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암(施耐庵)은 원나라 말, 명나라 초기 작가이다. 이름은 자안이고 내암은 자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시내암은 뱃사공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적 부터 수상생활에 습관이 되였다. 13살에 사숙을 다녔고 19살에는 수재로, 29살에는 거인, 35살에는 진사에 뽑혔다. 그는 워낙 성격이 강직하여 관직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관직을 미련 없이 버리고 은거생활에 들어갔다.
당시 소주에는 각지에서 온 민간예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시내암은 민간예인들이 표연한 역사극을 즐겨보았다. 남송 말년 송강 등 36명 호한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고 있었다. 송조 말엽과 원나라 초엽에 와서 수호이야기는 민간 예인들이 이야기 하고 공연하는 주요 내용으로 되었다 .시내암은 북송 선화년에 일어난 송강기의를 보여준 작품에 크게 심취되었다.
민간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와 민간예인들이 창작한 작품에 기초해 시내암은 백화문 장편소설 "수호전"을 창작하였다. "수호전"은 장기적으로 유전되는 과정에 100회본, 120회본, 70회본, 등 같지 않은 책들이 있게 되였다.
"수호전"은 중국 고대문학사상 가장 큰 편폭으로 농민봉기를 보여준 작품이다. "수호전"의 핵심은 "관가의 핍박으로 백성이 반란의 길에 나선 것" 즉, "핍박에 못 이겨 량산에 오른 것"이다. "수호전"은 량산의 호한들이 봉기를 일으킨 사회적 원인, 성세 호대한 반항투쟁, 그 투쟁에서 호한들이 나타낸 재능과 지혜, 전략과 전술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면서 개성이 선명하고 형상이 생동한 영웅형상을 부각했다.
"수호전"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부동한 신분과 경력,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 인물 성격을 드러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세절묘사 등 다 방면으로 인물 형상을 성공적으로 부각한 것은 "수호전"이 거둔 거대한 예술성과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수호전"은 명, 청시기의 농민봉기에 대하여 거대한 고무적 역할을 놀았다. 명조말엽의 이자성 봉기로부터 태평천국, 의화단 봉기 등은 모두 "수호전"에서 큰 힘과 계발을 얻었다. 때문에 통치자들은 "수호전"을 "도적이 되게 가리키는 책" 즉, 금서로 취급했다. "수호전"은 후세 문학 특히 소설, 희곡과 민간문예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