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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넘치는 집—희망복리원 (조설매)
2010-07-26 08:41:45 cri
[2009년 중국국제방송국 보도 1등상]

사랑이 넘치는 집—희망복리원             ▣ 조설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한가족" 음악 깔면서]

청취자 여러분, 장백산기슭의 해란강변에는 화룡이라고 하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 35년간 변함없이 사재를 털어 고아들과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준 리문철이라고 하는 조선족사나이가 있습니다.

1974년 첫 로임을 타던 때로부터 지금까지 35년간 그는 선후하여 여러 민족 고아와 생활형편이 어려운 어린이 130여명에게 가족이 되여줬으며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줬습니다. 130여명 어린이들중 선후하여 33명이 대학에 입학하고 3명은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현장음: 보이라 작동음]

날이 채 밝기도전에 리문철씨는 벌써 보이라실에서 보이라의 운행상황을 점검합니다. 보이라가 별문제 없이 운행된다는것이 확인되면 그는 33명 가족의 아침밥을 준비합니다. 아침밥 준비가 끝나가면 리문철씨는 여느 집의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애들을 깨워 아침을 먹입니다. 애들이 밥을 먹고난 다음에야 리문철씨는 잠간 앉아 숨을 돌리면서 아침식사를 합니다. 이것은 33명 어린이들의 가장 리문철씨의 일상속의 한 부분입니다.

리문철: 저는 총각때부터 대리부모가 되여 애들을 키웠습니다.

리문철씨가 선행을 베풀기 시작한것은 35년 전인 1974년부터입니다. 당시 아직 총각이였던 리문철씨는 월세방을 맡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의 월세방 바깥주인은 7년형을 언도받아 감옥에 가있었고 안주인은 오랜 환자로 일을 할수 없는 형편이였습니다. 리문철씨의 선행은 집주인의 다섯 자녀를 돕는데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그의 로임은 39원이였고 한달방 값은 5원이였습니다. 리문철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있도록 39원의 로임을 전부 집의 안주인에게 주고 그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당시 리문철은 낮에는 출근하고 저녁에는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면서 집주인이 형기가 차서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5년간 이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리문철씨는 심지어 신혼시절까지도 고아나 생활이 어려운 집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키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35년간 리문철씨의 집에서 함께 먹고 살면서 생활한 아이들은 적을 때는 한두명, 많을 때는 십여명, 심지어 30여명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리문철의 가족이 점차 많아졌습니다.

리문철: 여기는 한방에 한사람씩 있는, 고중생들의 방입니다. 이쪽은 화장실이고 여기는 둘이 같이 쓰는 방입니다.

2001년, 돌보고싶은 어린이들은 많은데 집에 더는 공간이 없게 되자 리문철씨는 낡은 공장건물을 사서 방 십여개와 주방, 화장실 등을 갖춘 생활시설로 개조하여 "화룡시희망복리원"을 세웠습니다. 현재 복리원에는 33명이 있으며 그중 대부분은 고아나 생활이 가난한 집 자녀들입니다.

기자가 희망복리원을 찾았을 때는 마침 방학이라 많은 아이들이 "집"에 있었습니다. 손님을 본 아이들은 반갑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기자들이 자리에 앉자 고중생들은 음료수를 부어준다 과일을 집어준다 하면서 손님대접에 극진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기자들과 이야기중인 리문철원장의 옆을 맴돌면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듣고있었습니다.

리문철: 복리원에서 제일 어린 아이는 여섯살입니다. 조선족인데 한어를 아주 잘합니다.

리원장은 그들중에서 가장 어린 아이 한명을 가리키면서 성국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아이들의 말만 나오면 리문철원장은 누구에게라도 자녀자랑을 하고싶어하는 여느 부모와 다를바 없습니다. 첫마디부터 조선족인 어린 성국이가 한어를 아주 잘한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성국이는 아주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전 할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성국이를 돌볼수 있는 작은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뜨면서 의지가지할데가 없게 됐습니다. 성국의 상황을 안 리원장은 즉시 성국이를 집에 데려오고 직접 성국의 작은할아버지에게 수의를 갈아입히고 사재를 털어 장례를 치러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리원장은 한족을 포함해서 20여명의 후사를 직접 치러줬습니다.

류해영: 그때 우리는 집도 없었습니다. 리아저씨가 집을 마련해줬습니다. 우리 삼형제의 학비도 아저씨가 대줬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저씨가 모든 후사를 처리해주셨습니다.

십여년간 리문철씨의 덕분에 삼형제가 모두 초중과 고중을 나와 자립할수 있게 된 해영이네 일가에게 리문철원장은 둘도 없는 큰 은인입니다.

