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리상영선생./사진 김파기자
12월19일, 연길에는 눈이 내렸다.
20일 연길에서 있게 될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평의선발활동을 축복이라도 해주는듯 대지는 하얗게 소복단장했다. 그러나 이 눈이 마냥 반가운것은 아니였다. 전국각지 방방곡곡에서 연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교통상의 불편이 되기도 했다. 상해항천기술연구원 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이며 고급기술고문, 연구원인 리상영(72세)선생이 그러했다. 이날 그는 아침 8시에 집을 나서서 상해발 연길 항선을 타고 연길에 도착할 예정이였다. 그러나 연길에 기약없이 내린 눈때문에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부득불 장춘을 경유한 항공편과 도로교통편의 길고 힘든 려정을 달려 20일 새벽녘에야 연길에 당도할수 있었다.
12월20일 오후 2시,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있은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 시상식야회 록화현장에서 제일 첫사람으로 리상영선생의 사적이 소개되였다.
소개화면에서 리상영선생이 총설계사를 맡은 장정4호를 운반로케트가 쏘아올린 인공위성이 거대한 굉음을 울리며 땅을 차고 하늘로 높이높이 솟아오를 때 야회현장은 감탄과 격동의 박수소리가 오래오래 울려 퍼졌다. 중국의 궐기를 의미하는 최첨단기술 로케트발사의 주인공이 바로 다름아닌 중국조선족이라는 강한 민족적 자부심과 영광이 200만 중국조선족들을 고무,격려하고도 남음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시상식후 가진 인터뷰에서 리상영선생은 《감동중국조선족걸출인물》평의선발활동은 사회의 긍적적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수있는 좋은 행사인것 같아서 바쁜 와중에도 참가를 결심하게 되였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아직도 많은 조선족들이 조국의 개혁개방과 현대화건설에서 적극적인 노력과 기여를 하고있고 또 이러한 노력과 기여정신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이 긍정적에너지를 배우고 발전할수있게끔 계시를 주는것은 매우 필요하면서도 좋은 일이라고 긍정했다.
리상영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원래 상해항천기술연구원에는 2명의 조선족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기타 원사회의같은데 참가해 보아도 과거에는 중국의 최첨단 분야거나 최고기술분야에는 조선족들의 모습이 적잖게 보였지만 지금은 가물에 콩나듯 매우 적다. 그만큼 조선족인재양성의 후속력량이 결핍하다는 말이다. 조선족인재들이 줄어드는 원인에 대해 리상영선생은 한국 등 해외진출로 인한 조선족젊은이들의 인재류실을 지적했다.
리상영선생은 청년들은 조류에 휘말리지 말고 자기의 발전길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56개 민족중 조선족은 국외에 동족국가가 없는 기타 민족과는 다른 민족임을 강조했다. 조선족은 해외에 조선과 한국 등 고국이 있으니 쉽게 여러가지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는 취할바가 못된다는것이 선생의 주장이다. 중국실정에 맞는 자기발전의 길을 탐색하는것이 인재발전의 경로라고 리상영선생은 지적했다.
적지않은 조선족 대학생들이 대학교육까지 받고도 한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 나가 적성에 맞지 않는 낮은 분야의 일을 하면서 꿈과 희망을 접는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족 농민들이 땅에서 나오는 적은 수입보다는 외국의 로무로 돈을 버는것은 딱히 뭐라고 부정할수는 없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우리 민족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접고 눈앞의 당분간의 리익을 위해 너무 돈에 집착하고 장원한 인재발전의 길을 포기하는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관점이였다. 모든 인재는 처음부터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며 부단히 분발노력하는 장기간의 실천과 경험을 통해 인재와 영웅으로 거듭난다는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라고 부언했다.
리상영선생은 날이 갈수록 황페해져가는 조선족교육에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리상영선생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흑룡강성 오상의 농촌학교들도 이젠 조선족인구의 급감으로 통합되거나 페교됐더라면서 서운해 했다. 특히 통합된 학교들은 여러개 학년이 한반에서 공부할 정도로 수업을 진행하니 교육질이 낮아질수밖에 없다면서 조선족은 과거부터 허리띠 졸라매면서라도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교육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선진적인 민족인바 잠시동안의 눈앞의 리익보다는 장원한 견지에서 후대교육에 더 신경써야 하지 않겠는가고 지적했다.
리상영선생은 그러나 최근들어 상해에 있는 대학들에서 공부하고있는 조선족학생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지고있어 아주 위안스럽고 자부심이 넘친다고 기뻐했다.
리상영선생이 써준 제사
1965년도부터 상해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리상영선생은 어언간 상해생활만 해도 근 반세기에 가까운 48년째이다. 상해에서 오래동안 생활해오고 또 사업환경도 다르지만 리상영선생은 지금도 조선족음식에 더 감정이 가고 조선족들에게서 더 따뜻한 인정을 느낀다.
리상영선생이 갓 상해에 자리잡았을 때인 지난세기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상해의 1000여만 시민속에 조선족인구는 겨우 278명뿐,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우리말을 하는 조선족들을 보기만해도 너무 반가워 인사를 나누군 했다고 한다. 피는 언제나 물보다 진한가 보다.
음식도 된장국에 김치를 즐겨먹는다. 처음 상해에 갔을 때는 김치를 담그기도 했지만 상해가 더운 날씨가 위주이다보니 해놓은 김치가 인차 시여져 먹기 힘들었다고 터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된장이며 김치 등 다양한 조선족전통음식들이 상해시내의 여러 슈퍼들마다 팔리고있어 손쉽게 구입해 먹을수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기뻐했다.
12월21일 오후 3시 30분, 리상영선생은 연길공항을 통해 비행기편으로 상해에 돌아갔다. 공항을 나가면서 리상영선생은 기자에게 이번에 급급히 연길에 왔다가면서 미처 시간과 겨를이 없어 더욱 많은 연변의 모습들을 볼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돐경축행사기간에 해당부문의 초청으로 연변을 방문한적있는 리상영선생은 10년후에 다시 와보는 연변은 거리에 층집도 더 많아지고 높아진것 같으며 길도 넓어지고 차들도 많아진것 같다고 말했다. 상해 등 전국적으로 많은 도시들이 스모그날씨로 몸살을 앓고있지만 연길은 깨끗한 도시환경으로 마음이 상쾌해지는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며칠전 내린 백설덮힌 산야를 바라보면서 리상영선생은 마치도 어린 시절 추억을 묻어두었던 고향에 돌아온듯 감구지회가 새롭다고 부언했다.
리상영선생이 연길에 머문 시간은 겨우 1박2일, 비록 머문 시간은 매우 짧지만 중국을 감동시킨 중국조선족의 걸출인물로 조선족사회에 《금의환향》하면서 남긴 감동과 격려의 긍정적에너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중국 최첨단 과학기술분야의 걸출인물로 우뚝 서기까지 리상영선생이 창조한 중국조선족의 우수한 민족적 이미지는 중국 200만 조선민족은 물론 전 세계 조선민족들에게 강한 민족적 자부심과 영광으로 영원히 기록될것이기때문이다.
[편집/기자: 안상근 원고래원: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