이 안스러워 이야기 나누는 내내 한정숙선생은 목이 마를세라 물컵을 챙겨주시고 과일을 집어주시느라 여념이 없었다.

잉꼬부부의 사랑이 묻어나는, 우리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는 장면이였다.

최영수선생내외의 취재는 사실 년초에 이미 섭외에 들어갔지만 최영수선생의 건강상황으로 여태까지 미루어졌다. 만나서 알게 된 일이지만 최영수선생은 년초부터 줄곧 신체가 좋지 않아 무려 10킬로 이상이나 빠지여 불치의 병으로 여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다 차차 병이 나아가면서 얼마전에 재검진을 받은 결과 아무 이상이 없어 요즘은 살맛이 난다고 한다. "마음이 의사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일이다.

두분께서 부디 늘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생활하시길 재삼 기원하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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