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북평에서 북평반제국주의 대동맹당 및 공청단 서기직을 지냄. 1932년부터 선후하여 중국공산당 하북성 선전부장, 조직부장직을 담당. 1933년 11월부터 1934년 2월까지 선후하여 <당내문제에 관한 몇가지 의견>, <현 조직정돈에 관한 몇가지 의견>, <관료주의의 엄중성> 등 문장을 내놓음.
1934년 8월 중국공산당 하북성위원회가 북평으로부터 천진으로 전이했고 1936년 3월초 중국공산당 천진시위원회가 재건. 같은해 유소기가 천진에서 북방국사업을 사회하면서 이철부도 시위원회 성원으로 일상사업에 참가. 이 기간 유소기는 북방국을 대표해 이철부의 주장과 당에 대한 그의 기여를 충분히 긍정했음.
1937년 5월, 백구(白區) 사업대표로 연안으로 가서 중국공산당 전국대표회의와 전국 당실무회의에 참가. 회의에서 한 그의 발언은 회의참가자들의 보편적인 관심을 받게 됨. 장기간 백구에서 당의 지하활동에 참가하면서 페결핵에 감염. 1937년 7월 10일 연안 휴양소에서 36세의 일기로 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