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1962년 쟈카르타 아시안게임
개최시간: 1962년 8월 24일---9월 4일
경기종목: 13종목
주경기장: 그로라본카노경기장
유치신청과 준비과정: 제3회 아시안게임기간 열린 전체 위원회에서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이 제4회아시안게임 유치신청을 제기했고 투표결과 인도네시아의 쟈카르타가 22:20의 결과로 파키스탄을 누르고 제4회 아시안게임의 개최도시로 되었다.
제4회 아시안게임은 인도네시아 사상 처음 진행하는 대규모 종합국제경기대회였다. 인도네시아정부는 이번 경기대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쟈카르타 남쪽에 부지면적이 56정보에 달하는 시나얀 스포츠센터를 세웠고 아시안게임 사상 처음으로 되는 아시아선수촌을 내왔다. 이번 경기대회는 아시안게임 사상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다.
경기대회기간 언어소통이 잘 안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위는 봉사인원들에게 나라별에 맞는 전문 언어훈련을 시켰다. 봉사인원들마다 봉사 대상국의 국장을 달게 했고 선수들이 일이 생겼을 경우 본국 국장을 부착한 봉사인원들을 부르기만 하면 문제는 손쉽게 해결되었다.
엠블렘: 제4회 아시안게임의 엠블렘은 그 전의 3회에 걸친 아시안게임 엠블렘의 기초에서 인도네사 국장에 있는 독수리를 보태넣음으로서 개최국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참가국 및 지역: 총 20개
한국, 일본, 대만, 인도,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베트남, 말레이시아, 홍콩, 캄보쟈, 이스라엘, 브루네이, 이란, 바레인, 네팔
경기종목:총 13종목
육상, 수영, 축구, 농구, 역도, 레슬링, 복싱, 사격, 테니스, 배구, 탁구, 필드하키, 사이클
개막: 제4회 아시안게임의 개막식이 8월 24일 오후 쟈카르타의 시나얀 스포츠센터의 중앙체육장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인도네시아대통령이 아시안게임 연합회 회장인 하먼카 부오노의 초청으로 1962년 쟈카르타 제4회 아시안게임의 개막을 선언했다.
20세기 30년대 인도네시아의 전설적인 육상선수였던 에분디 사레이가 성화횃불을 높이 들고 체육장에 들어와 한바퀴를 돈후 흰색 단 위에 있는 아시안게임 성화대에 점화했다. 활활 타오르는 성화는 이번 아시안게임의 낮과 밤을 함께 하게 되었다.
경기시설:
게로라세나얀경기장, 카노구장이라고 불리운다. 인도네시아 쟈카르타에 있는 다목적 경기장으로 축구장의 이름은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이름을 따왔다. 구장은 세계 10대 경기장의 하나였고 주로는 축구경기에 사용되었다. 이 체육장은 1960년에 첫 삽을 떴고 1962년에 정식 준공, 이해 1962년에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게 되었다. 당시 축구장은 10만 800명을 수용할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아시안컵 개최때 안전원인으로 좌석수를 8만 8천개로 줄였다.
2007년 이 구장에서 2007아시안컵 결승전을 진행했다. 당시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이란팀은 국가가 혼란에 빠졌있던 상황이었다. 허나 이란팀이 결국 1:0으로 아시아의 강호인 사우디아라비아팀을 누르고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메달순위
1. 일본 금 73 은 55 동 24
2. 인도네시아 금 11 은 12 동 28
3. 필리핀 금 7 은 6 동 25
특기할만한 사건:
1. 한국이 육상경기에서 탈퇴.
2.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이번 아시안게임에 대한 협찬을 중지, 인도네시아의 국제올림픽 회원자격을 박탈했다.
3. 국제육상총회는 이번 경기대회가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국제경기라고만 승인.
4. 아시아축구총회는 인도네시아의 총회회원 자격을 중지했다.
5. 국제역도총회는 제4회 아시안게임 역도경기 성적을 승인하지 않았고 이번 경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1964년 도쿄올림픽과 그후 진행되는 여러가지 국제경기에 참가할수 없다고 선고했다.
6. 일정배치가 인도네시아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짜여졌고 인도네시아 심판원들이 본국 선수들에게 유리한 심판을 했다.
7. 일본이 여전히 금 71, 은 55, 동 22개로 메달순위 1위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