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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2일 중국음악 방송분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음악에서 인사드리는 임봉해입니다.
음력으로 9월 9일은 중양절입니다. 중양절을 중구절이라고도 합니다. 올해 중양절은 10월 13일에 들었습니다. 중양이란 양수가 겹친 날이란 뜻이고 중구란 홀수 9가 중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로부터 중양절은 양수중복일 풍속의 하나로 가을의 정취에 취해 수확의 계절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날로 되어 왔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중양절이나 단오, 3월 삼짇날처럼 홀수(양수)가 두 번 겹치는 날을 큰 명절로 여겨 왔습니다. 음력으로 3월 3일인 삼짇날이 제비가 강남에서 날아오는 날이라면 음력으로 9월 9일 중양절은 제비가 도로 강남으로 날아가는 날이라고 합니다.
중양절의 세시풍속을 보면 이날 가을의 꽃인 국화구경을 하고 중양절 시절음식의 하나인 국화주를 마시며 산에 올라 단풍놀이를 즐기는 풍속이 행해집니다. 중양절에는 또한 추석 때 성묘를 못한 사람들은 조상의 선산을 찾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한대(汉代)로부터 중양절의 세시풍속이 행해졌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기재에 의하면 당(唐), 송(宋)대 와서는 중양절은 관리들이 휴가를 즐기는 명절로 되었다고 합니다.
중양절 세시풍속에는 또한 시주(诗酒)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시주란 술 마시며 시를 주고받는다는 뜻입니다. 시인, 묵객들은 중양절에 술과 음식을 마련해 국화꽃잎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시를 주고받으며 즐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양절전통은 가을 소풍이나 단풍놀이, 국화구경, 등산으로 지금까지 이어내려 오고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 다른 점이라면 지금의 중양절은 노인절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중양절은 자식들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날입니다. 지금 이날이면 부모님들을 모시고 가을소풍을 떠나거나 선물을 들고 부모님들을 찾아가 효도를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중양절, 중국의 노인절을 맞아 첫 곡으로 "노인절가"를 준비했습니다.
[노래 – "노인절가" 2'00"]
예로부터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 중에서 으뜸 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효도에 대해 해석이 수없이 많지만 그 많은 해석들을 모두어 보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거창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마음 편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단적인 실례로 인터넷에 오른 한 어머니가 맏아들에게 띄운 메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첫 자식이란 이유하나만으로 제일 많이 사랑했고 또 제일 많이 매로 꾸짖고 혼내준 큰아들이어서 그렇게 한 만큼 기대와 바램도 커, 늘 엄마의 짧은 생각에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을 보는 것 같아 늘 화가 나고 섭섭한 마음뿐이었는데 이제 너도 40세가 되어 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요, 남편으로써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대견스럽고 부모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효자인 셈이다.
늘 너희 곁에는 이 어미가 있다는 것 염두에 두고 살아가면서 도움의 말이 필요하다면 찾아 주고 이 어미를 소외된 늙은이로 만들지 말아 다오. 하는 일 마다 잘 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으니까 건강이 우선임을 명심해라. 큰아들에게 엄마가 씀》
어머니는 편지에서 오히려 자식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고 있습니다. 편지에 쓰인 대로 부모님들은 자식이 열심히 살아가는 삶 자체를 세상에 둘도 없는 큰 효도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은 아들이 병환에 계신 아버님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아버님 새벽 1시와 3시 사이 어김없이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가족들을 잠에서 깨웁니다. 오늘도 아버님은 잠을 이루지 못하시며 심하게 기침을 하십니다. 언제부턴가 아버님께서는 말을 하기조차 힘들어하십니다.
아버님 왜 이렇게 힘들어하세요. 언제나 너무 강해 자식들로 하여금 다가설 수 없던 아버지 왜 이리 나약해 지셨나요.
〈남에게 피해주지 말아라〉,〈언제나 건강해라 〉 하시던 나의 아버님, 얼른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예전처럼 무섭던 아버님의 모습을 보여 주세요. 얼른 돌아와 주세요 예전에 무섭던 그 아버지의 모습으로. 사랑합니다 아버님...》
언젠가는 자식에겐 호랑이 같은 무서운 존재였지만 무섭던 그 옛 모습을 회복하라고 기원하는 자식의 마음에 아버님은 병석에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실 효도는 대를 이어 내려가기 마련이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그것이 은연중 교육이 되어 내 자식이 또한 훗날 나에게 효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온다는 말이 있듯이 효도가 바로 그런 윤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흥률작사, 김광작곡, 안룡수, 마복자가 부른 "노년을 즐겁게"란 노래를 보내드립니다.
