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역로(古驛道)의 세월
중국 북쪽의 하북성 정형(井陘)현 경내에는 중국에서 가장 완정하게 보전된 고대 역로(古驛道)가 있습니다. 중국 사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이 역로는 고대 로마의 역로에 비해서 적어도 100년이나 이른 길이라고 합니다.
음악
역로란 중국 고대에 공문을 전달하고 관원들이 오가던 길을 말한다. 하북성 정형현에 있는 이 역로는 돌을 깐 옛 길인데 20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 진려결씨의 말이다.
음향1
<이 길은 중국에서 보존이 가장 완벽한 고대역로입니다. 그의 길이는 약 2000미터입니다. 가장 좁은 구간에서는 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습니다.>
간주
이 길을 걷다보면 어느덧 지난 2천년 오랜 세월의 흔적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길 위에는 깊숙한 수레바퀴자국이 많은데 가장 깊게는 40cm까지 패인 곳도 있다. 가이드 진려결씨에 따르면 과거에 중국의 마차바퀴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고 바퀴둘레에 쇠를 둘렀다고 한다. 이런 수레바퀴가 수천년동안 지나다니다 보니 돌길에 깊은 바퀴자국이 남게 된 것이다.
음악
기원전 2세기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기존의 도로를 토대로 해서 그 때의 도읍지인 함양, 즉 오늘날의 서안 부근을 중심으로 사통팔달의 도로를 건설했다. 이 고도는 바로 그 때 건설한 도로 중의 한 구간으로 그 때 중국의 동쪽에서 함양으로 가기 위해 꼭 경유해야만 되는 길이었다.
고대 역로에는 또 동천문(東天門)이라고 하는 성문이 있는데 부지면적이 1000평방미터나 되는 이 문은 17세기 말기에 재건되었다. 고대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동천문 부근의 길이 가파롭기 때문에 25-30m 간격을 두고 돌로 턱을 만들어 내려갈 때는 감속을 도와주고 올라갈 때는 이 돌턱에서 쉬어가고, 눈이나 비가 내릴 때는 가축과 마차의 미끄럼도 방지했다고 한다. 이 사서로부터 이 곳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알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동천문에 서서 바라보면 눈앞에는 평탄한 고 역로가 펼쳐져 있다. 과거의 오르막 길은 어디로 갔을까? 정경현 민정국 매세방 국장의 말이다.
음향2
<원래 최초에 동천문이 있는 이 곳은 언덕길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돌위에 깊은 바퀴자국이 남아 마차가 다니기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유일한 해결방법은 청석을 깎아 그 높이를 패인 곳과 같게 만들어 바퀴자국을 없애는 것이었는데 후에 또 바퀴자국이 생기면 돌을 깎고, 또 생기면 깎고 하다보니 2천년이 흘러 오늘은 그 언덕이 결국은 평지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간주
동천문 안에는 노천극장까지 있어서 과거 동천문의 번화했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은 중요한 지리적 위치때문에 지난 2천년동안 얼마나 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이 곳에서 발생했는지 모른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지방에 내려가다가 도중 사망하게 된다. 진시황을 수행했던 재상 이사(李斯)와 조고(趙高)는 진시황의 사망소식을 속이고 장남 부소(扶蘇)를 태자로 봉한다는 조서를 뜯어 고치고 장남을 죽인 다음 진시황의 어린 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등극시켰다. 그들은 진시황의 사망소식을 속이기 위해 매일 세 끼씩 식사를 진시황의 차에 올리고 시체가 부패한 냄새를 덮기 위해 썩은 전복을 함께 운반했다. 그 때 당시 진시황의 시체를 실은 차가 바로 이 동천문을 거쳐 함양으로 갔다고 한다. 때문에 이 고대역로는 그 당시 궁정정변의 역사를 똑똑히 견증했다고 할 수 있다.
수천년의 문화를 전승받아 고대역로에는 독특한 인문환경이 형성되었다. 이 곳에는 중국 최초의 역참(驛站)인 "입비수로석옥(立鄙守路石屋)"이 있다. 흰 돌로 만들어진 이 작은 집에는 "입비수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 의미는 도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집이라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 진려결씨는 이 돌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음향3
<이 돌집은 청나라 가경(嘉慶) 16년 즉 기원 1811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당시 이 돌집은 오늘날의 우체국과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중국에서 보존된 돌집중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돌집입니다.>
간주
현지에서 나는 흰 돌로 꾸며진 이 집의 처마에는 생동하고 정교한 조각도 있어서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풍격을 자랑한다. 건물은 청조 건물의 풍격도 유지하고 산속 돌집의 자연스러움도 잃지 않는, 독특한 멋을 가지고 있다. 돌집의 천정과 문은 모두 아치형으로 되어 있으며 크고 작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돌집은 웬만한 지진에도 끄덕없는 아주 훌륭한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이 돌집의 또다른 정교함은 창문 양쪽에 직경 8센치미터 되는 둥그런 구멍인데 예전에는 배연관으로 사용되었다.
과거에는 수십일씩 걸려서야 이 곳에서 저 곳에 이르렀지만 오늘은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쉽게 가고싶은 곳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시대가 발전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짧아 졌지만 이 길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과 문화의 분위기는 오늘날도 상상할수 없는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대학교원인 이영씨는 고대역로의 자료를 본후 이곳 여행을 결심했다면서 오랜 세월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 고대역로에서 중화민족의 풍부하고 깊은 역사문화내함을 느낄수 있었다고 말했다.
음향4
<우리 석가장에 이처럼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유적이 있는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이 고대역로를 걸어본 후 우리 중화민족이 근면하고 용감하며 지혜가 넘치는 민족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간주
이 고대역로는 하북성 소재지 석가장에서 자동차로 불과1시간 거리밖에 안된다. 고대역로의 가장 좋은 여행계절은 봄과 가을입니다. 하지만 눈이 오는 겨울이면 고대역로는 또 별다른 풍치를 자랑하고 부근에 또 스키장이 있기 때문에 겨울에도 고대역로 여행은 좋은 선택이 될수 있다. 이밖에 정형현 동쪽에는 창암산(蒼岩山)이라는 불교명산도 있고 천여년전 공주가 비구니로 되었다는 복경사(福慶寺)라는 절도 있는데, 이곳 경치 또한 그림같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