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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방콕 아시안게임
2010-11-12 14:29:33 cri

제8회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개최시간: 1978년 12월 9일—20일

참가국 및 지역: 25개

주경기장: 수파차라쎄 경기장

제8회 아시안게임은 1978년 12월 9일부터 20일까지 타이 수도 방콕에서 개최되었다. 원래 개최국으로 정해졌던 파키스탄이 개최권을 포기했고 그 대신 방콕이 개최하게 되었다. 대회는 정치적인 원인으로 대만과 이스라엘의 참가를 거절했다. 12일간의 대회기간 25개 나라와 지역의 2879명 선수들이 18개 종목 199개 세부종목 경기에 참가했고 세계기록을 66차 경신했다.

이번 경기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제7회때보다 6백여명이 증가, 총 2879명으로 여선수가 557명에 달했다. 선수들은 19개 종목, 199개 세부종목의 경기에 참가, 이는 아시안게임 선수단참가, 참가자수의 새 기록을 세운것으로 된다. 아랍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참가를 공동저지해 이스라엘은 이번 경기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캄보쟈와 이란은 국내정세때문에 옵서버만 파견했다. 레바논 ,수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슈, 카타르, 아랍에미리트가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레바논은 세명의 선수를 파견, 인원수가 제일 적은 대표단이었지만 이들은 역도경기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경기기간 아시안게임이사회는 아시아최고체육이사회를 설립할데 관해 토론했고 1982년 제9회 아시안게임 개최권을 인도에 주었다. 그외 아시안게임 연합회에 참가한 나라와 지역수는 29개에서 32개로 늘어났다.

유치과정: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기간 아시안게임 협회는 위원회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싱가포르, 일본의 후쿠오카 등 3개 도시가 제8회 아시안게임 개최권 경쟁을 벌였다. 당시 각국 대표들은 아시안게임이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진행될것을 주장했으며 그 결과 파키스탄에 개최권을 주기로 결정했다. 아시안게임 협회 회장도 파키스탄이 담당했다.

1년여가 지난후 파키스탄은 국내 경제불경기와 정치적인 혼란 등을 이유로 1975년 말 개최권을 포기한다고 선포했다. 아시안게임은 또 한번 개최위기를 맞는다. 이미 2회에 걸쳐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던 타이의 방콕이 또 한번 구세주로 나서 제8회를 개최하기로 했고 이로 하여 방콕은 아시안게임을 3회 개최한 첫번째 도시로 되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개최경비는 여전히 각 회원국들이 각자의 경제실력에 따라 공동으로 부담했다. 경기대회 날자도 제5회와 제6회를 참고해 12월 9일부터 20일까지로 정했다. 타이 방콕이 개최한 네번의 아시안게임은 모두 같은 날에 개막하고 같은 날에 폐막했으며 모두 푸밀퐁 타이 국왕이 개막식을 주재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엠블렘: 제8회 아시안게임의 엠블렘은 두 팔을 형상한 것 같기도 하고 타이의 국조인 공작새의 머리와도 비슷한 도안이 태양을 호위하는 형태를 나타냈다. 이는 타이의 문화전통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시안게임이 점점 강해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형상했다.

경기종목: 육상, 수영, 축구, 농구, 역도, 레슬링, 복싱, 사격, 배구, 필드하키, 사이클, 배드민턴, 테니스, 체조, 펜싱, 탁구, 양궁, 볼림, 요트 총 19종목이었다. 그중 볼링과 요트, 양국은 이번 회에 신설한 종목이다.

육상과 수영, 역도,사격 등 4종목 경기에서 중국,한국, 일본, 타이,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의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기록을 66차 경신했다.

참가국가 및 지역: 총 25개

중국, 한국, 일본, 조선, 인도, 타이,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스리랑카,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홍콩, 몽골, 쿠웨이트, 이라크, 바레인, 네팔,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수리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방글라데슈

개막식: 1978년 12월 9일 오후 제8회 아시안게임이 방콕시의 국가스포츠센터에서 성대한 막을 올렸다. 5만명을 수용하는 방콕스포츠센터는 환락의 분위기로 넘쳤고 장내에는 아시안게임 연합회 성원국가와 지역들의 깃발이 나붓겼다. 실내온도가 무려 30도에 달했지만 사람들은 사면팔방에서 개막식 장소로 모여들었다.

