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이 1916년 제6회올림픽 개최지로 결정 된 것은 제5회 스웨리예 스톡홀롬올림픽에서 였다.
베를린올림픽 준비사업이 시종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독일인들도 유럽과의 전쟁은 곧 끝나게 될 것이라 믿었다.
베를린올림픽을 위해 새로 건설 된 체육장들도 적지 않았다.
전쟁이 예상대로 빨리 끝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올림픽의 개최지를 중립국으로 바꿀 결정을 내렸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으므로 제6회올림픽은 취소되고 말았다.
경기장에서 뛰었어야 할 유럽의 청년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갔다.
당시 올림픽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쿠베르탱은 51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역에 복무하게 되였다.
쿠베르탱은 자기와 같은 일반 병사가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의 최고지위에 있을 수는 없다며 위원장직을 사직하고저 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는 쿠베르탱의 요구를 거절하였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본부를 파리에서 중립국인 스위스로 옮겼다. 스위스는 오늘날까지도 국제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소재지로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