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7 14:34:30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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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원초적인 시골로 불리는 서문흥(西文興)촌은 중국 산서성 진성(晉城)시 고평(高平)현 토옥(土沃)진에 위치해 있다.
날개를 활짝 편 봉황보양의 산발에 의지해 조성된 서문흥촌은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태항산(太行山)과 태악산(太岳山), 중조산(中條山) 세갈래 산의 지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서문흥촌은 천여년전 당(唐)나라때 문학자인 유종원(柳宗元)의 자손들이 모여사는 동네이다.
오늘날도 이 마을의 90%가 유씨여서 서문흥촌은 중국 북방에서 유일하게 동문이 자자손손 집거하는 원초적인 마을이다. 또한 "하동세택(河東世澤)"과 "사마제(司馬第)"라는 액자에서 유종원의 흔적을 엿볼수 있다.
간주
서문흥촌의 뼈를 이루는 줄기는 굽이를 돌면서 몇 개의 뜰을 통과하는 통로이다. 그 중 가장 넓은 패방가(牌坊街)에는 이 마을의 심벌인 석패방 두 개가 솟아 눈길을 끈다.
목조건물을 모방해 지은 석패방에는 "청운접무(靑雲接武)"와 "단계전방(丹桂傳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의 빗바람속에서 돌이 부식되어 돌사자의 윤곽이 조금 모호해지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다.
종교건물의 특색과 중국의 남북 건물양식을 한 몸에 모으고 궁궐건물의 기법과 역대 명인들의 서예를 교묘하게 접목시킨 유씨민가는 선비가문이 명(明)나라때에는 관료로부터 사업가로 되고 청(淸)나라때에는 사업가로부터 다시 관료로 돌아간 유씨가문의 발전사를 잘 보여준다.
마을의 설계에서 서문흥촌은 복과 장수를 뜻하는 구도를 선택했다. 전반적인 건물은 대략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한 구역은 유씨사당과 관제묘(關帝廟)와 문묘(文廟), 땔나무방, 통로의 두 정자를 망라한 남쪽의 외부구(外部區)이다.
두번째 구역은 문창각(文昌閣)과 운동장, 키 높은 석패방을 망라한 중부구(中部區)이며 세번째 구역은 철사망과 경보용 방울, 지하도, 방화벽 등 시설로 완전 폐쇄된 내부구(內部區)이다.
내부구의 네 귀퉁이에는 작은 무대 건물과 관하정(觀河亭), 상경루(賞景樓), 부문루(府門樓)를 만들었다. 그 중 부문루와 관하정을 통해서만이 내부구로 출입할수 있다.
세 구역사이에는 1.5km길이에 달하는 18갈래의 골목이 얼기설기 뻗어 건물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간주
선비가문으로서 유씨민가의 곳곳에서 풍부하고 심오한 문화적 함의를 엿볼수 있다. 제재의 선택과 무늬의 정교함, 뜻하는 내용은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예를 들어 연꽃과 은목서나무 가지로 아들을 얻음을 의미하고 바줄 하나와 동전 세 개로 연속 세번 과거에 급제함을 나타냈으며 박쥐 다섯마리로 목숨 수(壽)자를 쓰면서 다섯가지 복을 받음을 뜻하고 있다.
이런 길함을 나타내는 그림과 무늬는 대부분 문루에 새겨져 있다. 그밖에 유씨민가에는 역대 명인들의 서예작품과 그림이 보존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남송(南宋)때의 대가 주희(朱熹)와 명(明)나라때의 문정명(文征明)을 망라해명인들의 서예를 옮긴 비석만 해도 40점이고 당(唐)나라때의 화백 오도자(吳道子)의 그림을 옮긴 비석도 있다.
공자가 열명의 제자에게 요순(堯舜)을 가르치는 광경을 그린 <성인 십철도(聖人十哲圖)>는 천고의 명작으로 인정된다. 그밖에 "승덕제(承德第)"와 "무덕제(武德第)" 등 내부구의 액자도 서예작품이다.
간주
1811년에 세운 괴성루(魁星樓)는 좋은 전망대이다. 서문흥촌에서 가장 높은 이 누각에 올라서면 주변의 아름다운 산과 서문흥촌의 전경이 한 눈에 안겨온다.
괴성루의 바로 곁에는 1559년에 지은 관제묘가 위치해 있다. 장방형 모양의 뜰을 가운데 두고 사면에 건물들이 둘러서 있다. 북쪽에 대전(大殿)이 있고 그 맞은켠 남쪽에 무대건물이 있는 관제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면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유흥을 즐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중헌제(中憲第)는 동서향의 중심선상에 안채와 홀이 위치한 저택이다. 이 저택에서는 화려한 조각물로 단장한 문이 가장 인기이다. 방 세 칸 너비에 이층 높이의 문루는 처마에 층층이 목각물이 화려하고 돌사자 또한 정교하다.
앞뒤로 두 뜰을 가진 사합원식의 저택 사마제(司馬第)는 저택의 문을 서남쪽에 두었다. 문밖에 상마대(上馬台)를 두었고 양쪽에는 돌사자 두 마리가 나란히 문을 지키고 있다.
네 개의 돌계단을 올라 문턱을 넘어 사마제에 들어서면 벽돌조각과 석각, 목각이 어우러진 화려한 조벽(照壁)이 맞이해준다. 사마제의 건물들도 마찬가지로 처마와 대들보 등을 정교하게 장식하면서 가문의 높은 급별을 보여준다.
마을의 입지선택에서부터 구도배치, 민가건축, 세부장식, 민속풍토에 이르기까지 서문흥촌은 풍부한 문화적 함의를 안고 있다. 그로 인해 서문흥촌은 유종원문화와 유교사상, 봉건예의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공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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