1994년, 해영의 부모들은 자녀 셋을 데리고 산동성에서 화룡현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다음해, 넝마주이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힘들게 살던 이들 가족에게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아버지가 암진단을 받으면서 일을 할수 없게 됐던것입니다. 한창 소학교를 다니던 큰아들이 학비를 낼수 없어 중퇴를 해야 했음은 물론이고 소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된 해영이도 학교에 간다는것이 꿈과 같은 일이 돼버렸습니다. 리문철씨가 이들 가족을 돕기 시작한것은 이때부터였습니다. 그로부터 십여년간 리문철씨는 해영이네 삼형제가 학업을 마치고 자립할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해영이 아버지 후사도 리문철씨가 직접 치렀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시신에 손을 대는것은 아주 불길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리문철씨가 해영이 아버지의 후사를 치러주는것을 보고 가까운 친척도 아니고 같은 민족도 아닌데 그런 불길한 일에 손을 대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리문철씨는 중국사람들은 민족에 상관없이 다 한집식구이며 식구끼리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돕는것은 당연지사라고 했습니다.

리문철: 중국에는 56개 형제민족이 있습니다. 56개 민족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한가족입니다.

[현장음: 상이와 "누나"의 대화]

고중에 다니는 "누나"는 옆에서 맴돌며 장난치는 상이를 기자에게 소개했습니다. 조선족 누나와 형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상이는 2007년에 복리원에 온 한족고아입니다. 벌써 소학교 3학년에 다니는 상이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좋고 많은 형님, 누나들과 같이 놀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상이: 할아버지가 잘 챙겨줘요. 학용품을 사주고 먹을것을 사줘요. 밥 먹을 땐 많이 먹으라고 해요. 그래야 키가 큰 대요. (몸이)약하니까 고기도 많이 먹으라고 해요. 형, 누나들과 같이 노는것도 정말 재밌어요. 형들과 군기도 놀고 공도 차요.

복리원에 오기전 상이는 시골에서 87세인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더는 돌볼수 없게 되자 정부의 소개로 희망복리원에 오게 됐습니다. 복리원에 갓 왔을 때 상이는 키도 작고 몸도 약했으며 도적질을 하고 위생을 지키지 않는 나쁜 습관이 있었습니다. 성적도 반급에서 꼴찌였습니다. 상이의 일로 리원장은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한선생님: 상이가 복리원을 집이라고 생각할수 있도록 리원장님은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관심해주고 사랑해주고 아껴줬습니다. 누가 상이에 대해 뭐라고 하면 편을 들어주면서 애를 감동시켰습니다. 음식도 신경을 써서 상이가 좋아하는것을 만들어줬습니다. 날씨가 더우면 목욕을 시켜줬고 발을 씻겨줬습니다.

상이의 담임선생님인 한선생님은 리문철원장은 상이가 복리원을 집이라고 생각할수 있도록 아끼고 사랑해주면서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습니다. 누가 상이에게 안 좋은 말이라도 하면 상이 편에 서서 두둔해줬고 집에 조선족이 많다보니 혹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가 념려하여 식사도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날씨가 더우면 목욕을 시켜줬고 저녁이면 발도 씻겨줬습니다.

리원장이 기울인 심혈은 상이의 담임선생님인 한선생님을 감동시켰을뿐만아니라 상이도 감동시켰습니다. 2년간의 노력을 거쳐 상이는 도적질하고 위생을 지키지 않는 나쁜 버릇을 고쳤을뿐만아니라 성적도 눈에 뜨이게 올라갔으며 반급에서 조장이 됐습니다.

30여년간 어린이들을 키우고 도우면서 가장 기쁜 일이 뭐냐는 기자의 물음에 리원장은 불행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것이고 그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것이라고 했습니다.

리문철: 아이들의 인생이 바뀔 때 제일 기쁩니다. 인생이 바뀌면 그들은 나라에 무형의 부를 창조할수 있습니다. 제가 애들에게 투자한것은 돈으로 계산할수 있지만 얘들이 사회에 환원하고 보답하고 창조하는 부는 돈으로 계산 못합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게 자랄수 있도록 리원장은 먹고 입는 문제외에 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복리원을 어린이들의 첫 교실로 생각하고 자신의 언행으로 아이들을 감동시키고 교육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고 그들이 다른 사람을 관심하고 사회의 발전에 힘을 보태도록 했습니다.

