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차의 고향 첫동네"로 불리우는 용정촌은 중국 절강성 항주시 서호풍경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면이 산들로 둘러쌓인 이 마을은 환경이 아름다우며 총 330가구에 666명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용정촌은 중국의 최고급 차인 서호 용정차의 생산지로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해마다 3,4월이 되면 용정촌은 차를 맛보러 오는 인파들로 북적입니다.
용정촌은 차생산 역사가 매우 유구합니다. 고증한데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14세기 원나라와 명나라시기부터 서호 용정차는 민간에서 유명세를 탔고 명차 반열에 올랐습니다. 기원 1762년, 청나라 건륭황제가 용정촌을 찾아 "18그루의 차나무"를 "황제차"로 봉한 후로 용정차는 천하 명차로 이름을 굳혔습니다.
용정촌은 차의 고향으로서 마을 곳곳에서 차향을 느낄수 있습니다. 현재 용정촌의 모든 생산과 경영활동은 모두 용정차를 둘러싸고 펼쳐지며 촌민들은 세세대대로 차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촌민 점완주(占婉珠)씨는 4000평방미터의 차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가 차나무를 가꾸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산비탈을 타고 점완주씨의 정성을 듬뿍 먹고 자라난 차나무는 그의 일가족이 먹고 입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내원입니다. 점완주씨의 소개를 들어봅니다.
"연간 차 생산량은 50킬로그램정도, 경제수입은 10여만원정도 됩니다. 봄에 햇차를 딸 때면 제일 바쁩니다. 하지만 바쁜 만큼 봄에 따는 햇차의 판매수입이 제일 많습니다."
용정촌은 용정차 생장에 적합한 천헤의 지리조건과 자연환경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북쪽켠의 수많은 산봉우리들은 마치 천연 병풍마냥 서북쪽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줍니다. 남쪽으로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며 통풍이 잘 됩니다. 하늘이 선사한 이런 선물로 세세대대 용정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촌민들은 현재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용정촌은 항주시내와 이웃해 있어 촌민들은 번화한 도시 일각의 큰 공원에서 생활하는듯 하다고 말합니다.
올해 56세인 전위국(錢衛國)씨는 1982년부터 용정촌 촌민위원회 주임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용정촌 촌민들의 생활이 진정으로 개선된 것은 지난세기 80년대 초에 가정도거리책임제를 실시해서부터입니다. 이 정책의 실시와 함께 용정촌 촌민들은 과거 집체관리의 생산방식에서 농민의 자아관리와 자아생산, 자아분배, 자아경영의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을 가져왔으며 촌민들의 생산 적극성이 전례없이 제고되었습니다. 전위국 주임의 소개를 들어봅니다.
"1984년부터 가정도거리책임제를 실시했는데 정책이 확실히 좋습니다. 농민들이 부유해지고 경제조건이 좋아졌습니다. 예전에 촌민들은 3만원짜리 오토바이는 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정책이 좋아지고 호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자 BMW를 부러워하게 됐고 지금은 BMW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죠."
전통 찻잎 생산과 판매를 통해 용정촌은 점차 부유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30여년간의 발전을 돌이켜보면 용정촌의 발전은 순풍에 돛단 배처럼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개혁개방 초기, 중국은 시장경제에로 과도했고 전국의 많은 농촌에 집체기업이 생겨났습니다. 당시 많은 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용정촌도 뒤질세라 발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전위국 주임의 말입니다.
"우리는 오금가공과 장갑가공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약 5년이 지난후 번창한 기업은 하나도 없고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의 장갑공장은 예전에 항주시장갑공장과 피혁공장을 위해 가공을 했고 가공비를 받았습니다. 우리촌에는 그때 기업이 많았습니다. 장갑공장 외에도 전자공장, 등구공장, 음료공장도 있었습니다. 등구공장은 제가 공장장을 맡았었습니다."
도거리책임제를 실시하기전 농촌에서는 집체경제를 발전시켰고 농민들이 자원적으로 손잡고 모든 생산자료와 토지 등을 집체소유로 하고 생산경영을 조직했습니다. 전위국씨는 당시 경제가 비록 발전을 하긴 했지만 현지에 부합되지 않는 기업발전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음료공장의 폐기물에는 당분이 많습니다. 폐수가 도랑에 흘러가면 빨간 색이 나며 시간이 지나면 지면에 흰가루가 생깁니다. 정부에서 이 문제를 발견한후 우리기업에 이전 또는 폐쇄를 요구했습니다. "
전위국 주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업 운영이 용정촌의 우세인 것이 아니라 차밭 운영이 용정촌의 우세이고 부유해질수 있는 근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여 촌에서는 육속 앞서 설립했던 기업들을 폐쇄하고 용정촌의 천혜의 우세를 살려 용정차 경제에 모를 박기 시작했습니다. 전위국씨의 소개를 들어봅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좋은 자연유산과 훌륭한 차문화를 남겨줬으니 우리는 언제까지나 잘 관리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경제발전과 주민생활수준의 제고와 더불어 외출관광이 중국인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현재 용정촌을 찾아 "차도를 배우고 용정차를 맛보는" 차문화관광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용정촌을 찾는 관광객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관광업의 발전과 함께 용정촌에는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시장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용종촌의 많은 촌민들은 대외적으로 찻잎을 판매하는 외에 모두 자기집 문앞에 작은 건물을 짓고 다방이나 간이 숙박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위국씨의 소개를 들어봅니다.
