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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인생일기를 기록하고 있는 녀류 작곡가 방화(2)
2014-05-24 20:28:39 cri

2014년 5월 24일 중국음악 방송분

조선족작곡가 방화에 대한 이야기(2)

-음악으로 인생일기를 기록하고 있는 녀류 작곡가 방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음악에서 인사드리는 임봉해입니다.

중국음악, 오늘은 지난 시간 계속으로 아름다운 해변도시 대련에서 문화예술사업을 위해 혼신을 불태우고 있는 대련 금주신구조선족문화예술촉진회 회장, 조선족작곡가 방화(方华)녀사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첫곡으로 방화 작곡, 강효삼 작사, 안룡수 마봅자가 부른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내드립니다.

[노래 – "아름다운 저녁노을" 3'13"]

"인생은 흘러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언제나 젊음에 산다네 / 노을 비낀 저 하늘에 백학이 훨훨 / 우리들이 춤추는 옷자락이 아닌가…"

방화선생이 작곡한 노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1949년 심양에서 태어난 방화는 동년시절 가수가 꿈이었지만 여러가지 원인으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의 꿈을 접지 않았습니다.

40여년간 200여수의 노래를 창작한 방화는 자신의 첫번째 창작경험을 얘기해주었습니다.

방화의 첫 음악작품은 1967년 봄, 모내기철에 탄생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에 매혹된 방화는 격정이 솟구쳐 그 자리에서 《라림하, 고향의 강》이란 노래를 쓰게 되였습니다.

[방화 인터뷰]

"저는 일기를 쓰다싶이 제가 걸어온 길, 발자국마다 세월의 흐름으로 같이 음악작품창작에 걸음을 함께 걸어온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1967년, 흑룡강성 오상현에서 공연을 하면서… 시랑송, 노래를 하면서 오상 민락, 배암하, 석도하 등 부근에서 휴식하는 과정에 각자마다 자기 애호를 밝히면서 작사, 작곡, 시를 쓰던 이렇게 아름다운 조국 청산을 노래하자는 제의하에 창작을 시도했습니다. 오상에 라림강이 있습니다. 거기서 "라림하, 고향의 강"이라는 노래의 초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당시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그후에 다시 수정을 하였습니다. "

[노래 "그리움의 강"] 깔며

방화선생이 작곡한 노래 "그리움의 강"을 보내드립니다.

임춘영 작사, 방화 작곡, 리철혁이 부릅니다.

[노래 "그리움의 강" 3'26"]

1967년 봄, 모내기철, 26명으로 무어진 선전대를 따라 농촌이나 공장, 탄광을 돌면서 공연하던 도중 처음으로 시도했던 음악창작… 몇달간의 《문예전사》 생활을 마치고 방화는 다시 두메산골에 있는 한족소학교에서 민영교원사업을 계속하게 되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음악교과서를 구하기 힘들어서 그는 자기절로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배워주었습니다.

[방화 인터뷰]

"학교에서 민반교원으로 있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작곡해 노래도 배워주고… 농촌 산골에는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

《초원의 어린이들》이란 노래는 그때 보았던 영화 《룽메이와 위룽》을 본후 감동되여 가사를 쓰고 곡을 달아 만든것입니다. 이상 2수의 노래는 그 당시 발표하지 않았지만 후에 재수정하여 1995년 첫 작품집(88수)을 출판할 때 함께 수록하였습니다.

계속해 방화선생이 작곡한 노래 "산처럼 물처럼"을 준비했습니다.

김춘산 작사, 방화 작곡, 김청이 부릅니다.

[노래 "산처럼 물처럼" 3'33"]

방화의 업여창작생애가 시작된 곳은 흑룡강성 오상현입니다. 그는 지금도 늘 고향의 산과 물, 일초일목에도 감사의 마음을 품고있으며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정을 금할수 없다고 합니다. 오상현문화관의 오요증(吳耀增) 등 명문음악학교를 졸업한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과 영향하에 그는 날따라 창작수준이 제고되였다. 문화관에서는 해마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문예양성반을 꾸리고 또 《오상문예》월간을 꾸렸는데 양성반의 통지를 받으면 아이를 업고 산 넘고 강을 건너 걸어서 다녔는데 비오는 날이면 맨발로 20리 길을 걸어다녔습니다.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그는 할빈, 연변, 상해 등 지역의 음악창작양성반에 다니면서 《인민음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편달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편도선수술을 받은후 성대가 상해 더는 노래를 부를수 없게 되였습니다. 방화는 가수의 꿈을 접고 가곡창작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그는 전문가들과 직접 대면하여 강의받는 수업반과 통신교육학습을 결합하는 두가지 방식을 취하여 밤에 낮을 이어 고심히 음악창작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는 1982년 길림성예술학원연변분원 대학졸업증을 취득하였습니다.

계속해 석화 작사, 방화 작곡, 김청이 부른 "정성을 바쳐가리라"를 보내드립니다.

[노래 "정성을 바쳐가리라" 2'58"]

1988년 교육사업으로부터 창업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사업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음악창작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줄 몰랐습니다. 대련으로 이사와서 맞는 첫번째 겨울의 어느날 저녁무렵이였습니다. 창밖에서 푸실푸실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에 잠겼습니다. 그는 즉시 종이에 그 감수를 적고 거기에 곡을 붙였는데 몇십분사이에 《눈꽃련정》이란 노래가 완성되였습니다.

[방화 인터뷰]

"방화: 이 노래는… 제가 대련으로 올때 애들을 고향에 두고 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큰 딸이 집에 있었고 둘째와 막내가 함께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때문에 들어갔다가 또 다시 나왔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사회자: 그러다보니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도 딸생각이 간절했겠네요.

방화: 예. 아이들을 그리운 마음으로 이 노래를 창작했습니다. "

[노래 "눈꽃련정"깔며]

이 노래도 후에 수정을 거쳐 1995년에 출판된 88수 노래집에 수록되였습니다. 이 노래는 2012년 초겨울 연변텔레비방송국(김선희가수의 독창) 매주일가로 방송되여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는 노래로 되였습니다.

[노래 끝까지 3'01"]

슬하에 딸 넷을 둔 방화는 음악창작에 있어서 자식에 대한, 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정을 많이 쏟아부었습니다.

[방화 인터뷰]

"사회자: "인생길의 다정한 친구" 이 노래는 특별한 노래가 아닙니까?

방화: "인생길의 다정한 친구" 이 노래는 우리 딸들을 위해 창작한 노래입니다.

사회자: 딸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묻어납니다.

방화: 그렇지요. 왜냐면 제가 걸어온 인생길에서 자식이란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모든것이 될수 있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이바지하고 싶고… 자식들이 저의 모든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노래를 창작했습니다."

"노래 "인생길의 다정한 친구" 깔며"

방화 선생이 작사, 작곡한 노래 "인생길의 다정한 친구"를 보내드립니다.

김청이 부릅니다.

[노래 3'57"]

계속해 김학철 작사, 방화 작곡. 김문유가 부른 "꿈마차 달린다"를 보내드립니다.

[노래 "꿈마차 달린다" 3'32"]

중국음악, 지금까지 조선족 작곡가 방화 선생의 작품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시간에 계속해 "조선족 작곡가 방화 선생의 이야기 (3)"을 보내드립니다.

진행에 임봉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끝곡 "진정 이토록"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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