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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만남에서 인연이 되기까지 (이연)
2010-07-22 16:52:46 cri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불러왔던 "북경"이란 단어를 지금은 익숙하게 "베이징"이라고 부를만큼 나는 그동안 방송국 생활에 적응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에 입사한지도 어언간 4년이 되여간다. 지난 4년 동안 먹은 나이만큼 조금은 내가 철이 든것도 같고 그동안 선배님들한테서 배운 수많은 가르침들은 아마 이곳이 아니였더라면 평생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것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내 인생의 행운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조선어부 선배님들과 만남을 가졌다.

2006년 6월,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신문학과를 졸업한 나는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와 인연을 맺게 되였다. 그해 8월 22일, 나는 내 인생에서 두번째로 북경을 찾았다. 주선생님은 나를 마중하기 위해 특별히 조선어부 직원을 파견하는 등 세심한 배려까지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공항에서 처음 만난 조선어부 직원이 바로 김철이였다. 약간은 성숙해보이는 외모에 반갑게 맞아주는 그를 보면서 고마움에 례의란 례의는 모두 갖춰 묻는 말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속으로 배려심이 깊은 선배라는 생각을 하며 내심 고마와했고 그후 며칠 동안 여전히 깍듯이 존대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와, 나보다 어릴줄이야! 후에야 들은 얘기지만 다들 처음에는 나이를 짐작하지 못해 해숙이는 "선생님"이라 불렀었다는것이였다. 그럴 때라도 선생님이 아니라고 밝혔어야 했을텐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김철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내가 입사한 2006년은 조선어부가 처음 인터넷사이트를 창설한 해였다. 그렇게 나는 조선어부 사이트와 시작을 함께 했다. 첫시작인만큼 어설프고 미숙한데가 많았던 우리 사이트는 현재 수많은 네티즌들을 가진 큰 사이트로 성장하기까지 지난 시간 동안 발전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은 경제, 관광, 문화, 사회, 오락, 라지오, 온라인방송 등 다양한 코너들로 구성된 종합성사이트로 성장하게 되였다.

입사초기부터 나는 사이트 스포츠코너를 맡았다. 스포츠에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취미가 있다는 리유만으로,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연변일보 스포츠부에서의 실습을 통해 잘하고싶다, 잘할수 있다는 그런 믿음 하나로 시작된것이였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독일월드컵, 제24회 할빈 세계대학생 동계운동회…그리고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북경올림픽까지 그동안 나는 수많은 대형체육경기를 경험하게 되였다. 대형체육경기가 있는 동안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냈던것 같다.

스포츠에 관한 수많은 원고들을 번역, 편집하는 과정은 한마디로 스포츠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였다. 처음에는 모든것이 어렵고 어설프기만 했다. 내용은 잘 알것 같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더 훌륭한 번역이 될지, 이런 단어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수 있을지 그런 어려움이 무엇보다 컸던것 같다. 또한 편집에 있어서 특색있고 간결한 제목을 달아야 네티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수 있다는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제목을 달 때 특별히 신경을 쓰게 되였다. 가끔은 정말 합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네이버에서 내가 호기심이 동하는 제목들을 통계해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뉴스의 제목들은 따라배울바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례를 들면 매운 맛 열풍이 계속되는 요즘,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많이 찾는다는 기사의 제목이 "고추장 웃고, 된장 울고"라고 되여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너무나 생동한 표현이고 마음에 와닿는 제목임에 틀림없다. 그 기사를 읽어보면서 만약 내가 그 원고를 편집했다면 어떻게 제목을 달았을가 잠간 생각을 해봤으나 나절로도 탄복할만한 그런 제목은 생각해내지 못했을것 같다. 실시간으로 떠있는 수많은 뉴스들, 사실 특이한 제목이 아니라면 나 자신도 굳이 클릭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네티즌의 립장에서,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요소를 찾아내는것은 분명 편집과정에서 내가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가싶다.

오역이 없는 번역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잘된 번역을 제목에 잘 표현해서 네티즌들을 끄는 방법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가끔씩 한국뉴스를 검색해볼 때가 많다. 그러면서 그들의 아이디어에 탄복하게 되고 배울수 있는것이라면 하나라도 더 배우고싶은 욕심에서 오래전부터 많이 노력해왔다.

내가 편집한 원고를 클릭하는 네티즌들이 많아야만 비로소 내가 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정성을 들여 번역하고 편집한 원고라도 제목을 대충 달아놓는다면 사람들은 별로 호기심을 갖지 않을것이며, 그러면 나의 노력 또한 물거품이 되여버리는것이나 다름없다. 네티즌들이 원하는 그리고 네티즌의 립장에서 내가 원하는 수요들을 떠올리면서 네티즌들과 잘 어울릴수 있는 비결들을 찾아내고싶은데 그것이 항상 어려운 부분이였다. 나 한사람의 아이디어로는 채우기 부족한 부분들이라 우리는 늘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군 했다.

스포츠기사에는 유난히 외래어가 많다. 처음에는 외래어를 찾는 시간이 번역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 번역하고나서는 편집을 해야 되고 마지막에는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을 달아야 되고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는 느낌이였다.

번역과 편집을 끝내면 우선 한국에서 오신 교수분이 대조를 하고 다음에 김희남선생님께서 대조를 해주셨다. 처음에는 고쳐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원고를 다시 받으면 수첩에 틀린 부분을 적어뒀다. 그렇게 기록한 단어들이 이제 수첩 하나를 가득 채웠다.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모든것이 내가 가진 지식이 된 느낌이라고 할가 너무나 뿌듯했다.

