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1 10:41:53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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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월 11일입니다. 1942년의 오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북방국과 팔로군 본부의 팽덕회(彭德懷) 등은 각 부대에 전보를 보내 적들의 장기적인 "소탕"과 분산적인 "숙청"을 파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 일본군은 자기들이 점령한 지역을 이른바 "대동아전쟁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화북방면군이 1942년에 제정한 "치안숙정(肅正)건설계획 요강"에 따라 진찰기(晉察冀)국경지역과 진찰노예(晉察魯豫)변경지역에 대해 대규모 훼멸성 "소탕"을 진행했습니다.
1942년 2월 상순, 일본군 화북방면군 제1군과 직속부대의 3만여명은 산서(山西)성에서 "공산당 숙청" 작전을 펼쳐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항일근거지를 철저히 훼멸하려 시도했습니다.
적들의 끈질긴 침범에 대비해 1942년 2월 11일 팽덕회(彭德懷), 좌권(左權), 라서경(羅瑞卿) 등은 각 부대에 전보를 보내 적들의 주력부대가 공격할 때 우리의 주력부대는 적들 후방의 중요한 교통요지에서 활동하면서 길을 끊고 차량를 전복하며 적의 거점을 습격하고 교통을 단절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지방부대와 인민무장대와 함께 적들의 핵심지역에서 대규모 유격전을 펼쳐 적들의 "숙청"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정군민 여러 조직은 대량의 간부들을 파견해 무장민명자위대와 협동해 마을과 현성의 유격전쟁을 견지하고 적들의 "숙청"부대를 타격하며 민중들을 직접 보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상급의 지시에 따라 팔로군 소속부대들은 주력부대를 지방부대와 민병들과 결합해 일본 "숙청" 괴뢰군을 광범위하게 습격함과 동시에 다른 한 주력부대로 쾌속분대를 구성해 적구에 심입해 일본괴뢰군의 허점을 틀어쥐고 그들의 거점과 교통선을 습격했습니다.
내외적인 군대와 민병의 타격하에 120사단 358여단은 섬서성 서북 반"소탕"작전에서 256차의 작전을 펼쳐 보덕(保德)과 흥현(興縣) 현성을 수복하고 일본괴뢰군 570여명을 사살하거나 부상입혔습니다. 129사단 385여단과 신편 제1여단, 본부 특무단은 태항(太行)의 반"소탕"전역에서 316회의 작전을 통해 일본군과 괴뢰군 2천여명을 사살하거나 부상입히고 일본군과 괴뢰군 39명을 체포했습니다. 진찰기군구는 기동(冀東) 반"소탕"전역에서 일본군과 괴뢰군 1600여명을 사살하거나 부상입혔습니다.
1942년 5월, 일본군은 재차 태항 북부와 태악(太岳)남부지역을 공격했습니다. 38일간의 작전을 거쳐 팔로군은 일본군과 괴뢰군 3천여명을 소멸하고 재차 적들을 격퇴시켰습니다. 그번 작전에서 좌권 팔로군 부참모장이 장렬하게 희생되었습니다.
1942년 봄부터 가을까지 지속된 반"소탕"작전에서 팔로군 여러 부대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북방국과 팔로군 본부를 소멸하려는 적들의 기염을 꺾어놓았으며 지방 당정군민들의 한결 같은 노력으로 적후 항일전쟁의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항일근거지를 공고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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