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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깃든 이야기] – 청춘의 땀방울을 다 바쳐서 이뤄낸 희열의 노래
"첫 수확"
16'46"
사회자: 중국 조선족 노래. 그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역시 석화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석화: 안녕하십니까.
사회자: 오늘은 어떤 노래 준비하셨습니까?
석화: 오늘은 우리 함께 "첫 수확"이라는 노래를 들어볼까요?
사회자: 네. "첫 수확". 오늘 이야기 시작에 앞서 노래부터 보내드립니다.
[노래 – 2'43"]
[노래 가사]
학창에서 공부하고 농촌에 찾아와
부지런히 일하여 첫 수확을 거두었네
로동으로 가꿔온 오곡의 물결은
농촌에 뿌리박고 꽃피운 열매
시련을 이겨나온 투쟁의 열매
(후렴)
에헤라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아
광활한 천지에서 억세게 싸우네
로농들을 스승으로 일하며 배우고
과학실험 잘하여 첫 수확을 거두었네
하늘높이 솟은 황금산은
구슬땀을 흘리면서 따내온 열매
농민들을 따라배운 노력의 열매
(후렴)
선렬들이 물려준 유서깊은 이 고장에
붉은 씨앗 뿌려서 첫 수확을 거두었네
알알이 튕길듯한 황금의 낟알은
조국과 인민 위한 충성의 열매
당에 향해 바치는 마음의 열매
(후렴)
사회자: 네. "첫 수확" 듣고 돌아왔습니다. 이 노래는 어떤 노래지요?
석화: 말 그대로 첫 수확, 처음 이룩하는 수확에 대한 기쁨입니다. 우리가 지식청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잖아요. 많은 경우는 문화대혁명가운데서 농촌에 내려갔던 한 시대를 지식청년이라고 했지요. 대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 집체호를 만들고 빈하중농이 재교육을 받고… 이런 과정이 있었지만 사실 지식청년이라는 타이틀이 생긴것은 문화혁명 이전부터였습니다. 60년대 초반, 그때는 대학생이 아닙니다. 중학생, 고중졸업생이죠. 그때 친구들이 고향에 돌아와 고향건설에 이바지하는, 청춘을 바치는 이런 기풍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때 풍경을 담은 노래가 바로 "첫 수확"입니다.
사회자: 그렇군요.
석화: 지난세기 60년대 초반, 전국적으로 고중을 졸업한 지식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자기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농촌에 뿌리박는 열조가 일어났습니다. 연변에도 좋은 풍경을 이루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려근택, 류창은과 같은 훌륭한 젊은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사회자: 지식청년의 본보기라고 할수 있지요.
석화: 그렇지요. "연변의 미츄리"라 불린 려근택, 많은 우량품종을 개량해낸 "벼육종가"류창은과 같은 젊은이들이지요. 이처럼 지식청년들이 농촌에 내려가 뿌리박고 새 농촌을 건설하는 이런 분위기가 그 당시의 시대적인 풍조로 되었습니다. 이런 풍조가 결국에는 이 노래속에 다 담겨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사회자: 이러한 지식청년들을 노래한 곡이라고 볼수 있겠네요.
석화: 그렇지요.
사회자: 작사는?
석화: 작사는 김세형 선생님. 작곡은 김동진 선생님입니다. 그러니까 김세형 작사, 김동진 작곡 "첫 수확" 이렇게 되지요. 196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64년 그해 여름이 연변 주내에서 문예단체 문예회보공연이 있었습니다. 각 시, 현 문공단에서 새로운 종목을 올려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당시 이 두분은 왕청문공단의 창작원이었어요. 왕청문공단에서 전주 문예회보공연에 올릴 작품을 내놓으라고 하니 여러가지 주제, 풍격을 생각하다가 당시 가장 이슈가 된 지식청년을 주제로 만들었습니다.
사회자: 그렇군요.
석화: 이 노래 작사자, 작곡자에 대해 소개해 드릴까요?
사회자: 네. 그러죠.
석화: 우선은 김동진 선생님.
사회자: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
석화: 김동진이라는 이름. 동명2인이 있습니다.
사회자: 네. 동명 2인이 있다구요?
