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소개
게시판
조선어부 소개
 
cri korean.cri.cn/
장가계의 봉황고성(鳳凰古城)
2011-07-07 20:27:18 cri

호남성 상서투쟈족묘족자치주 서남쪽에는 외형이 날아예는 봉황새와 흡사하게 생긴 산이 있는데, 그 산기슭아래에 자리잡은 고성은 이로 인해 봉황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봉황고성은 풍경이 수려하고 역사가 유구하며 명승고적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럼 오늘은 저와 함께 봉황고성으로 여행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봉황고성내에는 작은 석판길, 고대성루, 명청고대정원 등이 있고 성밖에는 굽이굽이 맑은 강물이 흘러 조용하고 안온한 아담한 도시풍경을 연출합니다. 중국현대문학 거장 심종문(沈從文)는 <변성(邊城)> 즉 변경도시란 글에서 이 고성을 시처럼, 그림처럼 아름다운 작은 도시로 묘사했는데 이때부터 조용했던 이 도시가 세계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예대가 황영옥(黃永玉)은 세계 각지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유독 고향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을 떨치지 못해 "탈취루(奪翠樓)"라는 작업실에서 고향인 봉황고성을 그 어느곳보다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중국의 역사문화명성인 봉황고성은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이 한데 어우러져 여행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고성의 가이드 소화씨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음향1

<봉황고성은 원나라때는 토성이었고 명나라때는 벽돌로 만든 전성(磚 城)이었습니다. 당시 고성으 둘레길이는 겨우 2000미터밖에 안되었으며 동, 서, 남, 북에 네개의 성루가 있었습니다. 매 성루의 간격은 500미터였는데 합치면 바로 2000미터가 되는 것입니다.>

음악

봉황고성에 가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명소가 문학거장 심종문의 고향집입니다. 가이드의 말입니다.

음향2

<이 집은 심종문의 조부가 살던 집입니다. 심종문은 이곳에서 태어나 살았습니다. 그가 15살 나던해에 가경이 기울어지면서 상서를 떠났습니다. 나중에 심종문은 호남의 원수(沅水)일대에서 한 4년간 군입대를 했습니다. 그 후 19살되던 해에 홀몸으로 북경으로 가 그의 글쓰기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음악

심중문의 고향집은 전형적인 남방의 사합원입니다. 문틀과 창문은 작지만 정교하고 고풍스러우며 짙은 상서명청건축의 특색을 띱니다. 사합원은 앞뒤 두 부분으로 나뉘어 모두 드나들 수 있으며 가운데는 붉은 돌을 깔아 만든 네모난 천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켠은 곁채로, 도합 11실입니다. 이 고향집은 심중문의 조부인 심굉부가 청나라 귀주제독으로 지내는 기간에 낡은 민가구역을 사서 철거한 후 다시 지은 집입니다. 1982년 심중문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집을 마지막으로 찾았는데 오래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심씨 일가외에도 봉황고성에는 24개의 대 성씨, 대 가족이 있습니다. 이런 대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사당을 소유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양씨사당입니다. 가이드의 말입니다.

음향3

<일반적으로 사당은 들어가면 곧바로 무대가 있고 좌우 양켠은 곁채입니다. 곁채에는 2층 전용객실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장자가 이 2층객실을 사용합니다. 이 사당에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주로는 가문에 중대한 의사활동이 있을 때 사용하군 합니다. 하지만 양씨사당이 다른 사당들과 다른 점이라면 대문이 옆쪽에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대문을 열면 바로 타강(沱 江)물이 보입니다. 물은 '재물'을 뜻하는데 그 뜻인즉 재물이 술술 흘러든다는 말입니다.>

음악

봉황고성에는 또 유명한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국화(國畵)대가 황영옥의 별장이자 화실인 "탈취루"입니다.

중국 화단에서 황영옥은 "화단의 귀재"일 뿐만 아니라 보기 드문 "만능인"이었습니다. 그는 국화, 유화, 판화, 만화, 목각, 조각 등 많은 것을 정통했습니다. 예술상에서 큰 성과를 거둔 외에 그는 또 문학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여 좋은 글들을 써냈습니다.

황영옥은 자신의 봉황고성 작업실을 직접 "탈취루"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빼앗을 탈은 패기가 넘치며,. 물총새 취는 타강강변의 싱그러운 푸름을 뜻하기도 합니다. 가이드의 말입니다.

음향4

<오른쪽을 보시면 나무옆에 두개 기둥으로 받쳐둔 수상가옥이 있습니다. 그 위에 '탈취루'라는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곳은 황영옥 선생의 작업실입니다. 그는 자주 고향에 들려 사생하고 그림을 그렸으며 주로 이곳에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음악

황영옥의 이 수상작업실은 상서지역의 독특한 민가풍격을 구현해주었습니다. 수상가옥은 중국의 묘족, 투쟈족, 뚱족, 수이족 등 소수민족의 전통민가형식입니다. 호남, 호북, 귀주지역에는 이같은 수상가옥이 아주 많습니다. 통상 수상가옥은 산세를 따라 건설되며 방향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산세에 따라 짓는 수상가옥은 목재를 이용해 위를 받치며 상하 2층입니다. 이런 수상가옥은 땅도 절약하고 집짓는 원가도 비교적 낮습니다. 2층은 통풍이 잘되어 습기가 없이 건조한 거실이며 아래층은 가축사양장으로 쓰거나 혹은 창고로 이용합니다. 가이드 소화씨는 이곳 수상가옥의 특점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음향5

<이곳은 산간지역입니다. 지리적인 원인으로 많은 곳들이 경사지거나 절벽이며 평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때문에 이런 지세를 이용해 수상가옥을 지었습니다. 상서의 수상가옥은 색갈이 모두 검은 색이며 오동유를 칠했습니다. 이곳의 공기는 비교적 습윤하기 때문에 목재가 쉽게 습기를 받습니다. 때문에 오동유를 칠해 부식을 방지하는데 2,3년에 한번씩 다시 칠합니다.>

음악

봉황고성에서는 배를 타고 타강위을 노닐수도 있습니다. 타강위에는 홍교(虹橋)라는 다리가 있는데 봉항고성의 풍우교이기도 합니다. 홍교는 명나라때 지어진 것이며 교각이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지난 세기 80년대까지 봉황고성에서 타성인 귀주로 가는 국도가 이곳을 지났었습니다.

타강위를 가로지른 홍교는 6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봉황고성의 아름다움에 이채를 더해줍니다.

봉황고성은 중국의 소수민족 지역이기때문에 여행에 앞서 소수민족들의 풍습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하면 이곳에서는 문턱을 밟고 지나서는 안되며 남녀가 같은 방을 쓰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주인의 배치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 묘족의 산채를 찾았을 때는 기혼여성과 기본적인 인사말외에 농담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묘족, 투쟈족의 산채에서 휘파람을 금지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휘파람을 불면 귀신이 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1 2
  관련기사
  리플달기
   Webradio
선택하세요
cri korean.cri.cn
  추천기사

[차이나는 중국] 바오쯔

꿈의 마을 조원

새해가 왔어요~

영상으로 보는 제2회 중한성장지사회의

제2회 중한성장지사회의 베이징에서 개최
중국각지우편번호중국각지전화코드편의전화번호호텔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