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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6일 중국음악 방송분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음악에서 인사드리는 임봉해입니다.
울긋불긋 단풍잎이 세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늦가을, 요즘입니다.
며칠전 방송국 동문앞에 떨어진 예쁜 낙엽을 주으러 나갔다가 할빈에 계시는 김옥화 청취자가 보내 온 예쁜 엽서 한장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수확의 계절, 추억의 계절 가을입니다. 가을을 타는 저여서 그런지 요즘따라 20년전 함께 했던 중학교 동창들이 더없이 그리워 납니다. 그래서 2013의 끝자락에 동창모임을 만들어보려고 계획중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전국 각지. 그리고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뿔뿔히 흩어져 열심히 살고 있는 동창들을 일일이 알리기가 쉽지가 않네요. 국제방송을 통해 우리의 동창모임 개최소식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
네. 엽서에 동창모임 알림장을 함께 넣어 왔는데요. 읽어드리겠습니다.
"할빈시 제1중학교 90년급 4반 동창들이여~
눈 깜짝할새에 우리 헤어진지 어언 20년이 흘렀구나. 이제부터는 시간이 더 빨리 흐르겠지. 너희들 기억속의 우리 학생시절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참 말없이 묵묵히 지낸것 같구나. 이제 만날 너희들이 기대되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다.
말썽이 많았던 애들은 선생님께 혼나던 기억이라도 있겠지. 그래서 선생님이 더 그리울때가 있겠지. 난 선생님과, 니들과 몇마디라도 했는지 기억에 가물가물하구나.
하지만 이것도 정이라 할까. 세월이 갈수록 보고싶고 항상 마음속으로 그때 그 사람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나는구나…
다들 이젠 가정을 이루고 한집의 가장으로서 며칠이라도 집 떠나기 쉽지 않다는거 안다. 하지만 이런 모임은 20년만에… 앞으로 또 몇년을 기다려야 다시 올까. 74세 고령의 스승님과는 마지막 모임일지도…
다들 보고싶다. 만나고 싶을때 만나자. 우리 인생은 이런 소중한 만남으로 아름다워지니까. 힘든 일, 어려운 일, 자식걱정… 한번쯤은 제쳐놓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 우리의 젊음도 이젠 서서히 물들고 있잖아.
그때 그 사람들이여~
보고싶다.
우리 만나자~
시간: 2013년 12월 30일
장소: 중국 해남도 삼아에서"
네. 김옥화 청취자가 보내 온 동창모임 통지문을 보니 저도 학생시절이 떠오르네요. 졸업하고 취업하느라 바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자식 키우기 바쁘다보니 어느새 눈가에는 주름이 늘고 학창시절 동창들과는 하나둘 연락이 두절되고… 자신의 울타리가 단단하게 만들어질수록 학창시절때 동창들, 친구들과의 주변 관계는 조금씩 소홀해 지는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월을 훌쩍 수십년이 흐르고…
추억의 동창모임, 세계 곳곳에 계시는 동창들이 이 방송을 청취하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 스승님 모시고 뜻깊은 동창모임 개최하시기 바랍니다.
동창들에게 보내는 노래, "딱친구(好朋友)"를 첫곡으로 준비했습니다.
아뉴(阿牛)가 부릅니다.
[노래 끝까지 3'47"]
중국음악, 오늘은 "친구"를 주제로 한 노래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첫곡으로 아뉴가 부른 "딱친구"를 보내드렸습니다.
계속해 만강(滿江)이 부른 "옛 친구의 노래(老朋友的歌)"를 준비했습니다.
[노래 끝까지 4'10"]
모아민(毛阿敏)이 부른 "영원한 친구(永遠是朋友)"를 보내드립니다.
[노래 끝까지 3'57"]
[노래에 깃든 이야기]
[노래 깔며]
사회자: 여러분 안녕하십니다. 계속해 중국 조선족 노래. 그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늘 역시 석화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석화: 안녕하십니까.
사회자: 반갑습니다. 오늘은 어떤 노래 준비하셨습니까?
석화: 오늘은 최건, 베이징 대단한 록음악의 황제지요?
