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소개
게시판
조선어부 소개
 
cri korean.cri.cn/
            1941년 3월 10일 태항군구 계엄령 반포
2015-03-10 10:38:23 cri


오늘은 3월 10일입니다. 1941년의 오늘, 태항군구(太行军区)는 한간과 밀정을 숙청하고 항일근거지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반포했습니다.

1937년 7월 7일 일본군국주의는 노구교사변을 조작했고 중국 수비군은 완강히 저항했습니다. 중화민족의 전국성적인 항전이 막을 열었습니다. 전국의 항전이 전략 방어로부터 전략 대치단계에 들어선후 일본침략군은 진공 목표를 화북 적후항일근거지에 두었습니다.

1939년 9월부터 일본침략군은 화북항일근거지에 대해 이른바 "우리에 가두는 정책(囚笼政策)"을 실시해 태항(太行), 태악(太岳)지역을 분할, 점령하면서 항일근거지에 대해 "소탕(扫荡)" 작전을 벌였습니다. 1941년부터 태항군구는 전례없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팔로군 129사단 사단장이며 진기예(晋冀豫)군구 사령관인 유백승(刘伯承), 정치위원인 등소평(邓小平)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 북방국, 팔로군 총부의 지시에 따라 일련의 조치를 취해 주력군을 정돈하고 군구건설을 강화하면서 지방무장과 인민무장을 동원하여 반"잠식(蚕食)", 반"소탕" 작전을 벌였습니다.

1941년 3월 10일 태항군구는 유백승, 등소평과 팔로군 진기예군구 부사령관인 왕수성(王树声)의 명의로 "전구(全区)내에 비상계엄령 실시"를 선포했습니다. "계엄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일본침략자들과 친일파들은 많은 한간, 밀정, 사복무장대를 항일근거지에 파견해 군사정보를 절취하고 군정 후방기관과 항일단체를 습격하며 장정들을 잡아가고 재산, 물자를 약탈하며 비적단(土匪)을 조직하고 있다. 특히 봄갈이기간 놈들의 악행이 더 창궐해지고 있기에 한간과 밀정을 숙청하고 항일근거지를 보호하며 무장으로 봄갈이를 보장하기 위해 3월 18일부터 전구 내에서 계엄을 실시한다."

태항항일근거지 군민들은 공산당의 영도하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섰습니다. 당시 아동단은 길목에서 보초를 서면서 오가는 길손들을 조사했고 정보를 전하고 문건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아동단원들은 혹한과 무더위를 무릅쓰고 항일조직을 보호하고 한간을 숙청하기 위해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1941년 8월 기남(冀南), 태항, 태악 행정연합판사처가 설립되었습니다. 이어 민주선거를 통해 군분구 소속 각급 인민무장항일자위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런 기구들은 인민무장을 영도해 군중성적인 유격전쟁을 진행하고 항일군대와 합동 작전을 벌였으며 사회치안을 유지하고 후방보장 과업을 수행했습니다.

상술한 과업의 원만한 수행은 항일근거지의 반"잠식", 반"소탕" 투쟁에 아주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1941년 10월말 일본침략군은 팔로군 총부와 129사단 기관을 섬멸할 목적으로 팔로군 태항군구에 대해 겨울철 "소탕"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미리 준비를 갖춘 태항군구 군민들은 현, 구, 촌에 지휘부를 내오고 밤낮 8일간의 격전을 벌여 적군 700여명을 살상했습니다. 결국 일본군의 소탕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관련기사
중국각지우편번호중국각지전화코드편의전화번호호텔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