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달 구경"은 중국 중추가절(仲秋佳節)의 전통적인 풍속이다. 매년 이날만 되면, 많은 상점과 음식점에서는 간판을 장식하고, 패루(牌楼)에도 다채로운 비단 장식을 한다. 신선한 과일과 정제된 식품을 판매하는데, 야시장의 열기가 심상치 않다. 백성들은 대체로 이날 누대에 오르는데, 돈 많은 사람들은 집 안에 누대나 정자를 지어놓고 달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날 음식을 차리거나 잔치를 베풀고 자녀들을 불러 모아 함께 달을 감상하면서 그간의 회포를 풀기도 하였다.
민간에서 추석 때 달을 감상하는 활동은 대개 위진(魏晋)시기에 시작되어, 당송(唐宋)시기에 성행하였다. 당시(唐詩)에 보면 추석과 관련된 시가 아주 많다. 예컨대, 왕건(王建)의 시에 이르길, "달이 둥글어지면서 색이 점점 진해지고, 옥그릇(玉盆)에 물이 차서 넘쳐 흐르려 하네. 밤이 깊어 가인(家人)들을 돌려 보내고, 날 밝을 때까지 등을 켜지 않았네."라고 하였다. 서응(徐凝)의 시에서는 "희고 흰 가을 팔월의 둥근 달, 단정한 항아와 신선한 계수나무, 1년중에 오늘 밤 같은 날 없어라, 열 두 봉우리 앞에서 달을 보느라 잠 못 이루네."라고 하였다.
송나라 때에는 민간에서 달을 감상하는 풍속이 더 흥성해 졌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의하면, 북송 경도(京都, 북송의 수도 개봉)의 성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추석 저녁, 귀가(貴家)에서는 대사(臺榭)를 장식하고, 민가에서는 주루(酒樓)의 자리를 다투어 달을 감상한다. 생황에 맞춰 부르는 노래 소리가, 저 멀리 천리 밖에서도 들리니, 날이 밝을 때까지 어울려 즐긴다."《신편취옹담록(新編醉翁談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많은 집안의 자녀들이 빈부(貧富)에 상관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아이들부터 열두어 살 어린애들까지, 모두 어른 옷을 입고서, 누대에 오르거나 혹 뜰 가운데서 달을 맞이하는데, 각각 원하는 바가 있어, 남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섬궁(蟾宮, 곧 월궁)에 가서 신선 계수나무에 오르기를 원하고, 여자들은 항아 같은 용모에 흰 달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대문호(大文豪)인 소동파(蘇東坡)도 추석에 달을 감상하면서 호방한 정서를 붓에 담아 《수조가두(水調歌頭)》라는 천고의 걸작을 완성하였다. 그는 "사람에게 슬픔과 기쁨, 헤어짐과 만남이 있듯이, 달도 흐리고 맑음, 차고 이지러짐이 있으니, 예로부터 완미함이란 없었다네. 그리운 사람이여 오래도록 강건하여서, 천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달을 함께 하세."
명,청(明淸)이후, 매년 추석에 동쪽에서 둥근 달이 떠오를 때, 사람들은 정원이나 누대 위에서 월병과 유자, 석류, 토란, 호두, 땅콩, 수박등의 음식을 차려 놓고 달을 감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흰 달이 중천데 걸리면, 다시 음식을 차리는데,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