석화: 그렇습니다. 시인 김동진 선생님이 있고 오늘 이 노래의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이 있습니다. 작사가 김동진 선생님은 다른 분이지요. 다른 노래로 소개해드리게 됩니다. "흰눈이 내리네"라는 노래 가사를 쓰신 분인데요. "떡방아 찧는 소리 들려오더니…"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 "흰눈이 내리네" 앞 부분 깔며]
사회자: 아~ 이 분은…
석화: 이 노래의 가사를 쓰신 분은 시인 김동진 선생님입니다. 작사가 김동진이고…
사회자: 오늘 이 노래는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석화: 그렇습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됩니다.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은 왕청 토배기입니다. 왕청에서 태어나 자라고 지금도 생전입니다.
사회자: 그럼 지금도 왕청에 계십니까?
석화: 아니요. 연길에 계십니다. 이제는 퇴직하시고 만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계십니다. 어릴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타고났다고 합니다. 왕청현 문공단은 1956년에 설립됩니다. 당시 김동진 선생님이 왕청 문공단 설립에 참여했고 1958년에 정식으로 왕청현 문공단으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김동진 선생님은 그때 문공단에서 악기도 연주하시고 많은 작품도 창작하셨습니다. 이렇게 김동진 선생님하면 시인 김동진 선생님이 아닌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으로 알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사회자: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해 김세형 선생님을 소개해주시죠.
석화: 네. 김세형 선생님은 1933년 도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도문은 당시 회막골이라고 했답니다.
사회자: 회막골이라구요?
석화: 네. 도문 주변산에서 횟돌을 불에 구우면 횟가루가 나오죠. 그런 돌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회막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도문시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네. 그렇군요.
석화: 김세형 선생님은 어릴적부터 공부 잘하고 총명하고 동네에서도 촉망받는 소년이었습니다. 그후 왕청으로 이사가서 왕청문공단 설립에 김동진 선생님과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그후 1961년도 장춘에서 제2차 소수민족영화문화학습반이 열리게 되는데 거기에 가서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연극대본 "젊은 부부", "5.1절 전야" 등 작품을 창작했는데 이런 작품이 한어로 번역되어 전국 간행물 "로동자문예"에 발표되었습니다. 김세형 선생님은 1980년부터 왕청현문공단의 전직창작원으로 있었는데 이 기간 그는 연극대본 20여편과 재담, 만남, 삼로인, 노래이야기 등 무대작품 50여편을 써냈으며 200여수의 가사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특기할 것은 "첫수확" 노래비가 왕청에서 만들어졌고 노래비가 왕청중학교에 세워져 있습니다. 2005년 11월에 만들어졌습니다. 왕청이 낳은 노래이고 주인공들도 왕청에 계시는 분들이고…
사회자: 참으로 왕청의 자랑이네요.
석화: 그렇지요. 이 노래가 아까 64년도에 만들어졌다고 했잖아요.
사회자: 전주 문예회보공연에 올릴 작품으로 만들어졌고…
석화: 그렇지요. 일단 문예공연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았고 바로 라디오라든가. 당시에는 TV가 없었으니까요.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부른 가수는 홍정숙이라는 가수였구요. 그후에는 이 노래가 많이 리메이크 되고 있습니다. 단소 기악곡으로도 나오고 여러가지 기악곡으로도 나왔습니다. 특기할 것은 그후 중앙인민방송 아침 6시 정각에 방송되는 "농촌을 위한 방송"프로의 개시곡으로 선정되어 매일 아침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퍼졌습니다.
사회자: 대단합니다.
석화: 그렇지요. 물론 왕청에 기념비로 돌에 새겨져 있지만 그보다도 우리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 더 큰 기념비가 아닌가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까 홍정숙 가수가 처음 불렀다고 했잖아요. 그후 김선옥, 전화자, 조옥형 등 당시 인기가수들이 자신의 표현곡목으로 선정하여 많이 불렀습니다.
사회자: 네. 소개를 듣고 보니 비록 중국 조선족 노래지만 중앙인민방송의 한어, 중국어 방송. 6시 정각 프로그램에 개시곡으로 선정되었다는 자체가 조선족의 자랑입니다.
석화: 그렇지요. 그 당시 전체 중국인구가 아마 9억명 정도였을꺼예요. 9억인민들이 다 듣는 음악이 된 것이지요.
사회자: 네. 참으로 명곡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첫 수확" 보내드립니다.
[노래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