사회자: 뿐만아니라 중국 록음악의 대부가 아닙니까.
석화: 그렇지요. 최건의 "빈털터리(一無所有)" 듣고 돌아옵니다.
[노래 끝까지]
사회자: 네 최건이 부른 "빈털터리"를 보내드렸습니다. 이 노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석화: 네. 중국 록음악의 개척자이고 중국 록음악의 대부로 불리우는 최건은 국내외에서 성망이 높습니다. 최건의 현상, 록 현상은 중국 조선족 음악계에도 큰 충격을 주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최건은 1961년 8월 2일 베이징에서 태어났는데요. 아버지, 어머니 모두 예술인입니다.
사회자: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았겠네요.
석화: 그렇지요. 아버지 최홍재님, 어머니 장순화님 두분 예술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트럼페트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무용단 단원이었습니다. 따라서 최건은 어릴때부터 음악, 무용의 대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했습니다. 1975년부터 아버지한테서 정식으로 트럼페트를 배웠습니다.
사회자: 그때가 몇살인가요? 1961년도 생이면 14살 정도 되었네요. 어린 소년이지요.
석화: 그렇지요. 그리고 1978년부터 1987년까지 한 십년되지요.
사회자: 최건 나이가 20세 중반까지…
석화: 베이징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트럼페트연주자로 활동합니다. 이 기간 최건은 베이징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는데요. 그중에는 외국 대사관의 외교관들과 외국에서 유학온 유학생들로부터 외국의 록음반을 선물받게 됩니다. 거기에는 당시 세계를 풍미했던 비틀스라든가…
사회자: 네. 비틀스…
석화: 폴리스, 토킹 헤즈, 폴 매카트니,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등 음악인들의 음반을 접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네. 그때부터 세계음악을 접하기 시작했네요.
석화: 그렇지요. 이것은 아마 베이징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모두 예술인이었고…
사회자: 이러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겠지요.
석화: 그렇지요. 그 당시 70~80년대 이런 음악을 접한다는 것은 천지개벽의 사건이라고 생각할수 있지요.
사회자: 맞습니다.
석화: 이런 음악들은 그동안 닫힌 세상에서 살아 온 그에게 그야말로 거센 파도가 세차게 덮쳐오듯 말로는 이루 다 형언할수 없는 커다른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사회자: 본인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지요.
석화: 그러니까요. 이후 그는 1984년 11월부터 1985년 6월까지 6명의 친구들과 함께 클레식연주자들과 함께 "7합판(七合板)" 밴드그룹을 결성합니다. 공연장소가 마땅하지 않아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에서 팝송을 연주하는 등 공연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공연이 쌓이면서 첫 앨범을 출범하게 됩니다. 1986년 5월에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평화의 해"기념공연에서 오프닝곡으로 "빈털터리"가 비로소 탄생하게 됩니다.
사회자: "一無所有", 그때 선보였군요.
석화: 네. 정말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무대가 끓어 번지고…
사회자: 관객들은 상상도 못했겠는데요. 이런 노래가 나올줄이라고는…
석화: 그렇지요. 중국에서, 더구나 베이징에서… 그후 1987년에는 아시아운동회공연과 1981년 1월 베이징 중산음악당에서 펼쳐진 첫 개인 음악회가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베이징 위성방송 특별프로를 통해 점차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사회자: 그때부터 데뷔를 한 셈인가요?
석화: 그렇지요. 이제는 최건의 음악이 점차 세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입니다. 최건은 1987년에 이르러 오케스트라단을 떠나 본격적인 록가수로서 음악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정통적인 록에 중국적 정서를 입힌 독창적인 음악으로 그의 음반은 공식 집계된 정품으로만 1,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사회자: 그때는 상상도 못했겠는데요.
석화: 그렇지요. 공식적으로 1,200만장이라는 것은…
사회자: 비공식적으로는 얼마나 팔렸는지 상상을 못하는 거지요.
석화: 그렇지요. 그후 최건은 1989년 3월 베이징 전람관 극장에서 "새 장정길에서의 록"이라는 음악회를 열게 됩니다. 이는 그 당시 큰 사건이었습니다.
