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주은래가 파리에서 호치민을 만났을 당시 홍수 장군도 알게 되었다. 1924년 호치민이 광주에서 베트남혁명청년들들이 광주에 모이라고 호소할때 홍수 장군은 기타 애국청년들과 함께 호치민이 조직한 베트남혁명청년양성반에 참가했다. 그때 그는 모택동, 류소기 등을 알게 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채창(蔡暢)의 소개로 황포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들어갔다. 1927년4월12일 장개석이 반혁명 정변을 일으키자 그는 국민당을 탈퇴하고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중국의 무장혁명투쟁에 참가했으며 홍군을 이끌고 동강 일대에서 전투를 벌렸다. 적들은 이들을 홍수와 맹수같은 공산당 부대라고 블렀다. 그후 그는 이름을 중국이름 홍수(洪水)로 바꾸었다. 홍군이 광동성 동부에서 복건성 서부로 이동할때 그는 홍12군34사의 공청단 정치위원, 사단정치부 주임직을 역임했다. 1934년1월 주은래의 추천으로 중화소베트공화국 중앙집행위원회 집행위원으로 선거되였는데 당시 유일한 외국적 위원이였다.
1956년10월21일 홍수장군은 4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