푸밀퐁 타이국왕과 왕세자가 제8회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위원장과 아시안게임 연합회 회장의 수행하에 주석단에 올랐다. 21명의 타이 남녀가 낙하산을 타고 경기장 잔디밭에 내렸다. 이들의 표연은 성대한 개막식의 서막을 열었다. 이어 타이자모의 순서에 따라 여러 나라와 지역의 선수와 코치들이 입장하면서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중국대표단은 배구선수인 주중유가 오성붉은기를 높이 들고 대오의 앞에서 걸었다. 깃발 앞에는 여자배구팀 선수 장결운과 육상선수 추진선이 걸어갔다. 화사한 통일복장을 입은 중국 남녀선수들은 질서정연하게 입장하면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보냈다. 타이 관중들은 우호적인 이웃 나라인 중국의 선수들에게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입장식의 대미는 이번 회 개최국인 타이의 선수단 입장이었다. 이들은 보무당당하게 주석대 앞과 관중석을 지나면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북소리속에서 지난 번 아시안게임 개최국이었던 이란의 대표가 아시안게임의 깃발과 횃불을 아시안게임 연합회 회장에게 전달했다.

17시 15분, 푸밀퐁 타이국왕이 경기대회의 개막을 선언했고 회장에서는 거폭의 아시안게임 연합회 회기가 게양되고 축포 세발이 울렸다. 1978마리 비둘기가 오색찬란한 픙선들과 함께 방콕의 하늘을 날았다.

타이의 청년 남녀선수가 횃불을 들고 환호성 속에서 주석단 맞은 켠에 있는 성화대에 점화했다. 200백명으로 구성된 군악대의 반주가 시작되고 2천명의 합창단원들이 제8회 아시안게임 주제가를 열창했다.

선수들이 퇴장한 후 1008명 여학생들과 8백명의 남녀청년들이 각기 타이 민간무용과 단체체조표연을 했고 이어 개막식이 끝났다.

중국 체육대표단 단장 서인생과 기타 나라 대표단 단장, 국제와 이사아 체육기구의 대표, 각 나라 타이 주재 사절단이 개막식에 참가했다.

주경기장: 수파차라쎄 경기장, 국가경기장으로도 불리운다. 다목적 경기장으로 타이 방콕에 있으며 1935년에 준공했다. 현재는 축구경기에 많이 사용되고 3만 5천명을 수용할수 있다. 1966년과 1970년, 1978년에 아시안게임의 주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메달순위

1. 일본 금 74 은 64 동 51

2. 중국 금 56 은 60 동 51

3. 조선 금 21 은 15 동 22

이번 대회에서 중국 선수들은 총 15종목에 참가해 금메달 51개, 은메달 54개, 동메달 46개를 따냈고 아시아게임 대회기록 24차를 경신하면서 실력이 크게 늘었다. 특히 탁구와 체조, 다이빙, 펜싱, 사격, 남자농구, 수구에서 출중한 기량을 보였고 전체 메달순위에서 두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이 대량의 메달을 획득한 것은 중국이 국제체육운동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음을 선고하는 것이었고 이는 아시아 스포츠패주인 일본에는 일종의 경고라고 할수 있다. 아시아의 스포츠 거인이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다음 회에는 일본을 넘어서서 아시아의 새로운 패주로 등극할 가능성을 예고했다.

일본은 금 70, 은 59, 동 49의 성적으로 계속 1위를 지켰다. 개최국 타이선수들이 놀랄만한 실력을 보이면서 금 11, 은 12, 동 19개를 목에 걸었다.

특기할만한 사건

1. AGF가 헤체되고 OCA창설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2. 파키스탄이 개최권을 포기, 타이가 이번 회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다.

3. 아시안게임 대회기록 66차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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