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야기]
차간후헌씨와 그의 육포점
차간후헌씨는 올해 40여세인 몽골족 여성입니다. 3년전 그는 내몽골 바얀눌르시 우라트후기의 목장에서 방목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목장에서 100여킬로미터 떨어진 진에서 육포점을 꾸리고 사장이 되었습니다. <창업이야기>, 오늘은 목축민에서 사장이 된 몽골족 여성 차간후헌씨의 창업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7년말, 우라트후기에서 퇴목환초(退牧還草) 이민조치를 실시하기 시작하자 차간후헌씨는 약 4백마리되는 양을 전부 팔아버리고 여섯식구가 모두 수십년간 생활해온 초원을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동안의 고찰을 거친 차간후헌씨는 특산품 경영의 시장기회를 엿보고 우라트후기에서 준 3만원의 이전보조금을 육포와 유제품 경영을 위주로 한 가게에 투입했습니다. 그의 가게는 2008년에 개업했습니다. 차간후헌씨의 소개를 들어봅니다.
"우라트후기에서 진으로 이전한 후 무슨 일인가는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 고찰해보니 특산품가게가 괜찮은 것 같아서 특산품가게를 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이전보조금이 발급되자 지금 이 가게를 임대했고 양을 전부 팔아 예전의 일부 대출과 빚을 갚은 후 나머지 자금은 모두 이 가게에 투입했습니다. "
차간후헌씨는 모든 열정과 정력을 모아 사처에서 물건을 구입해 육포점을 크게 꾸려보려고 작심했습니다. 하지만 창업의 길은 상상했던 것처럼 간단하고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장사경험이 부족한 탓에 그는 창업 초기부터 남의 속임수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간후헌씨는 창업한다는것이 목축구에서 방목하는 것보다 쉽지는 않고 세상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차간후헌씨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처음에는 도시에 오면 여러가지로 매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오고보니 도시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목축구보다 더 어렵고 지식과 능력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내딛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경험도 없고 해서 남의 속임수에도 빠졌습니다. 도매상들의 말만 들으면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이 없을것 같았는데, 정작 가게에 들여와보면 생각처럼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개업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난 차간후헌씨는 한때 의기소침해서 가게를 접을 생각까지했습니다. 바로 이때 차간후헌씨는 우라트후기 취업국에서 이전해온 농목민들에게 창업훈련반을 전문 꾸려준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여 차간후헌씨는 훈련반을 찾아 현대적인 경영이념과 경영기교를 배웠습니다. 이론과 실천을 결합할수 있게 되자 차간후헌씨는 차츰차츰 경영비결을 찾아냈고 그의 육포점도 점차 정규적인 궤도에 들어서 가게가 점차 커지고 판로도 점점 넓어졌습니다. 차간후헌씨의 소개를 들어보시죠.
"처음에는 가게를 유지할 정도밖에 안되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점차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 냉장고 7개는 처음에 작은 것을 샀다가 점차 큰것을 사서 크기가 서로 다릅니다. 올해는 에어컨도 설치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도매상으로부터 육포를 몇킬로그램씩 사들였지만 지금은 몇십킬로그램씩 사들입니다. 장사가 잘될때는 하루 수입이 4,5천원정도 됩니다."
이와 동시에 정부에서도 기술과 자금, 세수 등 분야의 일련의 유리한 조치를 제공해 목축민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차간후헌씨의 얘기입니다.
"정부에서는 우리에게 세수를 면제해주는 등 좋은 정책들을 참 많이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 가게를 꾸린 첫해에 취업국에서 진행한 창업훈련에 참가했었는데, 그것도 무료로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 소액대출 2만원을 받아 가게 규모와 판로를 확대했었습니다."
차간후헌씨는 예전에 목축구에서 방목할때는 한해 가정수입이 많아야 4만원정도였는데, 가축의 사료와 풀 등의 지출이 절반이상을 차지했고 가정의 일상지출과 노인들의 병치료, 자식들의 학비 등 지출을 합치면 자금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지만 육포점 운영이 안정을 취하면서부터 연간 수입은 10만여원을 넘어 생활질이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을뿐만아니라 더 이상 빚을 내고 갚는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방목할때는 매일 매일 바삐돌아쳤고 바람을 맞고 해볕에 쪼였지만 매년 수입은 대출을 갚고 사료를 사고나면 전혀 돈을 모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 가게를 꾸리는 것은 단순한 노력노동이 아니라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기에 기분이 매우 좋고 건강에도 좋은것 같습니다. "
지금 차간후헌씨 일가족은 모두 육포점 경영에 참여했고 지난해 그들은 소형 화물차를 샀습니다. 지금 그들은 주변의 소매점에 육포와 유제품을 도매하고 있습니다. 경영규모를 한층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차간후헌씨는 다른 5가구 목축민 가정과 함께 몽골어로 길상부유의 뜻을 가진 "바인우리지" 육포 전문합작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로써 차간후헌씨는 한편으로는 자체의 수구내원을 확대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목축민 가정의 육제품 판로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합작사는 가구당 2만원을 투입하는 형식을 취해 등록자금은 총 12만원입니다. 기타 네가구는 모두 목축민인데 그들은 저에게 원료를 제공해주고 저는 판매를 책임졌습니다. 1년 넘는 동안 수입이 배로 늘었습니다."
올해 우라트후기 취업국에서는 또 차간후헌씨에게 십여만원의 창업대출을 제공해 그가 육포가공공장을 세우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공장이 설립되게 되면 양의 수구에서 도살, 육제품가공, 제품포장과 판매 등 전문화된 일련의 생산과 판매라인이 형성될 전망입니다. 차간후헌씨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지금 합작사 사원들이 목축구에 가서 수구하면 비용은 저렴하지만 생산 전 검사에 통과될수 없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예하면 양고기에 흙이 묻어있는 등 문제점들이 존재합니다. 하여 저는 재가공과 숙가공, 포장까지 할수 있는 공장을 설립할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지금 이미 공장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우라트후기정부와 취업국에서 이번에 이율이 매우 낮은 15만원의 대출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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