[노래 – "노년을 즐겁게" 2'56"]
요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효도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 자주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것 역시 작은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이번 노인절에는 꼭 부모님을 찾아뵙고 따뜻한 가족의 분위기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중국 노래 "자주 집에 들리세요(常回家看看)"를 보내드립니다.
[노래 – "常回家看看" 4'52"]
[노래에 깃든 이야기]
가슴을 적시는 그리운 멜로디 – "추억의 노래"
20'16"
사회자: 오늘 역시 중국 조선족 노래. 그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한수의 가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만인의 가슴을 적시는 그리운 멜로디로 남으려면 노래를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 즉 가사, 선률과 가수의 가창력이 완벽하게 어울려 만들어내는 3박자를 갖춰야 합니다. 가요작품의 생명력은 이렇게 3박자 황금률로 이뤄진 예술성에서 비롯되는바 여기서 어느 한 부분에 손색이 가도 훌륭한 작품으로 남지 못하게 됩니다. 네. 이렇게 3박자가 딱 맞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추억의 노래"인데요. 이 노래 작사가 바로 저희들이 오늘 모신 석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석화: 안녕하세요.
사회자: 반갑습니다. 우리 지난시간까지만 해도 다른 분들이 만든 노래를 많이 소개했는데요. 오늘 드디어 선생님께서 작사한 노래가 찾아왔습니다.
석화: 고맙습니다.
사회자: 아주 유행된 노래이고 많이 불리워진 노래입니다. 바로
석화: "추억의 노래"입니다.
사회자: 그렇습니다. 그럼 추억을 떠올리며 노래 먼저 듣고 올까요?
[노래 – "추억의 노래" 4'24"]
사회자: 네, 추억의 노래 듣고 돌아왔습니다.
석화 선생님, 이 노래 가사가 선생님께서 쓰신것이잖아요. 노래 가사를 쓰게 된 경과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석화: 네. 이 노래는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통 가요창작은 가사가 먼저 씌여지고 거기에 작곡가의 곡이 붙여지고 가수가 부르고… 이렇게 녹음되는 경우가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 노래처럼 가곡, 선률이 먼저 씌여지고 거기에 가사를 배사(配辭)라고 합니다. 배사가 되어 전체곡을 완성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자: 그러니까 곡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얘기네요.
석화: 이 노래 경우를 보면 이 노래는 작곡가 한병낙 선생님이 1982년에 쓴 곡입니다. 한병낙 선생은 연변학교를 졸업하고 연변방송국 음악부의 음악편집으로 사업하시다가 상해음악학원에 진수를 갔습니다. 80년대 초반이지요. 상해에서 공부할때 친구로부터 가사 한편을 받았습니다. 물론 상해주변이니 중국 작사가의 중국어로 된 가사를 받았습니다. 대륙의 인민들이 대만의 형제, 동포들을 그리는 절절한 내용이었습니다. 중화민족이 한가정속에서 사이좋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념원이 반영된 내용이었습니다. 가사가 절절하고 폭이 있고 해서 곡도 굉장히 아름답게, 절절하게, 그리운 정서로 작곡되었습니다. 이것이 82년도에 쓴 곡입니다.
사회자: 그럼 가사랑 곡이 이미 완성되었네요.
석화: 그렇지요. 그리고 상해음악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병낙 선생님은 다시 연변방송국 음악부로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와서 적당한 가수, 곡을 잘 소화시킬수 있는 가수를 만나 노래를 녹음까지 했습니다. 방송까지 했는데 별로 반응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연변지역, 조선족 집거지역에서는 가사내용이 절절하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상해 현지에서 바로 바다건너 대만을 그리는 정서와 물론 중화민족 공동한 심정은 있겠지만 지역마다 또 다를수 있겠지요. 그렇게 훌륭하게 한병낙 선생님은 본인 근년 작품중의 대표작이고 또 편집부에 돌아와 여러 작곡가들에게 소개하니 다른 작곡가들로부터 좋은 곡을 지었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방송을 한후 끝났습니다. 당시 좋은 노래가 나오면 요청음악에도 나오고 기타 프로에 방송도 되고…
사회자: 그렇지요. 청취자들이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반응이 없었구만요.