그는 늘 아이들을 데리고 양로원이나 돌볼 사람이 없이 고독하게 사는 로인들의 집을 찾아 그들에게 과일이나 고기, 쌀 등을 가져가고 그들을 도와 옷도 씻고 집안 청소도 해드렸습니다. 뿐만아니라 아이들을 혁명전통교육기지에 데리고 가서 교육도 시켰습니다.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아이들이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알도록 하기 위해 리원장은 해마다 많은 돈을 들여 신문, 잡지 등을 구독합니다. 리원장의 정성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복리원의 아이들은 점차 다른 사람을 사랑할줄 알고 사회책임감을 갖춘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돕는것을 당연지사로 생각했습니다.

성일: 지진때 텔레비죤을 보고 많은 감촉을 받았습니다. 그런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는것은 누구에게나 가슴아픈 일입니다. 우리도 마음을 담아서 기부했습니다.

3년 남짓이 복리원에 있은 성일이의 말처럼 문천지진때 복리원의 아이들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면서 힘들게 모은 용돈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한사람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들에게 새롭게 희망을 준다는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리원장은 복리원의 이름을 "희망복리원"이라고 짓고 출입구의 벽에 "무한 희망은 여기에서 시작된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동행한 일본기자 안또나오꼬녀사는 복리원을 둘러본 뒤 불행한 어린이들이 많은 곳이여서 애들이 아주 가엾은 모습일줄로 알았는데 의외로 애들 표정이 밝고 활기찼다고 했습니다.

안또나오꼬: 애들이 아주 가엷고 애처로운 모습일줄로 상상했는데 정작 와보니 애들이 아주 표정이 밝고 씩씩했습니다. 다들 꿈이 있었고 꿈을 위해 노력하고있었습니다. 리원장은 정말 위대하고 존경스럽습니다. 한 개인의 힘으로 많은 어린이들을 돌본다는것은 쉽게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들이 밝고 씩씩하게 자랄수 있은것은 리문철원장과 부인 채명자씨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제1회 길림성 10대 훌륭한 어머니" 영예를 안은 채명자씨는 남편과 함께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는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35년간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리문철씨는 계산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돈은 리문철과 그의 부인이 피땀으로 번 돈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그들 부부는 하루도 편하게 보낸 날이 없습니다. 그들은 선후하여 양계업, 양돈업, 구멍가게, 식당 등등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지금도 리문철씨는 양식업을 하는 동시에 지게차를 사서 임대해 번 돈으로 복리원을 운영하고있습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복리원에는 보이라를 보는 사람과 주방일을 돕는 사람이 있을뿐 거의 모든 일은 리문철씨 부부가 직접 하고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소득만으로는 복리원을 운행하기에 많이 부족입니다. 채명자씨는 몇 년 전부터 외국에 가서 일을 하면서 번 돈을 복리원의 운행에 보태도록 보내오고있습니다.

리문철: 사람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빈손으로 오는것은 맞지만 갈 때는 일종의 정신과 사랑을 남기고 가야 합니다. 소중한 정신재부를 남기고 가야 합니다.

[잔잔한 음악 깔면서]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됐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면서 기자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큰 아이들은 주방에서 밥과 국을 뜨고 상을 차리는것을 거들었습니다. 큰 애들이 작은 애들에게 반찬도 집어주고 밥과 국도 더 떠주면서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여느 가족과 다를바 없는 이들 "가족"의 모습에 가슴이 훈훈해졌습니다. 식구만 많을뿐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고 "형님", "누나"들이 "동생"을 관심하는 광경이 영낙없는 가족이였습니다. 복리원에서 애들에게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는 애들이 참 착하고 철이 들었다고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태명숙: 원장님이 교육을 잘 시켜서 그런지 애들이 다투는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지냅니다. 큰 애들은 어린 애들을 서로 챙기고 밥 먹을 때 옆에 앉아 반찬을 집어줍니다. 하도 대견해서 애들이 밥 먹는걸 자주 내다봅니다. 꼬맹이는 아직 애기와 같아서 팔도 짧고 하니까 옆에 앉은 큰 애들은 누구나 꼭 반찬도 집어주고 밥도 더 떠주면서 챙겨줍니다.

리문철씨는 그 어떤 거창한 말이나 호언장담이 아니라 깊은 사랑과 드팀없는 신념으로 35년을 묵묵히 130여명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줬습니다.

리문철: 사랑에는 민족이 없고 피부색이 없으며 국경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감싸고 사랑하는것은 예로부터 중화민족의 훌륭한 전통이였고 중국문화의 정수였습니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 작은 내물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듯 중국이라는 "큰 강"도 크고작은 시내물들이 모여 더더욱 힘차게 흐르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한가족"음악 깔면서]

청취자 여러분, 지금까지 35년간 사재를 털어 불우한 130명의 어린이를 도와준 리문철씨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고있는 그의 대가족의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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