"최근 몇년간 우리는 관광업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시골관광이 생겨난 후 많은 관광객들이 우리촌을 찾아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촌의 100여가구가 시골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은 이곳에 와서 차도 마시고 시골음식도 맛봅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촌의 발전은 찻잎을 중심으로 해야 하며 이 산업은 영원히 버리지 말고 잘 전승해야 합니다. 관광업이 발전한 후 주민들의 경제소득이 증가하고 환경관리도 많이 쉬워졌습니다."
전위국씨의 소개에 따르면 과거에도 용정촌을 찾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지만 촌에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근년에 와서야 관광업의 단맛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용정촌의 경제소득에 대해 상세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찻잎을 킬로그램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잔으로 팝니다. 예하면 500그램의 찻잎을 담그면 적어도 150잔의 찻물이 나옵니다. 만약 500그램에 1000원이라고 하면 한잔에 30원정도 되는 셈이죠. 그러니 500그램의 판매액은 4500원이고 1000원의 원가를 빼면 이윤이 3500원인셈입니다. 그런데 좋은 찻잎은 500그램에 2000원정도 하니까 한잔에 80원 내지 100원을 받아야 하고, 150잔이면 판매액이 1만 5000원 정도, 이윤은 1만 3000원정도 됩니다. "
용정촌이 과거 단순하게 찻잎 재배와 판매의 제1산업에 종사하던데로부터 지금 제3산업인 서비스업에로 전환하면서 촌민들의 수입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전반 용정촌이 조화로운 마을로 손꼽힙니다. 오랜 촌장인 전위국씨는 자랑에 넘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는 될수록 주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이 많이 쌓여야 하고 집체의 돈은 너무 많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주민들이 돈이 많으면 기타 부조화모순이 발생할 확율이 낮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용정촌은 더욱 안정적이고 조화로울 것입니다."
최근 전위국씨는 줄곧 용정촌의 이익과 관계되는 대사를 위해 바삐 돌아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정촌"이라는 상표를 등록하는 것입니다. 그의 소개를 들어봅니다.
"유명상표수속은 거의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제 10가지 자료만 보충하면 유명상표는 40여가지가 됩니다. 상표등록과 관련해 저는 오랜 기간 공부를 해왔습니다. 베이징의 국가상공총국도 여러번 찾아갔습니다. 이제 유명상표등록을 마치게 되면 앞으로 우리의 상표를 도용하는 기업이나 개인은 법률제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아마 올 연말쯤이면 등록을 마칠수 있을겁니다."
용정차는 색감이 초록빛을 띠고 향기가 그윽하며 맛이 달고 모양새가 이쁜 것으로 유명해 "백차의 왕", "녹차황후"라는 미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용정차를 선호하면서 시중에 산지가 서호가 아니지만 용정차의 이름을 걸고 판매되는 차도 많아졌습니다. 서호 용정차를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2011년에 중국은 "서호 용정"이라는 지리상표 증명상표정책을 실시해 서호풍경명승구와 서후구 주변의 168평방킬로미터에서 생산되는 차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중 찻잎 재배면적은 총 1391.7헥타르에 달합니다. 하지만 차밭 면적이 66.6헥타르밖에 안되는 용정촌은 용정차의 발원지이고 상표등록은 현지 농민들의 소득증대와 특색농업발전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전위국씨는 이 분야에서 용정촌은 과거 손해를 본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용정'이라는 두 글자를 소산(蕭山)의 한 농민이 우리보다 먼저 등록을 해버렸습니다. 우리는 80년대에는 물론이고 90년대에도 상표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단돈 5만원의 이윤을 볼수 있어도 기뻐 어쩔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표라고 하면 5만원만의 문제가 아니죠. "
사실 30여년간 촌장을 맡고 있는 전위국씨는 줄곧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는 발전사유나 법률학습에 있어서 현대화한 발전템포를 따르고 있을뿐 아니라 용정촌의 일상관리에서도 커다란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30년간 저는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80년대 촌장으로 있을때에는 촌민들이 조금만 잘못 하면 저는 성질이 불같아서 마구 욕하기가 일쑤였습니다.90년대에는 욕하는 경우는 적었고 사상적인 인도를 많이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욕하기는 커녕 그들을 도와 일을 하고 그들을 위해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세월이 아니니깐요. "
사람이 변하고, 사회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정촌의 울울창창한 차밭은 여전히 말없이 저만의 매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자연조건을 소유하고 차문화가 다분한 이 토지는 영원토록 용정촌 촌민들의 행복한 생활을 보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