한국에서 오신 고교수분은 이미 한국에 돌아가셨지만 그분한테서 실로 많은것을 배웠다. 한국의 교수분한테서 한국인들의 생각과 습관에 대해 더한층 배우고 실감하게 된것 역시 광범위한 한국의 네티즌들을 확보하기 위한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였다.

김희남선생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인터넷팀원들의 원고를 담당하시고계신다. 항상 정성껏 대조를 해주시고 가끔은 칭찬도 아끼지 않으시는 교수분이시다. 칭찬받을만큼 내가 잘했나싶은 생각은 전혀 해본적이 없지만 그래도 칭찬해주시니까 더 잘하고싶다는 동력이 생기는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매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취재는 빠질수 없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취재에 대한 두려움 같은것이 있었다. 어떤 물음을 제기해야 할지, 혹 인터뷰를 거절하지는 않을지, 행여 돌발상황은 일어나지 않을가 등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전준비야 항상 하겠지만 돌발상황은 준비로 대처할수 있는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러 선배님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으며 이제 두려움 같은것은 떨쳐버린지가 오래다. 현장에서 늘 새로운것을 배우며 더 훌륭한 원고를 만들어야겠다는 노력하는 자세로 항상 뛰여온 지난 시간들이였던것 같다.

처음에는 취재원고 편집에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으나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제 진짜 기자로 적응되여가나싶은 느낌에 뿌듯하기만 하다.

지난해 10월, "전국조선족기업인 골프회 10주년 기념행사"에서 만난 인연을 계기로 그 다음달, 나는 북경현대의 노재만사장을 취재하게 되였다. 바쁜 그분한테는 더없이 보귀한 시간일텐데 인터뷰에 시간을 할애해주셔서 지금까지도 그 고마운 마음을 잊을수가 없다.

취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하나씩 인연을 만들어가며 그 사람들에게서 배우는것, 그것이 바로 매체에 몸 담고있는 기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보람이 아닐가싶다.

방송국 2층에는 언제나 간식공급이 가능한 커피숍이 있다. 피자에 커피에 과자, 음료, 쵸콜레트 등 먹을거리가 항상 제공되여 부서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늘 우리를 커피숍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간식을 사주시는 사무실 선배님들,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 그리고 고마움까지 잊을수가 없다. 커피숍에서뿐만아니라 평소에도 유난히 밥을 사주실 때가 많았다.

특히 외지에서 외롭고 힘들어할가봐 항상 우리의 얘기에 귀기울여주고 편한 사이가 되려고 애써온 김민국선배님, 선배님이지만 가끔은 친구같기도 한, 그래서 더욱 편하게 롱담을 주고받을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된것 같다. 친구이상으로 편하다면 혹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나한테는 친구이상으로 편한 선배님이다.

청소를 제때에 하지 않는다, 제목이 한줄을 넘었다, 오타가 있다, 맡겨준 심부름은 제때에 했냐 등 잔소리가 끊이질 않아서 솔직히 진짜 아니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선배님한테서 진짜 많은걸 배웠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할 부분인것 같다. 선배님이 한국으로 파견근무 가실 때의 그 시원섭섭한 마음, 지금은 잘 계시는지 걱정 반 그리움 반이다.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지금까지 너희들중에서 네가 제일 많이 얻어먹은걸 알지? 너는 사무실에 가지고가서 먹을거리까지 챙기니까…"

그러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중에 선배님 결혼할 때 부조돈에 보태면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얻어먹은것이랑 부조돈이랑 정비례하는것임을 잘 알지만, 그래도 선배님이 빨리 결혼하셨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얼마전 다녀온 KBS연수때, 서울에서 선배님을 만났다. 일년밖에 지나지 않았을뿐인데 그때 그 기분은 일년 그 이상의 반가움이였다. 4킬로그람이나 빠져서 더 야윈 선배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짠한 생각이 들었다.

가리는 음식이 많은 내가 평소 겪어야 할 불편함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특히 외지에 취재를 가야 하는 경우, 적응하기 훨씬 어려워하는 나를 생각해 옆에서 신경써서 챙겨주시던 선배님들, 평소 회식때에도 늘 좋아하는 음식을 시키는 배려까지 늘 고맙기만 하다.

여기에서 일일이 그 고마움들을 렬거할수는 없겠지만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가슴으로 느끼는 고마움, 지금 내가 느끼고있는 따뜻함이 아닐가싶다.

방송국에 입사해서 참가한 제일 첫번째 회식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앞으로 열심히 배우기 위해 노력하겠고 술 또한 열심히 마시겠습니다."라고 큰소리는 쳤지만 두번째 "열심히"는 지금까지 실현하지 못한 부분이다. 생각같아서는 정말 열심히 마시고싶은데 피부때문에 노력을 할수가 없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라는걸 처음 실감했다.

즐거워서 함께 있는것이 아니라 함께 있어서 즐거운것 같다. 그것이 우리 조선어부 식구들이다. 어려울 때 함께하고 기쁨도 함께 나누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속에서 이분들과 지난 시간을 함께했다는것이 너무 행복하기만 하다.

방송국에 입사하지 못했더라면 평생 마주칠수 없을 인연들을 내가 이곳에서 만났다는 사실 그리고 작은 만남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어갔다는 사실 모두가 나한테는 가슴벅찬 감동이였다.

작은 만남에서 인연이 되기까지에는 우리 모두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필요했다. 그 인연이 오래도록 계속되였으면 좋겠고 그 인연으로 우리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우리 조선어부의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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