석화: 그렇지요. 그래서 작품은 그대로 서랍속에 쌓여있고 녹음테잎도 일단 녹음실에 그대로 잠겨있었지요. 이렇게 일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84년도에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음악부, 바로 한병낙 선생님과 책상을 마주한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후 또 연변가무단에서 노래를 부르시던 황상룡 선생님이 연변방송국 음악부에 전근되어 왔습니다. 그 당시로 보면 연변방송국 음악부에 주임은 작곡가 동희철 선생님, 그리고 한병낙 선생님, 황상룡 선생님, 그리고 라혜선 선생님, 그리고 저하고 다섯사람이 음악편집부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연변방송의 음악을 담당하고 있은 것이지요.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날 황상룡 선생님께서 저보고 의논할 일이 있다는 거예요. 한병낙 선생님이 참 좋은 곡을 썼는데 82년도에 썼는데 지금까지 전혀 반응이 없다. 음악은 참 좋은데 본인도 만족해 하는 작품인데… 어떤 방법이 없겠냐고 이야기 하다가 그럼 일단은 곡을 한번 들어봅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녹음테프를 다시 꺼내 방송한 부분을 다시 들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 지역, 지역 청취자들의 마음에 닿는 소재로 바꿔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정서도 지역 사람들, 방송청취자들이 듣고 즐길수 있는 내용을 바꾸자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곡을 듣고 전체적으로 선률분석을 해보니 선률은 추억, 그리움에 절절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곡에 어울리는 가사가 나와야 노래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어떤 추억을 담아야 할까고 고민했습니다. 그리움이라면 사랑도 있고 고향도 있고 등등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해 고향에 대한 소재는 너무 많았습니다. 물론 고향이 아름답고 추억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사랑 주제는 창작자들의 년세가 4~50대를 넘었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래도 가장 보편적인 것이 우리들의 동년이고 학창시절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완성을 제몫이었습니다. 며칠간 선률에 맞춰 소재를 넣고 가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그래서 멋진 가사가 탄생했습니다. 제가 읊어드릴까요?
"맑고 푸른 하늘가에 기러기 줄지어가면
잊지 못할 학창시절로 마음은 날아가네
선생님 품속에서 즐겁게 뛰놀던
넓은 운동장 밝은 교실로 돌아가본다네
정든 교정 백양나무도 몇번 푸르렀던가
선생님의 귀밑머리에 백발 서렸으리
아득히 세월이 흘러간다 해도
그 언제나 젊어계실 선생님 모습
사시절은 바뀌면서 또다시 찾아와도
우리들의 학창시절은 돌아오지 않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가
하나둘씩 불러보는 동무들 이름"
석화: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어 비로소 선률과 가사가 어울리게 되고 황영애 가수가 불러 반응이 좋았고…이렇게 만든 경과입니다.
사회자: 여기에 한병낙 선생님을 인터뷰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노래에 좀 곡절이 있는데 이 노래가 지금 이렇게 인민들속에 보급되여 사랑을 받는데는 세 사람의 작용이 큽니다. 하나는 편집인 황상룡동무가 이 노래를 보더니 이것을 좀 어떻게 조선어가사로 바꾸지 못하겠는가고 제의했습니다. 그때 또 우리 음악부에 가사편집을 책임진 석화동무가 한 이틀인가 구상하더니 인차 지금의 '추억의 노래' 가사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니깐 그 곡하고 정서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다음이 가수 선택입니다. 제 상상외로 황영애 동무가 이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라고 한병낙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렇게 석화 선생님 작사, 한병낙 선생님 작곡, 황영애 가수의 노래로 발표된 노래지요? "추억의 노래". 수년간의 기다림속에서 비로소 선률과 노랫말이 어울려 명작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석화: 창작과정 역시 추억이지요.
사회자: 그렇지요. 오늘도 추억에 빠져봅니다.
네. 수많은 사람들이 열창하는 이 노래. 다시 한번 보내드립니다.
"추억의 노래"
끝
어느덧 작별이사를 나눌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진행에 임봉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