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한창 상품부족과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1948년 7월 29일부터 8월 14일사이에 런던에서 있은 제14회 올림픽은 여느때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많은 선수들이 참여 한 올림픽으로 기록됐다.
제14회 올림픽은 2차 세계대전으로 제12회 올림픽에 이어 제13회 올림픽마저 취소되면서 거쪄 있던 성화가 12년만에 다시 피어올라 인류의 제전이 부활되는 감격적인 무대였다.
제14회올림픽에는 59개 나라와 지역의 총 4099명 선수가 참여했는데, 그 가운데서 여선수가 385명을 차지했다.
독일과 일본은 침략국가란 이유로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금방 지위를 회복한 이스라엘은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를 원했지만 아랍국가의 강렬한 반대로 인해 다음번 올림픽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제2차세계대전기간, 사람들의 문화오락생활은 매우 적었다. 다년간의 전쟁으로 아무런 문화도 향수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런던올림픽을 빌어 소원을 이루어 보려고 했고, 따라서 런던올림픽은 매우 활기를 띠게 됐다.
육상경기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바로 네델란드의 코헨이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했을 때까지만 해도 열몇살밖에 안되던 청소년이었던 그는 12년후 런던올림픽에서 30세의 나이로 놀라운 성적을 따낸 선수로 길이 남았다.
코헨은 여자 100M, 200M, 80M허들과 4×100M 릴레이 경주 등 종목에서 금메달을 독점했다.
남자 10종 경기의 금메달 리스트는 미국팀의 열일곱살짜리 소년 마티어스였다. 놀랍게도 그는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10종혼성경기란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었던 선수였다. 4년뒤 헬싱키올림픽에서도 그는 10종혼성경기의 금메달을 따내며 다시 한번 이름을 날렸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많은 스포츠선수들이 영향을 받았으며, 따라서 재능있는 선수들을 선발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총체적 실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는 바, 4개 종목에서 겨우 세계기록을 돌파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