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7 19:27:12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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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7일 중국음악 방송분
조선족작곡가 방화에 대한 이야기
-음악으로 인생일기를 기록하고 있는 녀류 작곡가 방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음악에서 인사드리는 임봉해입니다.
[노래 "갈매기 한마리"깔며]
망망한 바다 저 멀리에
갈매기 한마리 날고있네
파도치는 물결 헤가르며
몽롱한 어둠속을 뚫고나가네
찬바람도 폭우도 헤아림없이
어제도 오늘도 힘차게 날고있다네
힘차게 앞으로 날고있다네.
삶의 역경을 헤쳐나갈 굳은 결의로 충만된 이 노래는 방화녀사가 작사, 작곡한 노래 《갈매기 한마리》입니다.
[노래 한단락]
아름다운 해변도시 대련에는 문화예술사업을 위해 혼신을 불태우는 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대련 금주신구조선족문화예술촉진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조선족작곡가 방화(方华)녀사입니다.
[방화 음향 10"]
"저는 일기를 쓰다싶이 제가 걸어온 길, 발자국마다 세월의 흐름으로 같이 음악작품창작을 해왔습니다."
음악으로 자신의 인생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방화 작곡가… 중국음악에서 그의 노래를 만나봅니다.
첫곡입니다. "초가집온돌방" 박덕준 작사, 방화 작곡. 김문유가 부릅니다.
[노래 3'18"]
"화려한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나서 자란 온돌방이 그립습니다.
가난의 눈물을 삼켜가면서 이 몸을 키워준 집이랍니다.
잊지못할 초가집의 온돌방은 부모님의 따사로운 사랑의 품이여…"
방화선생이 작곡한 노래 "초가집 온돌방"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작곡가 방화는 1949년 12월 29일 심양에서 태여났습니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에서 요녕성 심양으로 출장갔다가 업고 온 귀여운 손녀에게 그의 할머니는 《봉천녀(鳳天女)》라는 애명을 달아주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류달리 우렁찼습니다. 소학교 1학년때 선생님이 배워준 《아가야 나오너라》라는 동요를 선생님의 풍금반주에 맞춰 불렀는데 어찌나 잘 불렀는지 전 학급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전 작곡가 방화선생님과 전화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방화 인터뷰]
사회자: 일찍 1967년부터 음악창작활동을 시작해 오셨는데요. 40여년간 200여수의 음악을 창작하신 중국조선족 작곡가 방화선생님과 전화연결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방화: 네. 안녕하십니까.
사회자: 어릴적에는 노래를 잘 불러서 꿈이 가수였던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방화: 예. 제가 어렸을때는 가수의 꿈을 갖고 노력했었습니다. 중간에 좀 곡절때문에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노래 "가로수" 깔며
방화 선생이 작곡한 노래 "가로수" 듣고 돌아옵니다.
김춘산 작사, 방화 작곡, 김선희가 부릅니다.
[노래 "가로수" 끝까지 3'07"]
"바람이 불어오면 흔들리다가도 이슬젖은 달밤이면 사랑을 꿈꾼다네 / 비바람 차가와도 가슴엔 꿈을 안고 해달이 흘러가도 사랑은 오리라…"
방화 선생이 작곡한 노래 "가로수" 듣고 돌아왔습니다.
동년시절 방화는 부모를 따라 길림성 서란현, 흑룡강성 녕안현(현재 해림시), 길림성 영길현, 흑룡강성 오상현 등지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소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식구까지 많다보니 생활이 째지게 가난하였지만 그는 가는 곳마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우수한 학생으로 소문높았습니다.
어렸을때 원명은 방명옥이었습니다. 흑룡강성 녕안현 건설소학교 4학년때 음악선생님이 《방명옥학생은 장래에 꼭 훌륭한 인민의 음악가가 될거예요》라고 한 칭찬은 나어린 방화의 심령속에 음악의 씨앗을 깊이 묻어놓았습니다.
계속해 전민숙 작사, 방화 작곡의 노래 "한복단장 멋이로다"를 준비했습니다.
박춘화가 부릅니다.
[노래 "한복단장 멋이로다" 3'34"]
중국음악, 지금 여러분께서는 중국 조선족 녀류 작곡가 방화선생생의 이야기를 듣고 계십니다.
오상현 향양중학교를 다닐 때 그가 문오위원을 맡은 5반은 전교에서 문오우수학급으로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는 과외시간을 이용하여 동학들을 이끌고 피리, 하모니카, 얼후 등 악기연주법을 배웠습니다. 집이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방화는 매일 아침 일찍 학교로 떠났는데 방과후 집으로 돌아오면 늘 어두운 밤이였습니다. 왕복 36리길을 걸어다니면서 학교로 오갔지만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종래로 지각이나 조퇴를 한적이 없었고 힘들다고 투정부린적은 더구나 없었습니다.
그는 늘 학교를 가면서도 코노래를 흥얼거렸고 기분이 좋으면 목청을 돋구어 자기가 부르고싶은 노래를 불러대군 하였습니다. 등하교길은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전선줄이 내는 잉-잉 바람소리거나 수림속 상공을 스쳐지나는 윙-윙 바람소리는 그에게 한수의 아름다운 노래로 들렸습니다.
[방화 인터뷰 음향]
"그 당시 노래를 잘 했기때문에 중앙음악학원 부속중학교의 입학통지서까지 받았습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연변 예술학교에서도 왔었습니다. 성으로 해서 현으로 해서 문화, 교육 분야의 분들이 함께 제가 살았던 오상현 향앙공사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이미 결혼해서 임신 넉달째였습니다. 그 당시 길가에서 길수리를 하는데 손님들이 오시더라구요. 너무 원통해서 집에 가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
노래 "낙엽에 묻힌 사랑" 깔며
김학송 작사, 방화 작곡, 김상운이 부른 "낙엽에 묻힌 사랑"을 듣고 돌아옵니다.
[노래 끝까지 2'59"]
어린시절 가수가 되고저하던 꿈이 아쉽게만 스쳐 지나가던 안타까운 심정… 하지만 방화는 음악의 꿈을 접지 않았습니다.
[방화 인터뷰 음향]
"음악이란 여러가지가 아닙니까. 성악, 창작… 저의 수준에서 크게 전업적인 수준도 아니니까. 열심히 열심히 배웠습니다."
이러한 끈질긴 노력이 진정한 음악인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방화 작곡, 김동진 작사, 한철호가 부른 "나 여기서 살리라"를 보내드립니다.
[노래 "나 여기서 살리라" 4'10"]
중국음악, 오늘은 중국 조선족 여 작곡가 방화가 작곡한 노래를 보내드렸습니다.
애청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방화 작곡가의 노래와 그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임봉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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