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3 10:12:22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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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월 3입니다. 1942년의 오늘, 일본군은 중국의 태항(太行)산과 태악(太岳)산 그리고 산서(山西) 서북항일근거지에서 광기적인 "소탕"을 감행했습니다. 중국 팔로군 제129사단과 제120사단은 일련의 반"소탕"작전으로 적군에게 강력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 발발 후 자체 점령지역을 공고히 하고 이를 "대동아전쟁병참기지"로 삼기 위해 일본군 화북방면군은 1942년의 "치안숙정건설계획대강"에 따라 진찰기(晉察冀:산서성,차하얼성,하북성)국경지역의 하북 동부와 중부지역, 진기로예(晉冀魯豫:산서성,하북성,산동성,하남성)국경지역의 태항산,태악산지역을 중점으로 대규모적인 훼멸성 "소탕"을 감행했습니다.
1942년 2월 3일 일본군은 태악산과 태항산 두 지역 소탕에 각기 병력 7천명과 1만2천여명을 투입했습니다. 일본군은 이른바 포획기습, 철벽포위, 종횡소탕, 전전(輾轉)숙청, 역전전격, 야간새벽기습 등 전술을 취해 팔로군 본부와 129사단 지도기관을 소멸하고 항일근거지를 파괴했습니다. 팔로군 제129사단 유백승(劉伯承)사단장과 등소평(鄧小平)정치위원은 팔로군 본부와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북방국 지시에 따라 일본군의 동향을 파악한후 근거지의 반"소탕"작전을 적극 배치했습니다. 제129사단 1부는 내선에서 "숙청"군을 타격하고 주력군은 그 틈에 외선 작전에 투입해 적군의 거점을 습격함으로써 내외로 결부해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30여일간의 간고한 전투를 거쳐 팔로군은 도합 3천여명에 달하는 일본괴뢰군을 섬멸했습니다.
산서 서북에서 일본군 제1군 1부의 9천여명이 몇갈래로 나뉘어 산서 서북항일근거지 중심구인 흥현(興縣), 보덕(保德)을 침범해 근거지 내에서 "얼레빗질(梳篦)소탕", "전전(輾轉)숙청"을 진행했습니다. 산서 서북근거지 주둔 팔로군 제120사단은 하룡(賀龍)사단장의 인솔하에 근거지 항일백성들과 긴밀히 협력해 외적을 물리쳤고 한달간의 간고한 전투를 거쳐 외적은 1942년 3월에 다시 원래 거점으로 철수했습니다. 5월 14일 일본군의 대부대와 일부 괴뢰군이 재차 흥현을 습격했습니다. 산서 서북 군대와 인민은 5월 19일 전가회(田家會)에서 적군을 포위섬멸해 일본괴뢰군 5백여명을 살상했습니다.
1942년 일본군의 여러 차례 "소탕"을 거쳐 화북 적후항일근거지는 점차 줄어들었고 손실도 비교적 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는 내선고수, 외선 공격전략을 제기하고 무장과 정치투쟁을 병행하는 지도사상으로 주력부대와 지방유격대, 군중무장을 결부할 것을 각지에 요구했으며 유격전쟁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적군이 공격해오면 아군도 공격"하는 방침을 실시해 적군이 공격해 오면 아군이 물러서던 국면을 타파했습니다. 그 뒤로 각 지역에서도 보편적으로 유격대와 "무장공작대"를 조직하고 "적후의 적후까지 공격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적군의 거점과 주변 지역에 깊이 침입해 유격기지를 구축하고 새로운 근거지를 개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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