사회자: 전반 베이징을 들썽이게 만들었지요.
석화: 그렇지요. 이어서 1989년 3월에는 영국으로 떠납니다. 드디어 중국을 떠나 국제 무대로 나아갑니다. 1989년 4월, ADO 악대를 거느리고 프랑스 "프르제의 봄" 국제 록페스트벌에 참가하여 개인음악회를 가지는 등 음악적행보를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중국 록의 "새 장정길"에 올랐습니다. 예전에 중국 홍군이 2만 5천리 장정을 한 것처럼…
사회자: 중국 홍군은 중국 국내 장정을 했지만 최건은 중국음악 록으로 음악무대에서 새로운 장정길에 올랐습니다.
석화: 그렇지요. 그 장정길이 계속 세계로 뻗어집니다. 1993년 2월 악대를 거느리고 독일, 프랑스에 가서 세계문화교류활동에 참가하였으며 1994년 9월 미국 시애틀예술축제에 참가하여 개막식에서 공연을 하였고 1995년 8월 미국순회공연을 진행했습니다. 이처럼 최건의 행보는 거침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자: 그렇네요.
석화: 1990년대 최건은 중국 국내 하북, 하남, 섬서, 산동, 귀주, 사천, 신강, 해남, 료녕, 광동…
사회자: 지명을 읽는것 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네요.
석화: 그렇지요. 이런 지역들을 돌면서 순회공연을 조직했고 1990년 1월 베이징 아시아운동회의연금 모집을 위하여, 1992년에는 중국 종양기금회 의연금 모집을 위하여 "최건 베이징음악회"를 펼치며 사회공익활동에도 적극 참가했습니다. 이런 성과로 최건은 선후로 많은 상을 받습니다. 대만 "쌍백금레코드상", 홍콩 "백금레코드상", 중국국제문화교류센터에서 수여한 "새 시기 10년 금곡상", "우수가수상"에 이어 1991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3대 음악상의 하나로 손꼽히는 MTV대상 "관중이 가장 즐기는 아시아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최건은 영화에도 출연했는데요. 1993년에는 영화 "베이징 녀석들"에 주연으로 출연해 로카르노 영화제 특별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건은 한국방문도 자주했고 1997년 KBS의 "빅쇼"에서 강산애와 합동공연을 하였고 1999년 뉴욕 센트럴파크의 서머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중국의 음악과 세계음악의 접목, 그리고 조선족으로서 세계에 자랑을 떨치고 있는 최건. 참으로 대단합니다.
사회자: 그리고 참으로 자랑스럽네요. 이 노래는 중국어로 되어있는데요. 청취자들의 청취 편리를 위해 가사를 조선어로 번여해 읊어드리겠습니다.
"나는야 묻고 물었지
언제면 함께 갈가
너는야 늘쌍 비웃었지
빈털터리라고
이내 추구 이내 자유
너에게 주려 해도
너는야 늘쌍 비웃었지
빈털터리라고
너는 나를 비웃었는데
왜서 나는 추구할가
나라고 영원히 이대로 빈털터리라고
오, 언제면 함께 갈가
걷는 길 그 길이고
흐르는 물 그뿐인데
너는야 늘쌍 비웃었지
빈털터리라고
이내 추구 이내 자유
너에게 주려 해도
너는야 늘쌍 비웃었지
빈털터리라고
떨리는 너의 두손
흐르는 너의 눈물
말하는듯싶구나
빈털터릴 사랑한다고
오, 언제면 함께 갈가
오래동안 기다렸지 마지막 요구라며
너의 두손 꼬옥 잡고 함께 가자 했지
이내 추구 이내 자유
너에게 주려 해도
너는야 늘쌍 비웃었지
빈털터리라고
떨리는 너의 두손
흐르는 너의 눈물
말하는듯싶구나
빈털터릴 사랑한다고
오, 언제면 함께 갈가"
네. 그럼 이 노래 보내드립니다. "빈털터리(一無所有)"
[노래 끝까지]
어느덧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애청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진행에 임봉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