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5월 17일부터 8월 12일까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 된 제9회올림픽은 도합 46개국에서 3014명의 선수가 참여했는데, 이는 20년전 런던대회에 비해 참가국수가 2배이상 증가한 것으로서 올림픽이 세계스포츠의 주도권을 확고히 다져나갔음을 의미하고 있다.
제9회올림픽에서 유럽지역을 제외 한 기타 나라의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경기에 참여한 가운데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남아메리카의 우루과이 축구대표팀이 축구경기에서의 우승컵을 따냈고 아르헨티나는 복싱과 수영종목에서 두개의 금메달을 따냈으며, 칠레는 마라톤경주에서 따낸 한개의 은메달로 올림픽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따내는 등 영광을 얻었다.
이집트는 고전식 레슬링과 역도종목에서 두개의 금메달을 따냈으며, 필드하키종목은 그야말로 인도선수들의 천하였다.
일본선수 오다가 15m 21의 성적으로 삼단뛰기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첫 일본인으로 기록됐으며, 일본팀은 수영종목에서 한개의 금메달을 보태며 이번 대회에서 총 2개의 금메달을 기록했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나라의 선수들은 일찌기 앤트워프올림픽과 파리올림픽에 참가하는것을 금지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9회올림픽에서는 패전국의 선수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독일팀은 총 10개의 금메달을 따냈고, 줄곧 헝가리의 우세종목으로 되어오던 펜싱종목에서 마쟈르는 두개의 금메달을 따내 총 4개를 기록했다.
이번 올림픽대회에서 캐나다 뱅쿠버의 19세나는 한 대학생이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남자 100m와 200m종목에서 2관왕에 오르며 자신의 명성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렸다.
암스테르담올림픽은 근대올림픽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쿠베르탱이 처음 참가하지 못했던 올림픽으로 기록됐다.
1937년 9월 2일, 쿠베르탱은 공원에서 산책하던 도중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해 세상을 떠났다. 쿠베르탱의 생전의 부탁대로 그의 심장은 고대올림픽 발상자인 그리스의 올림피아산 아래에 매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스타디움 상단에 설치한 마라톤 중계탑위에 대형접시를 놓고 기름을 부어 불을 밝히는 성화가 등장했다.
국제여자스포츠연맹이 여선수들의 참가신청에 대해 집요하게 요청해왔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육상연맹도 차츰 여자경기종목을 인정하게 됐다. 여자선수가 육상경기에 참가함에 따라 육상경기는 활력을 띠게 됐으며 조화롭고 신선한 인상을 주게 됐다.
5개종목으로 결정된 여자육상경기에는 5개의 세계신기록이 수립됐는데 캐나다는 여성의 육상경기 출전을 반대해온 나라이기는 했지만 높이뛰기와 400m계주에서 우승을 차지한 나라로 영예를 빛냈던 사건들도 있었던 제9회올림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